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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내 Dec 26. 2023

로또 청약 당첨기

그게 접니다.

재수

재물이 생기거나 좋은 일이 있을 운수


어렸을 적부터 나는 정말 재수가 없었다. 이름에 재주 재 (才)가 들어가서 그런가 어쩜 그렇게 나만 쏙쏙 피해 가는지. 학창 시절부터 이야기하자면 시험에서 찍어서 맞은 문제가 없었다. 사이가 안 좋은 애랑 같은 반이 안 됐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빌었는데, 중학교 내 내 같은 반이었다. 사실 3년 내내 같은 반 하기가 더 어려운데.


취업 박람회에서 100명 중 90명이 받을 수 있는 경품선물은 당연히 못 받았고, 4년 만에 열린 회사 체육대회에서 티브이며 항공권등 경품을 퍼줬는데도 안 뽑히는 건 당연지사다. 어쩜 이렇게 운이 없는지, 남들의 두 배 세배는 노력해야 하는 아주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



이렇게 운이 없는 내가 청약 당첨이라니. 청약 당첨의 과정은 운이라고도 해야 할지, 계획이 성공한 거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1. 18년, 아들을 낳다.

아들을 낳고, 프리랜서 강사인 나는 1년 동안 무급 휴가에 들어갔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남편의 월급은 외벌이로만 살기엔 너무 작고 소중했다. 첫째가 13개월에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2. 복직

복직을 했는데, 전례 없는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 코로나 정책은 나 같은 프리랜서들에게 무기한 대기 상태로 만들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그래, 이 참에 둘째를 만들자.

3. 둘째 임신

결혼할 때도 애 셋은 낳아야지 했었고, 쉬는 김에 둘째를 계획하고 임신을 했다. 나이가 30대 중반을 넘어가서, 둘째 임신이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금방 생긴 것도 신기하다.


코로나 지원금 등 세계 경제가 위축될 거라는 전망은 보기 좋게 틀리고, 전 세계는 코로나로 인해 각 나라별 지원한 현금과 저금리로 역대급 부동산 상승기를 맞이했다. 당시 뉴스에서는 역대급 상승기를 맞이한 아파트값이 연일 뉴스에 나왔다. 20대 이후 20년 동안 서울과 미국에서 남의 집 살이를 계속했기 때문에, 내 집이 절실했다. 평소 부동산에 관심이 있었는데, 맞벌이 한 자녀로는 서울 청약은 택도 없더라. 둘째 임신 확인서가 나오자마자, 신혼부부 특별공급으로 부동산 청약을 시작했다.


4. 청약 당첨

남편의 작고 소중한 월급, (코로나로 인한) 무급인 아내, 거기에 미취학 아동은 2명. 정부에서 정확히 우리 집을 타깃으로 만든 제도인가 싶은 신혼부부특공. 신혼부부특공도 원래는 세 자녀가 다 휩쓸고 있는데, 그날은 중복으로 청약을 못하는 공고가 3개가 동시에 뜬 날이었다. 가점이 높은 세 자녀 가족분들은 과천으로 쏠리고, 나는 전략적으로 분양가 상한제가 있어 오히려 우리 자금조달에 알맞을 듯한 남양주로 청약을 넣었다.


당첨자 발표날은 제법 두근거렸다. 그리고 12시가 땡 하자마자 확인했는데 당첨! 같이 확인한 남편에게 싱글벙글하며 이야기했더니, "왜 과천을 안 넣고 남양주를 넣었어?"라는 망발을 했다. 좀 더 알아보고 나서 청약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된 남편은, 그 누구보다 입주에 진심인 사람이 됐다. 청약 당첨을 확인한 날부터 꿈에 있는 것 같은 몽롱한 기분에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았다.

남편과 상의도 없이 넣은 청약이 당첨될 줄이야?

5. 계약

계약을 하러 가서 드디어 (미래의) 우리 집을 처음 봤다. GTX B노선이 뚫린다더라, 8호선이 뚫린다더라 이런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지긋지긋한 세입자 생활을 탈출할 생각에 기뻤다. 재계약 기간이 다가오면 마음이 조마조마해지고, 못하나 뚝딱하기 어려운 세입자 곧 탈출이다. 집도 못보고 청약을 한 우리집은 다행히 채광이 좋은 남서향, 앞에는 아무것도 없는 소위 말하는 로얄동, 로얄층이었다.


6. 옵션을 해? 말아?

계약을 하며, 옵션을 선택해야 했다. 분양가 상한제인만큼 기본 옵션으로 들어간 건 적었고, 대부분 유상옵션이었다. 중문, 팬트리장, 조명, 빨래방 싱크대등 선택해야 할 것도 많았고, 당시 금액으로는 비싼 편이었다. 비싸길래 중문을 안 했는데, 3년 뒤 입주시즌에 입주옵션에 있던 중문이 저렴 편이었다. 거기에 양가도움 없는 맞벌이 두 자녀는 서울에서 남양주까지 애들을 데리고 가기에는 무리였다. 나같이 인테리어에 관심없는 사람은, 하나씩 검색해서 선택하는 것도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었다. 다음 새집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풀옵션으로 할 예정이다.


7. 자금조달

대망의 자금조달. 현실적으로 양가 부모님에게 1억씩, 나머지 3억 5천 정도는 우리가 해결하기로 했다. 하지만, 계획이 현실로 이루어지기란 쉽지 않다. 입주 전에 시어머님이 말기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셨고, 친정 아빠도 폐암에 걸려 일을 그만두셨다. 갑자기 양가 도움을 못 받게 된 우리는 언론에서 말하는 영끌족이 됐다.


다행히 나라에서 저출산 대책으로 내놓는 혜택 중에 하나인 디딤돌 대출에 조건이 대충 맞았다. 현재 나라에서 지원하는 대출정책은 많고, 복잡해서 아무도 모른다. 은행원들도 대출담당자도 모르니, 정말 꼼꼼하게 '스스로' 알아봐야한다. 우리도 먼저 청약통장납입확인서를 제출하고나서, 행원이 청약 우대금리를 확인하고, 우대금리가 적용됐다.

디딤돌 대출이 안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대출이 나왔다.

디딤돌 대출 조건에 맞춰, 프리랜서인 내가 일을 줄였다. 그렇게 신혼부부 7년, 미취학 자녀 2명, 청약 통장, 생애 최초등 우대 금리를 받아, 30년 고정 2.1% 금리, 체증식 상환, 중도 상환 수수료가 없는 디딤돌 대출을 받았다. 그렇게 그동안 우리가 벌어놓은 돈, 양가도움 조금, 나라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첫 우리 집을 만날 수 있었다.



내일은 드디어 우리의 첫 집으로 이사하는 날이다. 도시 (서울)를 사랑하는 나, 여의도에서 평생을 산 남편. 이 두 명이 서울에서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이제 미취학 아동 2명과 함께 무연고지인 경기도 남양주에서 새로운 챕터를 시작한다. 다시 서울로 돌아올 수 있을까라는 초조함과, (여의도 기준) 출퇴근시간은 편도 80분을 견뎌야 할 아찔한 생각은 뒤로하고, 그저 신난다.

야호, 내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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