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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내 Jun 04. 2024

이상형 월드컵 - 의사편-

당신의 이상형 의사 스타일은 누구인가요?

아이들의 소아과 진료 횟수는 줄어들지만 나와 남편의 병원비는 늘어났다. 산부인과, 신경외과, (어른용) 이비인후과, 내과 등 병원을 검색해서 다녀올 줄이야? 워킹맘의 만병통치약 "한숨 푹 자기" 이제 내성이 생겼나, 왜 다음 날에도 골골거리는지 모르겠다. 나는 확신의 건강상이다. 평소 집밥을 즐겨 먹으며, 운동을 꾸준히 하고, 술과 담배를 전혀 안 하고, 평균 7시간 30분인 수면시간을 꼬박 지키는 보통의 애기 엄마이다. 거진 40년을 건강하게만 산 나에게 용종이니 위축성 위염등 하나씩 선고받는 익숙하지 않은 진단명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다.


이제 경기도 신도시로 이사 온 지 6개월 차. 서울처럼 전철 출구 앞 건물마다 촘촘히 있던 다소 작은 사이즈의 병원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전철역에서는 다소 떨어진 건물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층고가 높고, 대기실은 넓고, 병원 내부에는 거울과 유리 오브제가 많아 노키즈존 st의 반짝반짝거리는 병원이 즐비하다. 한쪽에는 커피머신이 있고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병원이라니? 병원 한편에 아무도 안타는 형형색색 미끄럼틀이랑 바퀴 빠진 자동차가 있는 게 국룰인 줄 알았던 애엄마는 괜히 커피머신에서 버튼하나 눌러본다. 클래식이 적막하게 흐르던 대기실에 우렁찬 커피머신 소리에 괜히 멋쩍어지며 주위를 둘러보지만 다들 이어폰을 끼고 각자의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다. 다행이다.


병원은 아프면 가야 하는 곳은 아니다. 집안에 유난히 암환자가 많아서 건강검진을 꾸준히 받아야 한다.


병원은 나를 위해서만 방문하는 곳은 아니다. 이제 70을 바라보는 늙은 부모님의 병원도 같이 다녀야 한다. 친정 엄마는 고혈압과 허리 협착증을 앓고 계신다. 친정 아빠는 폐암 수술을 3번을 받으시고 평생 항암을 받으시며 추적조사를 하셔야 한단다. 그 와중에 감기, 폐렴, 눈병, , 피부발진, 다리 저림 등 병원을 참 많이도 가신다. 이래저래 아픈 부모님을 보면서 속상해하는 나에게, 친정엄마는 "노인이 건강검진했는데 정상인게 이상한 거야."라는 명언을 남겼다.


30대 후반이 되면서 소아과 의사 선생님 말고도 다른 과 의사 선생님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애들 덕분에 소아과와 이비인후과는 주 2~3회 출근도장을 찍었다. 하도 안 떨어지는 감기와 부정출혈로 건강 검진 센터부터 산부인과, 내과를 돌아다녔다. 친정부모님과 함께 big3 대형병원과 2차 병원 등 나름 규모 있는 병원도 투어 했다. 보호자 입장에서 어떤 의사 선생님을 좋아하나 생각을 해봤다. 이상형 월드컵 -의사편-


1) 실력은 알 수 없는데 친절한 의사: 실력은 없는 데라기 보단, 보통의 약을 처방해 주고 "이 정도면 괜찮아요. 허허허" 스타일의 친절한 의사 선생님


2) 머리가 떡진 의사: 첫인상부터 떡진 머리라니! 너무 지저분해서 신뢰가 없었지만 정확한 진단과 치료법 제공하신 의사 선생님


3) 명의지만 바쁜 의사: big3에서 일하시고 유명하신 분이라 진료 예약 잡기는 하늘의 별따기, 그리고 진료시간은 3분 컷. 궁금한 건 물어볼 수 없는 분위기로 간호사랑 상담해야 하는 경우 많음


4) 로보트 같이 정보 위주로 이야기해주는 의사: 소아과 선생님들 특유의 위로와 공감은 없지만 정보 위주로 이야기해 주시는 로보트 의사 선생님


5) 최악의 경우를 이야기해주는 의사: 진단을 내리시며 최악의 상황을 (막말을 섞어) 줄줄줄 말해주시는 의사 선생님 (이미 들으면서 눈물바다)


당신의 선택은?


아이가 아닌, "내"가 아파서 간 경우에는 4번 선생님을 뵐 때가 마음이 편하다. "그거 죽을병이기 때문에 000 먹어야 해요~!"라며 범람하는 인터넷 정보 속에서 가장 필요한 건 전문가의 객관적인 정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 친정부모님은 2번 선생님을 선호하신다. 평상시에 2번 선생님을 자주 뵙는 편이기도 하다. 진단을 탁탁 내려, 입원여부를 알려주고 몸 상태를 좋게 해 주니 다음에도 이 떡진 머리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겠다며 다짐한다. 물론 첫날에는 "그 의사는 오늘도 머리를 안 감았어!"라며 질색팔색하시지만.'




2024년 상반기 가장 핫한 이슈는 의대 정원 증가였다. 장기 저성장으로 들어간 대한민국에서는 더 이상 학벌이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옛날에는 sky를 나오면 먹고사는 게 보장된 사회였다면, 이제는 sky를 나오고도 취업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결과적으로 라이센스가 있는 전문직 중 최소 월수입이 보장되는 의대가 입시 생태계의 최대 포식자가 되었다. 하지만 최상위권에서 공부하던 의사가 만나는 사람은 나 같은 일반 사람들이다. 그것도 어딘가가 아픈 일반 사람들. 평소 건강하다고 생각한 나 조차도 괜히 병을 "진단" 받으니, 토끼 같은 아이들 얼굴이 떠오르며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리고 내 눈앞에 있는 의사 선생님이 내 삶을 죽음으로부터 지켜줄 구원자로 보였다.


코로나가 한창인 시기, 아이가 머리가 찢어져서 응급실로 갔다. 아이의 상처를 봐주는 의사 선생님이 보호자의 구원자이다.


어느 직업이나 딜레마는 있겠지만, 생명을 다루는 의사야말로 생명의 숭고함과 죽음의 중압감이 더 강조되는 직업이 아닐까. 삶과 죽음, 희망과 현실, 친절함과 시간 제약에서 의사 스스로 어디에 경계선을 그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괜히 개그맨 박명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코미디언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선은 지켜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저기까지 가지는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개그맨은 남을 웃기기 위한 직업이라지만, 의사는 환자를 살리는 직업이라 더욱 확고한 신념이 필요하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와서, 여러분에게 이상적인 의사선생님은 누구신가요? 저는 과마다 다른데요. 피부과 의사 선생님은 손이 차가우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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