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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내 Jan 31. 2024

전업주부가 어때서요.

저출산 공모전 탈락작

사교육 1번지, 대치동에서 근무하는 덕분에 저출산을 온몸으로 체험 중이다. 10년 전에는 연령별로 3 반씩 있던 유치원이 원아모집이 충분하지 않아, 2018년부터는 2 반씩만 운영하기로 했다. 그나마 대치동이라 상황이 낫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신도시의 병설유치원은 20년생 신입생이 1명만 지원해서, 2024년엔 만 3세 반을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출생률이 떨어지기 시작한 18년생이 학교에 입학하는 시점부터,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기관은 저출산 문제를 직격탄으로 맞을 예정이다. 


현재 정부와 언론에서는 저출산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북유럽 모델을 언급한다. 북유럽 모델이란 흔히 말하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정책으로 여성의 노동시장 참가 지원과 남성 육아·가사참여 기회 확대가 대표적인 정책이다. 문제는 핀란드나 스웨덴등 북유럽 국가의 출생률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유럽 국가 별 출생률은 2020년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출처. Nordic Statistics Database)

위 그래프는 북유럽 국가별 출생률을 보여주는데, 2020년부터 핀란드, 스웨덴등 북유럽 국가에서도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아이를 낳으면 ‘요람부터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고 키워주는 나라라는 슬로건 아래 여성들이 편하게 직장으로 복귀할 수 있는 대표적인 국가이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다. 즉, 현재 정부나 언론에서 말하는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게만 한다면, 우리나라 출산율이 올라갈 것이다‘란 전제는 위험하다. 


1. 대한민국 사회 내 젠더갈등의 심화

대한민국은 현재 젠더갈등이 세계 1위로 높다. 2021년, 킹스 칼리지 런던 (King‘s College London) 연구에 따르면 대한민국 내에 남녀갈등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80%라고 한다. 10명중 8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남녀갈등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 내 남녀갈등이 심화되는 사실은 해당 기사 수의 증가율로도 확인할 수 있다.

젠더 이슈 관련 뉴스 기사 수는 등락을 거치지만, 전체적인 기사 수의 양은 증가하고 있다. (출처. 경제 인문 사회 연구회)


온라인상에서 젠더갈등은 더욱 심해진다. 남초/여초의 커뮤니티별 젠더 갈등과 관련한 제목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남초 커뮤니티는 ‘여성 위주 성평등 정책’ 때문에, 남성이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 커뮤니티의 주된 키워드는 한남, 여성혐오 비판, 한국 사회 성차별 실태에 대한 문제제기와 정보 공유가 공통점으로 나타난다. 남성은 남성이, 여성은 여성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서로 주장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공유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사회 공동체의 역할이 줄어들고,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와 관심사가 다차원적으로 느슨하게 연결된 초개별화 (hyper-individualism) 시대를 맞이했다. 매일 경제 신문 기사에 따르면 20대 초반의 남녀 중 연애를 하는 비중이 10명 중 4명이 채 되지 않는다. 자기 계발, 다양한 취미생활, 스몰럭셔리, 디토 소비등 ‘갓생’에 충실한 MZ세대에는 연애자체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고, 오히려 “더 나은 경제적 삶”을 이루는데 초점을 둔다. 극단적 개인주의와 자본주의가 만나 사랑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게 당연한 사회가 됐다.


사랑이란 보편적 가치와 낭만이 사라지고 남녀갈등이 심화된 현 사회에서 혼인율이 떨어진 건 당연한 결과다. ‘2022년 혼인·이혼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혼인 건수는 2021년(19만 2500건)보다 0.4%(800건) 줄어든 19만 1700건이었다. 이는 역사상 최저 기록이다. 혼외자식을 기피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특성상 출산율을 이야기하기 전에, 혼인율을 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연애라도 할 수 있도록 사회에 만연한 남녀갈등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20대의 연애와 사랑에 대한 낭만이 회복되어야 한다. 이는 극단적 개인주의를 넘어, 교회나 동호회등 개인이 중요시하는 가치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포용적인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야한다. 출산율 재고의 시작은 20대가 연애를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손을 잡아야 다음 단계를 이야기 할 수 있다.


2. 전업주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전업주부든 워킹맘이든 아이를 키우는 건 부모의 희생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유독 전업주부에 대한 혐오가 높다. ‘동탄맘,’ ‘맘충,’부터 시작해,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브런치나 즐기면서”등과 같은 전업주부를 혐오하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2023년 통계청은 2019년 생활시간조사를 기초로 산출한 가사노동 서비스의 가치는 490.9조 원으로 GDP의 25.5%에 상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0세를 돌보는 전업주부의 노동가치는 연봉 3638만 원이다. 이런 노동가치를 사회가 인식하고 금융권에서 제도적으로도 인정해 줘야한다.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현재 유치원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만5세까지는 주양육자는 부모인 게 제일 좋다. 하지만, 20세기 현대사회는 여성이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사회 활동에 참가하기 시작하면서 맞벌이 문화가 당연시됐다. 육아휴직을 두 번, 세 번 연달아서 쓰는 직장동료를 험담하는 글이 SNS 인기 게시글에 버젓이 올라가있다. 이처럼 맞벌이 문화를 암묵적으로 동의한 사회 내에서 여성은 '일하는 여성으로 살 것'인지 '집에서 애를 보는 여성으로 살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해야만 한다.


한국 사회 20대 대부분은 극심한 경쟁을 거쳐 취업문을 뚫고 현재의 지위를 얻었는데, 자식을 낳으면 남들이 선망하는 지위를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하지만, 전업주부가 직업으로 인정받으면 어떨까? 아이를 낳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전업주부에게도 국가에서 일정이상의 월급(보조금)을 주고,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한다. 자녀를 ‘잘’ 돌보는지에 대한 감시와 함께. 대기업에 취업한 것보다 내 아이를 돌보는 것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가정 경제에 더 혜택이 있는 선택이라는 인식이 생긴다면 부부 중 한 명은 전업주부의 ‘커리어’를 선택할 것이다.


맞벌이로 직장 커리어를 지속하길 원한다면, 프랑스 정부 정책을 참조하여 가정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집에서 자녀를 돌볼 수 있는 공인 보모나 베이비시터를 고용해 주는 지원이 필요하다. 아이를 어린이집 같은 공동 보육기관을 보내는 것만 하나의 선택으로 주어져선 안 된다. 가정이라는 정서적 안정감이 있는 곳에서 아이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환경 역시 조성하고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많은 대한민국 사회 구조적 특성상, 재택근무나 육아휴직은 특정 대기업과 공무원만 받는 혜택으로 전략할 가능성이 크다.


3. 외벌이로도 가정이 유지될 수 있는 방안 마련

결국은 외벌이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 양가도움 없는 맞벌이로 두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육아의 변칙성이다. 아이가 수족구 같은 법적 전염병에 걸렸을 때, 발을 동동 구르며 3시간 떨어진 지방에 사시는 친정엄마에게 호출을 했다. 아이의 열이 38도인데도 집에 와서 돌봐줄 사람이 없어 해열제 3 봉지를 가방에 넣어 보냈다. 유치원으로 향하는 출근길, 남의 애를 돌보기 위해 아픈 내 애를 어린이집으로 보내는 게 서러워서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이런 변칙성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부모 중 한 명은 언제든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높은 집값과 사교육비는 맞벌이가 필수인 사회가 됐다. 과연 맞벌이는 ‘필수’ 일까? 미국 하버드 로스쿨 파산법 교수였던 엘리자베스 워런은 맞벌이 부부는 필연적으로 아이 돌봄과 출퇴근비용이란 고정 지출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맞벌이 수입에 맞춰 더 나은 주택과 교육에 장기적 지출 계획을 세운다. 맞벌이가 당연히 되는 사회에서는 전업주부라는 비상 돌봄 시스템이나 예비간호사와 같은 역할을 할 사회적 안정망이 사라졌기 때문에, 더 좋고 더 안전한 주거환경을 찾아야한다. 

전업주부는 사회의 안전망 역할을 하고 사회적 공동체에서 중심 역할을 한다. (출처. 픽사베이)

전업주부는 사회의 안전망 역할을 하고 사회적 공동체에서 중심 역할을 한다. 초등학교 시절, 엄마가 급한 일이 있으면 옆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왔던 것도 일종의 사회적 안전망이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놀이터로 출근하는 전업주부들은 내 아이와 놀아주며 다른 아이와 인사하며 얼굴을 익히고 간식도 나눠준다. 아이들은 무의식중에 친구 엄마가 나를 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어렸을 적 과자를 나눠먹던 사이로 시작해, 오며가며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어보며 사회 공동체에 스며든다. 이렇게 사회공동체가 뚜렷한 곳에서는 안전한 학교시스템과 주거환경이 조성된다. 사회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첫 걸음은 전업주부다. 저출산 대책의 첫걸음은 전업주부가 대접받는 사회적 구조와 인식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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