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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내 Nov 06. 2023

아이와 거리 두기를 시작했다

쓰는 삶에 대한 고찰

글쓰기를 시작하고 아이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아이를 너무 좋아해 전공도 유아교육으로 해서 현재까지 유치원에서 근무 중이다. 애들을 좋아했는데, 나랑 똑 닮은 내 새끼라니. 그렇게 아이를 우선시하는 보통의 엄마가 되어갔다. 나와 성격부터 취향까지 비슷한 첫째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첫사랑이다. 반면, 둘째는 얇디얇은 습자지 같은 감정라인과 "아닌 건 아닌 거"라는 인생 2년 차의 무논리 자기주장은 나를 항상 시험에 들게 한다.

주님 어찌 오늘도 저에게 이런 시련을…


둘째 비야가 “기저귀 떼기”라는, 인생 2년 차에 가장 어려운 과업 중이다.  언제 저렇게 컸나 대견스럽고 응원하지만, 실수한 후 뒤처리가 귀찮다. 결국 바닥을 닦고, 빨래를 해야 하는 건 바로 엄마인 나니깐.


퇴근길에 애들을 픽업하고 놀이터로 다시 출근한다. 잡기 놀이를 함참 했더니 발목이 비명을 지른다. 놀이터에 더 있겠다고 징징거리는걸 협박과 칭찬으로 구슬려 집으로 끌고 간다. 5분 만에 애들을 씻기고, 빨래통 주변에 널브러진 옷가지를 주워 담아 빨래를 돌린다. 바닥에 있는 큼지막한 장난감을 정리하고 있는데, 은우가 옆에서 “엄마 쉬, 쉬.”하며 뛰어온다. 이미 바닥엔 오줌이 한가득 묻어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며, 준비가 됐다며 기저귀를 떼자고 하신 담임 선생님이 원망스럽다.




한 달 전에 신청해 놓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은경 작가님과 “브런치 작가 도전” 프로젝트가 다음 주부터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000 작가님"이라고 불리는 모습을 생각하는데 광대가 올라간다. 군대같이 저녁 9시면 전체 소등인 집에서 밤 10시 수업이라니. 혹시 몰라 9:55분에 맞춰놓은 알람소리에 놀라 헐레벌떡 잠옷 차림으로 패드 앞에 비몽사몽 앉았다.


이은경 작가님은 여러모로 주변 분위기를 환하게 밝혀주시는 분이다. 밝은 목소리톤은 물론이요, 웃을 때 시원시원한 입꼬리도 멋있으시다. 특히 줌에서는 조명 때문인지 이마가 반짝반짝하시다. 머리를 감고 만나신다는 걸 강조하시는데, 역시 피부가 보송보송하기가 힘든 밤 10시 수업이다. 반짝거리는 첫 만남, 첫 수업에서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개안하는 순간이다. 지금까지는 논문을 읽고 지식 기반 위주의 글쓰기를 했다면, 이젠 나의 내면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감정과 생각을 어떻게 글에 녹여내야 하나 벌써부터 막막하다. 육아를 하느라 생각하는 방법과 감정을 잊고 살았는데, "나의 이야기"를 하는 글쓰기라니. 우선 논문쓰기처럼 접근해본다.

불닭볶음면 소재에 유머를 어떻게 넣는건가요


논문 쓰기의 가장 기본인 자료조사를 시작했다. 브런치 플랫폼에 완독률이 높은 순을 보니, 불닭볶음면 같은 시댁이 필수인 것 같다. 작가들은 저렇게 매운맛에 유머 한 스푼은 어떻게 넣었지 하며 감탄만 나온다. 소재를 찾아 나의 일상을 곰곰히 생각해본다. 시댁과 친정, 자식들까지. 매운맛은커녕, 맵찔이들을 위한 진라면 순한 맛 같은 단조로운 일상이다.


다음 단계는 쓰기다. 논문을 쓸 때 처럼 텅 빈 워드파일을 열어놓고, 막 써 내려가 보기로 했다. 논문은 머리가 쓰는 게 아니라 손가락이 쓰는 거니깐. 손 끝으로 완성한 초안을 읽어본다. 이게 글이냐 똥이냐. 똥을 쓰긴 썼는데, 이걸 읽기 좋은 무지개똥을 만들어야 한단다. 무지개를 먹어야 무지개똥이라도 쌀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24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쓰는 삶은 24시간이 모자르다. 첫째 별이의 한글 공부로 스트레스받던 나는 어디 가고, 별이를 위한 동시나 받침 없는 짧은 글 한 편을 적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 둘째 비야가 배변 훈련을 예전처럼 쫓아다니면서 초조거나 원망해하지 않는다. 매일 단조롭게 반복되던 일상이 글감 찾기 과정으로 바뀌었다. 매일 지나치던 출근길의 풍경도 글감이 가득하다.


어제도 9시에 자서 그런가, 4:30에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따뜻한 극세사 이불속에서 인스타며 웹툰이며 딩굴거리고싶다. 그 때 브런치 작가 단톡방에 “저도 발행했어요~”라는 알람에 벌떡 일어난다. 따뜻한 차와 함께 텅 빈 워드 문서 앞에 앉는다. 하루의 시작부터 도파민 유혹에 이겨내는 내 자신이 내심 자랑스럽다. 지적 허영심을 채우는 건 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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