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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내 Nov 09. 2023

미식가는 아닙니다만

40대 위장의 서글픔

고기! 튀김! 밀가루!


태생이 어린이 입맛이라 단짠(살짝)매콤을 사랑한다. 근무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점심 시간. 출근하자 마자 1층 조리실로 가서 눈과 코로 메뉴를 살펴본다. 오전 수업 중 1층에서 올라오는 맛있는 냄새에, "오늘 점심 메뉴"에 대해 이야기한다. 친구를 만나면 보통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후식으로는 소금빵이랑 회개리카노를 마신다.

맛있는건 0칼로리니깐


하지만 이제 40살을 코 앞에 두고, 내 위는 예전 같지 않다.


양념갈비보단 생고기를, 고기보단 채소를 먹게된다.


단짠의 환상적인 조화와 씹는 맛까지 일품인 양념 돼지 갈비를 무한대로 먹을 수 있었던 나는 어디갔나. 더 먹었더간 하루종일 더부룩할것 같아 젓가락으로 괜히 같이나온 샐러드만 뒤적거린다. 고기, 밀가루, 튀김, 거기에 촉촉한 식감까지 가진 깐풍기같은 완벽한 음식을 먹으면 나도 모르게 헛트름이 나온다. 점심시간에 나온 깐풍기를 먹고 오후 수업시간에 트름이라도 나올까봐 두렵다. 혹여 누가 들을까 입을 닫고 몰래 도둑 트름을 한다. 냄새 때문에 창문을 열어놓는것은 덤.


최근 결혼식을 다녀왔는데, 부페식 피로연장에서 위장나이를 처절하게 느끼고왔다. 밥이 맛있기로 유명한 Y 결혼식장이라 출발 전부터 기대하며 길을 나섰다. 하얀색 접시 위에 튀김이랑 돼지갈비 가득 담아 세번씩, 네번씩 먹었어야했는데, 고작 한 그릇 먹고 벌써 속이 더부룩해지는 느낌에 서글퍼진다. 이 날은 접시 두그릇이 전부였다. 깐풍기, 돼지갈비등 따뜻한 음식이 담긴 메인 메뉴 한 접시와 보기에만 맛있는 과일 접시 한 그릇. 떡과 빵은 먹을 생각도 못했다.


예전 같았으면, 배가 불러도 미련하게 꾸역꾸역 먹고서는 저녁밥은 굶었을 텐데. 이젠 두 그릇을 먹으면 하루 종일 얼마나 불편한지 너무나 잘 알고있어 먹을까 말까 고민한다. 아 이게 40대의 위장이구나. 어릴 적 친정엄마가 결혼식간다하면 가져갔던 투명 봉지가 생각난다. 엄마도 얼마나 아쉬웠을까. 먹을것은 많은데 배가 불러 못먹는 아이러니라니. 아는 맛이라그런지, 입은 빨리 음식을 달라고 하는데, 거부하는 내 위가 원망스럽다.


외식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왜 그렇게 아빠가 집밥만 고집했는지 몰랐다. 내심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빠의 집밥 고집이 싫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간다. 외식만하면 속이 더부룩하다. 뚝배기 가득 꽉꽉 눌러담은 밥은 힘 없는 위가 소화하기엔 너무 많다. 40년 동안 쌓인 반찬 취향 덕분에 젓가락도 안가는 이름 모를 나물 반찬을 보며 괜히 죄책감이 생긴다. 저건 다 버려지겠지. 이건 왜 이렇게 달고, 이건 왜이렇게 짠지. 이젠 백반집도 도파민 중독인가 싶다. 아, 이게 만삼천원이라니.


결국 집에서 먹기로 하고, 냉장고에 쓸만한 재료가 있나 뒤적뒤적 거린다. 요즘 세대가 그러하듯 평생 요리와 담을 쌓고 지내다가, 30 후반이 다 되어 요리를 시작했다. 길을 알아도 켜놔야하는 네비게이션처럼 요리 전에 백종원000을 검색하고 미리 켜놔야한다. 고추가 많이 들어가 입술 끝이 매운 음식 대신, 소고기 무국같은 속이 편한 음식을 만든다. 나의 하루가- 아니지. 나의 위가 평온하길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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