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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득

로망 찾기

제주를 그리며

by 한별

집 밖 풍경을 바라봅니다. 나뭇잎이 일렁이며 비추는 빛을 바라봅니다. 나뭇잎은 빛을 만들어 내지는 않지요. 그러나 바람에 따라 움직이며 빛을 반사하는 것만으로도 매 순간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대단히 새롭지는 않아도, 대단히 나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 건 아닐지라도 차분함 속으로 나를 데려갑니다.


나뭇잎이 반사하는 빛을 보면 바다의 윤슬이 생각나요. 파도흐름에 따라 매 순간 달라지는 것.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바다와 나는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거 같아요. 세상은 빠르게 흘러가는데, 바다와 나는 천천히 각자의 속도에 맞춰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일정하게 부서지는 파도와 그 안에서 흔들리는 빛들을 바라봅니다.


문득 제주도에서 올레길을 걸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를 옆에 끼고 조용한 길을 걸은 기억. 높이 뻗어있는 아파트 숲을 벗어나 바다와 어우러지는 작은 집들을 본 기억. 눈앞에 나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복잡한 것은 안 보이고, 오로지 바다와 나무만 보이죠. 걱정했던 것들은 어느새 나를 지나쳐 가고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제주의 모습에 집중할 뿐입니다.


물론 올레길을 걷다 보면 지쳐서 힘들기도 하고, 어떨 때는 보이는 풍경이 나의 기대와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메고 있는 배낭 때문에 어깨가 무지 아프고, 오늘 가야 할 길이 아직 멀게만 느껴져 이대로 포기하고 싶기도 하죠.


그래도 지나서 생각해 보면 그때만큼 자유함을 느껴본 적은 없었던 거 같습니다. 올레길 코스는 정해져 있지만 조금 벗어나더라도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걸어서 갈 수 있었으니까요. 내가 가는 이 길에서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저 오름에 오르면 어떤 것들이 보일지 모든 게 궁금했어요. ‘이래서 사람들이 올레길을 걷는구나.’ 했습니다.


언젠가 제주도에 살아보는 게 목표입니다. 날씨가 좋을 때는 여기저기 많이 걷고, 날씨가 안 좋을 때는 어느 한 곳에서 제주를 느껴보고 싶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제주 안에서 조금은 내가 살아온 삶의 방향에서 벗어나 보기도 하고, 제주의 새로운 모습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어떤 풍경이 나타날지 궁금해하고 싶어요.


우리는 아마 다양한 로망을 가지면서 살아가고 있을 거예요. 그 로망이 나를 즐겁게 할 수도 있지만, 그 로망으로 인해 지금 삶이 너무나 보잘것없어 보이기도 하겠죠. 그래도 뭔가를 생각했을 때, 나에게 행복감을 준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남과 비교하게 되는 게 아니라, 오로지 나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면 말이죠. 반드시 거창한 게 아니더라도 나에게 행복감을 주는 것을 찾아보고 그걸 이루기 위해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 만약 그게 내 생각과는 다르다고 해도, 그때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생기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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