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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득

할머니의 마지막 선물

벚꽃잎과 나뭇잎

by 한별

벚꽃이 활짝 피고, 벚꽃 잎이 떨어지면 그 자리에는 초록 잎이 파릇파릇하게 돋아납니다. 일 년 중에 벚꽃을 볼 수 있는 날은 며칠 안 됩니다. 벚꽃은 갑자기 피고, 떨어지죠. 그래서 우리는 벚꽃을 보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벚꽃이 떨어지는 순간. ‘올해 벚꽃은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무를 바라보면 작은 초록색 나뭇잎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벚꽃처럼 아름답지는 않지만, 나무는 분홍 옷에서 초록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귀여움과 동시에 편안함을 줍니다.


지난주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이름에 꽃 화(花)가 들어간 할머니는 꽃이 가득한 봄날에 이 땅을 떠나셨습니다.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은 순간. 그리 슬프지 않았습니다. 할머니가 암으로 투병 생활을 꽤 오래 해서. 마음의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장례식을 치러야 하기에 급하게 짐을 쌌습니다. 오랜만에 만날 친척들. 내가 좋아하는 제주도. 할머니를 못 보는 것은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제주도. 제주도가 주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좋기도 했지만, 제주도를 즐기러 온 것은 아니기에. 알 수 없는 감정들이 휘몰아쳤습니다. 앞으로 치러야 할 장례식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을까요?


정신없이 장례식장에 손님들을 맞이하고 마지막 발인 날. 이제는 할머니를 정말로 보내드릴 때가 됐습니다. 제가 맡은 임무는 화장이 끝나고 유골이 담긴 유골함을 들어서 납골당으로 옮기는 것이었어요. 화장을 마친 유골은 그 열기가 남아 있습니다. 마치 체온이 남아 있는 것처럼 요. 할머니의 온기처럼 따뜻했어요. 유골함을 옮기는데, 그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마치 할머니를 껴안고 있는 거 같았어요.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때 실감이 났습니다. 정말 마지막이라는 걸.


모든 장례식을 마치고 납골당에서 장례식장으로 돌아가는 차 안. 그제야 제주도 벚꽃이 보였습니다. 분홍빛 꽃망울. 벚나무에 벚꽃이 가득했습니다. 마치 할머니가 고생했다고 선물을 주는 것 같았어요. 꽃처럼 예민하기도 했지만, 봄날처럼 따뜻했던 할머니는 꽃이 가득한 봄날에 제주도의 벚꽃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할머니의 마지막 카톡 프로필 사진은 제가 드린 용돈 사진입니다. 할머니의 마지막 기억 속에 기특한 손자였길 바랍니다. 아름다운 벚꽃은 떨어졌지만, 그 자리에서 파릇파릇하게 자라나는 나뭇잎. 그 나뭇잎처럼 자라나는 할머니의 증손녀. 제 아이에게 할머니가 주신 사랑을 잘 전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제가 믿는 종교에서는 하늘나라에서 이생에 대한 기억이 남지 않지만, 저는 매년 벚꽃을 볼 때마다 할머니를 기억하겠습니다.


돌아보면 항상 감사했던 할머니. 부디 하나님 곁에서 평안하시길.


KakaoTalk_20250420_220637268.jpg 할머니의 마지막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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