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문득

생일선물 하고도 마음이 불편한 날

그래도 미안해.

by 한별

아내의 생일. 저희 집에서 아내의 생일은 크리스마스와 같습니다. 그날이 오기 며칠 전부터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이죠. 기독교에 성령강림절이 있듯이, 저희 집에는 아내 생일 주간이 있습니다. 아내의 생일을 기다리는 주간입니다. 이단 교주가 아닌가 의심된다고요? 얼추 비슷합니다. 다만, 저희 집에서만 국한된다는 게 다행일 뿐이에요.

아내는 저를 만나기 전에는 생일에 대해 지금보다 더 의미를 부여했다고 합니다. 생일이라고 어디 놀러 가기도 하고, 생일파티도 친한 친구무리 별로 몇 번에 걸쳐서 하고요. 그런데, 저는 그 반대입니다. 생일날이 평소보다 조금 뜻깊은 날이기는 합니다. 추석, 설날, 어린이날, 크리스마스보다는 못한 날입니다. 공휴일은 아니기 때문이죠.

아내와 제가 연애 때, 가장 크게 싸운 날도 아내의 생일날이었습니다. 저는 그냥 같이 맛있는 거 먹고 선물 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내의 기대치에 한참 미치지 못했어요. 아내는 어디서 밥 먹을지부터 해서 하나하나 생일기념 코스를 정하기 원했고, 저는 만나서 먹고 싶은 거 정하면 된다고 생각했죠. 저는 몰랐죠. 만나서 정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그렇게 큰 폭풍이 되어 돌아올지.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그날 헤어질 뻔했습니다. 대충 아무 데서나 밥 먹고 나간 다음에 각자의 차에 타서 각자의 길을 갔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아내는 차 안에서 한참을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랬던 아내가 저와 결혼하고 콩콩이를 낳으면서, 생일에 대한 기대감을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삶이 바쁘고 힘든 만큼 본인 생일을 챙길 여유도 없어진 거 같아요. (이번 생일이 또 미안해지네요) 다가온 2025년 생일 주간. 저는 이번 생일은 조금 값비싼 선물을 미리 사줬기에, 넘어가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 년에 생일 때만 써주던 편지도 안 쓰고 넘어갔고, 생일 때 사주던 꽃도 안 샀습니다. 일부러 안 한 건 아니고, 그래도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일날이 왔습니다.

막상 생일날이 되니, ‘이게 맞나?’ 싶더라고요. ‘나 이렇게 날로 먹어도 되나?’ 싶었습니다.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나 이렇게 넘어가도 되는 거 맞지?”

아내는 대답했습니다.

“편지라도 쓸 거라고 기대하긴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요즘 글 쓴다길래 편지 정도는 쓸 줄 알았는데 말이야.”

민망했던 저는 아내 생일날 “생일 축하해!”만 말로 10번은 했습니다. 처음에는 고맙다고 해주더니 나중에는 그만하라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불편할 줄 알았으면, 뭐라고 할걸. 지금도 후회하고 있습니다. 생일이 지났어도 뭐라도 해주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그건 제가 안 내킵니다. 내년 생일 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눈맞춤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