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랑 GPT 되나요?

by 한별

GPT를 유료로 사용하면서, 저는 모든 글쓰기를 GPT로 쓰기 시작했어요. 너무 효율적이기 때문이죠. 내가 원하는 글의 형식과 간단한 내용만 알려주면 글 한편이 뚝딱 나와버리잖아요. 회사 업무 말고 글 쓸 일이 거의 없다 보니, 나의 글은 모두 GPT와 함께 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죠.


GPT를 맹신하게 된 사건도 있어요. 부서를 이동하면서 제가 잘 모르는 내용에 대해 글을 써야 했습니다.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어서 대충 내용을 알아보고 제 생각대로 문서를 작성해서 제출했습니다. 이후에 팀장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고. 문제는 잘 모르는 내용에 대해 뭉뚱그려서 작성하다 보니, 저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 이후에 GPT를 본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내가 모르는 부분을 GPT에게 물어보고, 이해하고, GPT가 알려준 내용 중에서 괜찮은 부분을 선택해서 문서를 작성하고. 이 과정이 매우 쉽고, 시간도 아낄 수 있어서, GPT를 안 쓸 수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에게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계기’는 중요한 거 같아요. 앞으로 모든 글은 GPT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저인데, 어떤 ‘계기’로 GPT를 안 쓰고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얼마 전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의 생일이었어요. 저희 집은 생일 때 손 편지를 써주는 문화가 있어요.(물론 ‘저’만.. 아내는 사고 칠 때만 수습하고자 저에게 편지를 써줍니다.) 아내의 생일날 아침. 저는 그 당일이 주는 어떤 감정을 편지에 쓰고 싶어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편지를 한 자 한 자 쓰기 시작했어요. 내 감정을 펜으로 꾹꾹 눌러서 쓰고 있는데, 글이 잘 안 써지더라고요. 예전에는 손 편지를 쓰면 술술 써졌는데 말이죠. 문장도 이상하게 길어지고, 내가 썼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부분도 생겼어요. 빨리 쓰고 출근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생겼죠.


그래서.. GPT의 유혹이 스멀스멀 다가왔어요. GPT가 머릿속에서 말합니다.

“나를 쓰면 되잖아.”라고.


저는 GPT의 유혹에 귀를 기울일 수는 없었어요. GPT는 제 감정을 대신할 수는 없잖아요. GPT가 쓴 편지는 제가 쓴 편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내가 GPT의 글귀를 더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저의 진짜 감정은 아닐 테니까요.


GPT는 훌륭한 글쓰기 도구라고 생각해요. 저는 앞으로도 GPT, 더 나아가 다른 AI 프로그램을 돈을 내고 사용하게 될 거예요. 이런 흐름에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GPT를 사용하지 않는 즉, 효율을 따지지 않는 글쓰기를 계속해보려고 합니다. 효율과 상관없이 나의 감정을 긴 호흡으로 써보고 싶어요. 아내에게 손 편지를 쓰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나의 감정을 담아내는 글쓰기를 계속해서 해보려 합니다. 효율성만으로는 나의 삶이 안온해지지는 못할 거 같아요. GPT로 남에게 보여주는 글쓰기만 쓰는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한 글쓰기도 해보면 좋지 않을까요?

매거진의 이전글로망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