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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Apr 14. 2019

마크로비오틱으로 한국음식의 오해를 풀어보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새벽. 6일정도의 길지않은 일정치고는 제법 큰 트렁크를 끌고 인천공항행 버스에 올랐다. 커다란 스테인레스 대야와 크고 작은 조리도구들이 빚는 마찰음에 유난히 내 가방은 덜그럭거렸다.

 이 날을 맞이할 것이라는 것은 반년전부터 알고 있었다. 마크로비오틱 쿠킹스쿨 리마의 사범과정을 마치며 졸업작품을 출품해야하기 때문. 참석한 사람들과 나눌 졸업작품을 만들기 위해 일찌감치 주방이 마련된 숙소를 예약하고 레시피를 생각해 두었다. 

 쿠킹스쿨의 졸업발표회. 모든 참가자에게 동시에 그 날의 주제를 발표하고 주어진 시간 내에 정신없이 작품을 만들어내는 영화, 드라마 요리 경연을 상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하지만 마크로비오틱 쿠킹스쿨 리마의 발표회는 조금 다르다. 초급 부터 상급까지는 정해진 메뉴를 만들어 출품하고, 사범은 말그대로 자유주제. 본인이 창작한 마크로비오틱 요리를 레시피와 함께 제출한다. 그리고는 1등 2등과 같은 순위 없이 서로 덕담을 나누며 음식을 나눈다. 참가자들은 순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나누기 위한 이 자리를 위해 성심성의껏 요리를 한다.

 해외에서 참석하기 때문에 음식을 만들어 갖고 올 여건이 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가 마음을 담아 준비하는 이 자리에 결례가 되지 않는 작품을 출품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한국음식을 먹어보고 싶다는 동기들의 의견과 마크로비오틱으로 한국음식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다는 마음에 주방이 마련된 숙소를 빌려서라도 한국 음식을 준비하고 싶었다. 

 준비한 레시피는 봄양배추 물김치. 일본의 시판 김치는 화학첨가물이며 감미료로 범벅이 돼 살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맵고 짜고 달고, 이 삼박자를 갖춘 김치는 자극적인 맛의 덩어리라는 오해까지 안고 있다. 하지만 김치라고 해서 모두 자극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역과 풍토에 따라 그 환경에 가장 걸맞는 김치가 발전해 왔다.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고 일본에 맞춘 레시피로 김치를 만들어 한국음식에 대한 오해를 풀어보고 싶었다. 이런 마음으로 일본의 어느 슈퍼마켓에서도 구할 수 있는 재료만으로 만드는 물김치 레시피를 내기로 했다. 이번 김치의 주재료로는 봄양배추. 봄에 수확하는 양배추라고 다 봄양배추인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봄양배추라는 이름을 가진 품종이 있다. 이 봄양배추는 가열하지 않고도 유난히 부드러워 물김치에도 제격이다. 그렇게 일요일의 발표회에 맞춰 목요일 아침비행기로 도쿄에 들어가 짐을 풀자마자 장을 보고 김치를 담갔다. 그리고는 날씨와 시간에게 맡길뿐. 부디 날이 따뜻해 김치가 맛있게 익어주길 바라며 침실 가장 따뜻한 곳에 김치를 모셔두었다.

 또 한가지, 검은콩으로 만든 전을 출품하기로 했다. 마크로비오틱에서는 가급적 곡물 가루로 만든 분식보다는 정제하지 않은 곡물을 섭취할 것을 권한다. 한번 정제한 것은 이미 생명력을 잃은 상태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쌀가루를 물에 담가 두고 싹이 나길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현미를 물에 담가 두면 싹이 난다. 이처럼 가루를 낸 곡식과 정제과정을 최소한으로 줄인 통곡물의 생명력은 다르다.


 그렇다면 발상을 전환해 한국의 대표적인 분식, 전을 밀가루, 부침가루 없이 생명력이 넘치는 재료만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녹두전이 이와도 같다. 생명력이 넘치면서도 먹고나도 뱃속이 편안한 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또한 집에서 만든 것을 가져와 출품하는 리마의 발표회의 특성상, 주먹밥, 치라시스시 등 밥을 출품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반찬으로 부침개와 김치를 곁들이면 우리의 식탁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었다.

백태로 전을 부쳤을때에는 거의 빚어내다 시피 진땀을 흘리며 전을 부쳐냈다.

 일반적인 녹두전은 깐녹두를 사용한다. 하지만 마크로비오틱의 일물전체(一物全体)를 생각하자면 단순히 색깔을 위해 껍질을 벗겨내는 것은 피하고 싶다. 껍질을 벗겨내지 않고 다른 콩을 사용하고 싶어 백태를 사용해 몇번이고 테스트를 해보았다. 하지만 밀가루, 전분을 넣지 않는 이상 백태는 프라이팬에 올려놓아도 부풀기만 할 뿐 부침개의 모습을 갖추지 않는다. 심지어 온통 기름을 잡아 먹어 느끼하기 까지 하다. 먹고 난 후 속이 편해야할 마크로비오틱인데 먹다가 탈이 날 것 같다. 답답했다.


 이럴 때는 기초로 돌아가는 것이 좋다. 부푸는 성질은 마크로비오틱의 음(陰)의 성질. 그렇다면 같은 콩류중에 비교적 양(陽)의 성질을 지닌 검은콩이라면 어떨까? 검은콩 전...적어도 우리집에서는 해본 적 없다. 하지만 이게 웬걸. 마크로비오틱의 음과 양은 이리도 신기하다. 재료 중 백태를 검은콩으로 바꾸었을 뿐인데, 부풀기만 하던 전이 가루 한톨 넣지 않고도 전의 모습을 갖춰 얌전히 익어준다. 숙주와 물김치 건더기, 부추등을 넣고 밀가루, 전분 한톨 없이 전으로 부쳐내니, 이리도 속편한 전이 있을 수 없다. 일본의 코리안 타운에서 오코노미야키와 야채튀김을 떠올리게 하는 야매 전을 먹던 일본 친구들에게 새로운 전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발표회 당일. 이 발표회는 리마의 파티와도 같은 날이기에 평소 조리복모습이 익숙하던 선생님들도 기모노, 원피스와 구두로 차려 입고 우리를 맞이 했다. 그리고 다가온, 동기들의 숨은 실력을 엿보고 모두의 요리를 나누는 시간. 선생님들도 학생들의 요리를 조금씩 맛보며 밥을 더 잘 짓는 요령, 더 먹음직스러운 플레이팅 방법등,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다. 전을 출품한 나에게는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만들어낸 향토요리는 맛이 없을 수가 없다며 너털웃음을 지으시기도 했다. 사범과의 정규 수업 뿐만 아니라 틈틈히 초급, 중급 강좌 재수강을 하며 복습을 한 덕에, 동기들 뿐 아니라, 초급, 중급의 동료들도 나의 작품을 맛보러 찾아오기도 했다. 집에서도 마크로비오틱 한국 요리를 하겠다며 내 레시피를 사진으로 담아가는 모습에 이 날을 위해 한국에서 부터 짐을 짊어지고 온 보람을 한 몸에 느꼈다.


 리마의 발표회. 정식 이름은 시작회이다. 이 행사는 50년에 가까운 세월을 이어온 전통으로 이번으로 143회째를 맞았다. 그리고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시작회라는 행사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시작회 대신, 선생님들, 사범과 수료생들의 음식을 나눠먹으며 교류하는 리마파티로 다시 태어난다. 때문에, 많은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교류하는 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을 이어온 리마의 한가지 전통이 사라진다는 섭섭한 마음에 눈물을 보이는 선생님들도 계셨다. 하지만 학생들 앞에서 만큼은 오늘 이 자리에서 기뻤던 점을 말씀해주셨다. 그 중 인상깊었던 말씀은, 이 학교는 요리를 공부하는 곳이지만 식생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하는 라이프스타일임을 알리는 리마의 가르침이 어느새 학생들의 생활에도 자리했음을 알수있었다는 말씀. 많은 사람들이 먹을 양의 요리를 준비해오며, 나누어 먹기 좋게끔 준비를 해야한다. 일회용 포장용기와 컵이 있으면 돌아가는 손이 가볍겠지만, 리마의 가르침을 받아온 학생들은 누군가 시킨것도 아닌데도 일회용 그릇, 컵 없이 무거운 그릇과 여분의 컵까지 갖고 온 모습들이었다. 나 역시 물김치를 나눠 먹기 위해 작은 그릇을 갖고 왔다. 플레이팅을 하면서도 그 흔한 키친타월 한장 사용하지 않았다. 유난히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많이 사용하는 일본이지만 다들 일회용 나무젓가락 없이 시식용 나무젓가락을 준비해오기도 했다. 

다들 집에서 무거운 그릇과 도마를 짊어지고 와 플레이팅 한 모습

 마지막 시작회를 기념해 리마의 교장, 오카다 선생님은 특히 사범과를 졸업하는 사람들은 마크로비오틱을 타인에게 베푸는 입장에서 혼자 즐기던 마크로비오틱을, 먹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행복, 인생까지 생각할것을 강조하셨다.

 사범과를 시작할 때만 해도 몇달 뒤면 이 발표회를 걸쳐, 나는 한국에 몇 없는 마크로비오틱 사범이 되겠거니,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발표회를 거쳐 사범 수료증을 받고나서야 비로소 리마가 인정한 사범이라는 자리가 이토록 어깨가 무거워지는 역할이라는 것을 이제 와서 실감했다. 졸업장을 받고 나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어림없었다. 마음이 몹시 복잡했다. 내가 알려야할 마크로비오틱은 어떤 것인가. ‘절대 안된다’와 ‘꼭 지켜야한다’가 없는 마크로비오틱. 그 때문에도 ‘마크로비오틱이 뭐야?’ 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가 어려운 마크로비오틱. 마크로비오틱 사범으로써 나는 어떤 길을 나아가야 할것인가. 한가지 끝은 한가지 새로운 시작이기에, 사범과정을 끝낸 날, 지금까지 마크로비오틱을 공부하며 가장 깊은 고민에 빠지며 도쿄를 떠나왔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조각글과 팝업식당,클래스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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