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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Jun 15. 2019

완두콩, 깻순. 만나서 반갑다, 초여름.

6월 첫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식탁

 이제 제법 한여름 작물들도 눈에 들어온다. 토마토, 애호박 등. 여름 작물들은 색감도 알록달록하고 손질도 편해, 계절과 무관하게 사용하기 마련. 하지만, 토마토, 가지, 애호박 등 한 여름을 대표하는 작물들은 마크로비오틱의 관점에서는 음의 성질이 상당히 강하다. 이러한 작물들에 양의 조리를 더하지 않고 자주 섭취하다 보면, 몸은 음으로 음으로 치우쳐, 오뉴월에 감기에 걸리거나, 다가올 음의 계절, 장마에 고생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아직 여름의 입구에 들어선 이 시기에는 여름철 채소들도 익혀서 먹거나, 소금, 간장 등 양의 성질을 재료를 사용해 음의 성질을 중화시켜주는 등의 조리를 하곤 한다.

 이른 6월의 수요일. 평소 금요일과 토요일에만 운영을 하는 팝업식당이지만 이 날 만큼은 수요일 하루를 추가로 운영을 하기로 했다. 소셜 살롱 문토 ‘나와 만나는 주방’ 멤버들이 나의 작은 팝업식당을 찾아주었다. 이렇게 손질한 여름 채소들로 멤버들을 위한 식탁을 차렸다. 총 11인분. 많은 인원이라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혼자서 자분자분 채소를 손질하며 운영하는 식당이기에 이렇게 많은 인원수의 식사를 동시에 준비하는 것은 처음이다. 퇴근후 배가 고파있을 멤버들을 생각하며 정신없이 식사를 준비하기도 했지만, 카운터에 줄지어 늘어선 플레이트를 바라보는 마음은 꽤나 즐겁다. 이렇게 딱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만 많은 손님들이 찾아주면 좋을 것 같다. 더 바라지는 않는다. 이것보다 적어도 괜찮을 것도같다.

 초여름을 알리는 작물, 완두콩의 계절이 돌아왔다.완두콩깍지를 까며 창밖을 바라보니, 프로젝트 하다 입구에 장미가 만개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거나 향을 맡는다.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띄어 있다. 누구는 장미를 즐겼겠지만 나는 조리대를 마주하고 완두콩깍지를 깠다. 장미향을 맡지 않아도, 라디오를 들으며 알이 꽉찬 완두콩깍지를 까고 있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이 완두콩을 팔팔 끓는 소금물에 넣으면 연두빛은 진해지고, 통통해진 콩알이 조금씩 수면으로 떠오른다. 이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이럴 때에는 그저 채소를 만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렇게 다듬은 완두콩은 표고버섯과 함께 밥을 지어 식당메뉴로 나갔다.

이 주의 팝업식당 ‘오늘’의 메뉴.

 완두 표고 현미밥

 깻순 감자 된장국

 논오일 부추 매쉬 포테이토와 마늘쫑 볶음

 매콤 방울토마토무침

 부추 표고 전

 중화풍 청경채와 만가닥버섯 볶음


 깻순. 깻잎도 아니고 깻순이다. 더 억세지기 전, 이 시기에만 즐길 수 있는 녀석. 고기를 먹지 않아 입이 심심하지 않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녀석들이 있어, 심심할 틈이 없다. 시기를 놓치면 먹지 못하는 작물들. 두릅, 산나물, 깻순… 이 깻순은 감자와 함께 약간은 매콤한 된장국으로 만들었다. 

 마크로비오틱에서는 기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쿠킹스쿨 리마에서도 튀김요리를 자주해 놀라기도 했다. 다만, 기름을 사용할 때에는 체질과 환경의 변화는 고려하며 사용해야 한다. 어느쪽인가 하면 기름은 음의 성질을 갖는 재료인데, 특히나 가열하지 않은 기름은 더욱 음의 성질을 강하게 갖는다. 때문에 가열하지 않은 기름으로 나물을 버무리거나 샐러드 드레싱을 만드는 것은 양의 계절인, 더운 여름철에는 어울리겠지만, 이외의 계절에는 마크로비오틱 기본식으로서는 적극 권장하지는 않는다. 곧 음의 계절, 장마철이 다가오기에 이런 계절에는 가급적 피해주는 것이 좋다. 때문에, 제철 감자로 매쉬포테이토를 만들었지만 기름을 쏙빼고 담백하게 만들어 식당메뉴로 내어보았다.


 지난번 빵을 담은 컬러풀한 식사를 내고 감사하게도 손님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 금요일에 포스팅한 플레이트 사진을 보고 곧장 토요일에 먼 곳에서 찾아온 손님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플레이트가 화려할 수는 없다. 계절과 무관하게 늘 빵을 낼 마음도 없다. 때문에 다시 밥으로 돌아가 이 주의 식사를 준비하며 조금은 부담이 있었다. 밥이 빵만큼 각광받지 못한다면, 시대의 흐름에 굴복한 듯해 조금은 우울한 마음이 들것도 같았다. 


 하지만 괜한 걱정을 한걸까. 손님들은 변함없이 밥도 사랑해주었다. 예약을 할 때부터, 밥도 좋다. 밥이 그리웠다는 말씀을 해주시기도 하고, 식사를 마친 손님은 밥이 너무 맛있어 밥만으로도 한솥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감상을 남겨주기도 했다.

 토요일 조금 이른 점심. 운동을 하고 온듯한 신사 한분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자리를 잡았다. 마크로플레이트와 사무엘 아담스 한병. 드디어 나의 식당에서도 낮술을 하는 손님이 생겼다. 맥주가 제법 어울리는 메뉴라 다행이었다. 플레이트를 받아든 손님. 말 그대로 게눈 감추듯 나의 식당에서 토요일 점심식사를 해결했다. 맑은 초여름의 오전. 운동을 마치고 맥주와 함께 건강한 한끼 식사라니. 식사를 내고보니 문득 손님이 부러워지기도 하며, 누군가에게 즐거운 주말을 선사한 듯해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가로수의 초록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을 맞이하며 마시는 낮술이 기분 좋은 계절. 초여름이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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