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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Aug 07. 2019

나에겐 내 밥이 가장 편하다

8월 첫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비가 쏟아지기도, 물 속을 거니는 듯 축축하기도 했던 7월 말. 몸을 식혀주는 여름채소들이 우르르 장터에 몰려나와 있지만, 불쾌지수가 높고 하루가 멀다하고 날씨가 변하는 날이 계속 될수록, 음과 양의 균형이 잡힌 식사가 중요하다. 그래야 몸도 마음도 뽀송하게 지낼 수 있다. 음의 성질은 몸을 식혀주는 성질도 갖고 있으나, 과하면 늘어지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가만히 있어도 불쾌지수가 높은 계절에 우울한 마음까지 생긴다면 에어컨바람을 쐬며 시원하게 여름을 나도, 마음은 상쾌하지 않을 것.

 균형 잡힌 식사를 하기 위해 음과 양 어느쪽으로도 치우쳐지지 재료로 식단을 구성해본다. 여러 재료가 있을 수 있으나, 곡물을 선택해 본다. ‘채식’이 아닌 ‘곡물채식’을 권장하는 마크로비오틱. 식단의 60~70%이상을 곡식으로 채우는 것이 균형잡힌 식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늘 주식으로 챙겨먹는 쌀 이외의 곡식으로 요리를 해본 경험이 드문 사람이 많지 않을까. 하지만 이 곡식이라는 녀석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시골소녀가 떠오로는 구수한 향과 도시소녀가 떠오르는 톡톡 씹히는 식감을 동시에 가진, ‘반전갑’ 퀴노아. 부드럽게 지어 으깨면 마치 감자같은 찰기장. 옥수수 인지 보리 인지 알다 가도 모를 율무. 종잇장 씹는 맛같아 어색했던 첫만남의 오트밀...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장마와의 마지막 사투를 선언하며, 현미밥에 찰기장으로 만든 프리타타, 퀴노아로 만든 샐러드를 곁들여 곡물의 비중을 한층 늘렸다. 여기에 우리집 보물 열무김치와 식당영업 후 남은 애호박과 템페를 올려본다. 찰기장 프리타타에는 커리가루를 섞어 노란색을 내며 끼를 부려보니 정말 달걀로 만든 프리타타 같다. 여기에 잣과 바질을 듬뿍넣어 만든 바질페스토를 바르니 할매입맛을 자랑하던 나의 식탁에도 새 바람이 분 듯하다.


 얼마전, 언니가 나에게 문득 물었다.

 ‘혜연아. 너 요즘 다양한 일을 하며 지내잖아. 그 중 뭐가 제일 재밌었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빵만들기!’

 에세이 출간, 방송 출연, 식당영업 등의 대답을 기대했던 터라, 언니는 이런 나의 대답에 조금 당황해하는 눈치였지만, 사실이다. 최근 한 일 중에, 그 어떤 부담감, 책임감 없이 마냥 즐겁게 한 일이 빵 만들기 말고 또 있으려나. 스팀기능이 있는 오븐, 쿠프용 칼 등, 필요한 도구 없이 이 대신 잇몸으로 구워내고, 완성된 모습은 비록 크고 아름다운 돌덩이 같지만 빵 만들기는 내 일상에 새 바람이 되어주었다. 소금, 물, 밀 그리고 온도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얻었으니 그 가성비 또한 놀랍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종종 ‘어디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는 능력 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나에게 ‘파워포인트 두드리기’ 는 그 능력은 아니지만 ‘빵 만들기’는 생존능력의 조건에 부합했다. 굶어 죽을 일은 없으니. 이렇게 구운 빵에는 직접 만든 바질 페스토를 바르고 토마토를 올려 훌륭한 아침식사로 즐겼다. 조금은 거칠고 빽빽하지만 뱃속에는 편하다. 이렇게 점점 속세(?)의 빵과도 멀어져 간다. 

 모임기획을 할때에는 이 시기에 내가 이렇게도 빵에 빠질 줄은 몰랐는데, 때 마침 이번 문토 ‘나와 만나는 주방’에서는 빵을 주식으로, ‘여름날의 마크로비오틱 브런치’를 함께 차려보았다. 나에게 사워도우를 가르쳐주신 연희동의 ‘오늘’ 빵집의 선생님께 특별히 우리밀로 만든 100%통밀빵을 부탁드렸다. 적당하기 그지 없는 나의 부탁에 섬세하신 선생님은  금강통밀빵에 앉은뱅이 밀기울을 뿌려 조금한 터프한 빵을 만들어 주셨다.

 이번 모임에서는 각종 직거래를 통해 다양한 농부님, 생산자들의 조금은 낯설수도 있는 작물을 많이 사용했다. 그린빈, 오크라, 템페 등. 가까운 곳에서 구하기 어려운 재료를 사용한 요리는 배워도 재현이 어렵기에 쿠킹클래스나 모임에서는 사용하려 하지않는 편. 하지만 ‘흥미’는 ‘익숙함’을 이겼다. 아직 서툴고 주방에 익숙하지 않지만, 그린빈을 주문하겠다며 농부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기도 하고, 농부님의 SNS를 살펴보고 다른 작물들을 주문하기도 한 멤버들. 함께 요리를 하며 잠시 즐거운 경험을 하고 가는 것도 좋지만, 그 경험이 일상의 요리에도 연결되기를 바라는 나이기에, 이러한 멤버들의 변화에 ‘실천’을 장려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임 재료를 사면서 나도 몇가지를 사왔다. 오랜만에 루꼴라를 샀다. 우리집 옥상에도 와일드 루꼴라를 심었는데 벌레들과의 사투로 이번 루꼴라 농사는 실패했다. 벌레 먹은 루꼴라를 보니 비로소 유기농,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는 분들의 고생을 실감할 수 있다. 나와 달리 농부님이 당당하게 키워내신 루꼴라는 구운 토마토 덮밥에 곁들였다. 볶아 양념을 한 미역을 현미밥과 버무리고, 그 위에 도톰하게 썰어 각종 향신료와 함께 구운 토마토, 그리고 루꼴라를 올리니 뚝딱 한끼 여름 밥상이 완성된다. 요즘 같은 때에는 여름채소를 생으로 먹으면 배가 아프다거나 두통이 생긴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데, 이런 분들은, 체질상 음의 성질이 강한 음식에 약한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아무리 여름철이어도 음의 성질이 강한 음식을 먹을 때에는 가열하거나 적당히 간을 하는 등 양의 조리나 양의 성질을 가진 재료를 더하는 것을 추천한다. 


 지긋지긋하던 장마가 갔더니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작은 식당에서 만이라도 더위를 잊고 가셨으면 한다. 수분 가득한 여름채소들과 여름과일로 이번주 플레이트를 차려보았다. 

 지난주 팝업식당 오늘의 마크로플레이트

현미밥

콩나물오이냉국

오이지무침

퀴노아샐러드

애호박 바바가누쉬를 올린 찐감자

그린빈 두부무침

참외쏨땀

 미리 준비만 해두면 주문을 받고 난 뒤에는 거의 불을 쓸 필요가 없는 메뉴들로 구성해 보았다. 주문을 받은 직후 감자를 한번 더 찌고 바바가누쉬를 살짝 데우기만 하면 된다. 만드는 사람이 즐거워야 먹는 사람도 즐겁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요리하는 나도 더위를 피해 즐겁게 요리할 수 있는 메뉴였다.

 하우스재배로 사시사철 여름채소들을 만날 수 있지만, 한여름 채소들은 음의 성질이 무척 강하기에 늘 양의 조리를 더해왔지만, 1년중 가장 덥다는 대서다. 35도를 넘는 기온, 그리고 따가울 정도의 햇빛. 이런 때에는 자연이 주는 선물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오이, 토마토 등 한 여름 채소의 음의 성질을 살리기 위해 가열하지 않고 퀴노아와 버무려 샐러드를 만든다. 된장국 없이는 밥을 먹은 듯한 기분이 나지 않는 나 마저도 이 계절에는 잠시 바람을 피워본다. 

장마전 여린 오이로 담근 오이지를 개봉했다. 이 오이지를 맛있게 담그겠다고, 엄마는 아픈 무릎을 이끌고 옥상에서 항아리를 가져와, 깨끗이 닦았다. 엄마의 무릎과 항아리, 장마전의 오이로 만든 오이지를 손님들은 싹싹 비웠다. 시원한 콩나물 오이 냉국에 오이지무침을 곁들이면 한도 끝도 없이 밥이 들어갈 듯 하다. 설탕, 식초로 자극적인 오이냉국의 맛은 기억도 나지 않을 것. 어른, 아이를 가리지 않고 좋아해 야무지게 국물에 밥을 말아 오이지를 올려 드셨다.

 지난 겨울,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된 한 청년이 식당을 찾아 왔다. 한국과 한국음식을 좋아하며 비건 쉐프를 꿈꾸는 외국인 청년인데 나의 음식을 먹어보고 대화도 나누어보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울의 다양한 비건 음식점의 쉐프들과 만나보고 있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서울의 여러 비건 음식점에 대해 질문을 받기도 하고, 그곳에 대한 나의 평가도 기대하는 듯 했는데, 아쉽게도 가본 곳이 많지 않다. 


 들어본 곳은 많은데, 가본 곳은 거의 없네.
사실 난, 내 밥을 가장 좋아해서, 외식을 거의 안해

 이런 나의 대답에 그는 ‘그 정도로 자기 음식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니’라는 반응을 보이며 잠시 놀라워 했다. 순간 아차 싶었다.


 ‘내 밥을 가장 좋아한다’는 말은 ‘내 음식이 가장 맛있다’ 라는 말과는 다르다. ‘내 얼굴에 만족한다’ 라는 말이 ‘내가 제일 예쁘다’라는 말과는 다른 것 처럼. 


 ‘내 음식이 가장 맛있다’ 라는 말 보다는 ‘내 밥이 나에게는 가장 편하다’ 라는 말에 가깝다. 나의 몸을 잘 알고 나에게 필요한 음식을 직접 해먹을 줄 안다는 말과 같다. 오늘은 날이 어제보다 더우니 주식을 조금더 가볍게 바꿔보겠다, 라든가, 어제부터 게으름만 부리고 몸이 늘어지니 몸에 긴장을 주고 오늘은 조금더 활동적이게 움직이기 위해 이런 차를 마시겠다 라든가. 아침에 일어나 정신이 들면 자연스럽게 그 날의 몸 상태에 따라 나에게 필요한 음식, 또는 활동이 떠오르니 외식을 하기 보다는 나에게 필요한 음식을 더 맛있게 해 먹는데 집중하며 살아왔다. (그 덕인지, 금요일 토요일이면 앉을 새가 없이 하루 12시간에 가까운 노동을 하며 사는데도, 잔병치레를 한적이 없다. 따로 챙겨먹는 영양제도 없다.) 나의 작은 식당에서는, 손님 개개인에게 꼭 맞춘 식단을 제공하기는 어렵기에, 날씨, 계절의 변화에 맞춰 평균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몸에 편할 듯한 식사를 내려 노력하고 있다. 

 때문에 내 음식이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비건 음식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하지만 서울에서 가장 속 편한 음식이었으면 한다. 나아가 쿠킹클래스에서는, 수강하시는 분들이 스스로에게 가장 편한 밥을 알고, 그 밥을 일상에서 즐겁게 해먹을수 있게끔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다. 누구나 ‘나에게 가장 편한 밥’을 차려 먹을 수 있다. 7년동안 엑셀과 파워포인트를 두드리며 살던 나도 할 수 있으니, 누구나 할 수 있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팝업식당, 쿠킹클래스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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