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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Aug 15. 2019

한여름. 지금이야말로 주방과 친해질 절호의 찬스.

8월 둘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마크로비오틱을 만나기 전후로 나의 생활과 가치관은 몰라보게 바뀌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식재료를 대하는 자세다. 특히, 주어진 재료를 감사한 마음으로 사용하며, 가급적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 마크로비오틱 식생활에서는 먹을수 있는 부위라면 가급적 뿌리나 껍질도 버리지 않고 먹기에, 조리를 하며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도 무척 적으며, 남은 음식을 응용해 먹거나 냉장고를 파먹는 기술이 날로 늘어 간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매출이 많았던 날보다도, 남은 음식이 적은 날의 기쁨이 더 큰 것도 같다. 

 지난주는 한끼 식사로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남은 음식과 재료가 적었으니 성공적인 한주 영업이었다. 그린빈 두부무침을 만들고 남은 두부소스는 절인 오이와 버무리고, 콩나물오이냉국을 만들고 남은 콩나물은 그대로 조선간장과 참기름에 버무리니 입맛 돋구는 나물이 된다. 게다가 늦여름 별미 고구마줄기나물이라니. 영업후 남은 재료로 훌륭한 한끼를 차렸다.

 홍콩에 사는 언니와 조카가 한국을 방문했다. 성격도 무뚝뚝한데다가, 조카가 더 어릴적, 나는 혼자 일본에 살아, 조카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기에,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왜인지 이 녀석은 나와의 시간을 즐기는 듯 하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얼마전 서울에서 보낸 즐거웠던 기억 중 두번째로 나와 보낸 시간을 꼽았다니, 이 때문에, 사돈어른 (언니의 시부모님)께서는 내가 아이보기에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 동생이 없는 외동딸로 자라며, 엄마의 ‘동생’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것은 아닐까도 싶다.

조카가 그려준 상상속의 조카집의 모습. 나는 꼭대기 층에 오븐과 오가닉 농장이 있는 꼭대기 층 가장 넓은 방에 살고 있다. 엄마는 1층에서 애완동물 공룡, 뱀과 함께 사는데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 관심을 보이면 무엇하나, 놀아줄 줄을 모르는데… 급하게 부모님이 집을 비우며, 나와 이 일곱살 어린이 둘만이 집에 남겨졌다. 읽을만한 책도 읽었고, 만화영화도 보았으니 슬슬 심심해하기 시작한다. 

 나에게 익숙한 것은 요리이니, 그것으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 재료야 집에 널려있고, 쿠키레시피 정도야 감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요리사답게 밀대와 귀여운 쿠키틀도 상비해두었다. 계량은 내가 하고, 조카는 준비된 재료를 조립하는 것 뿐이지만, 스스로의 손으로 먹거리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아이어른 가리지 않고 즐거운 경험인가 보다. 직접 밀대를 밀어보기도 하고, 흑임자를 사용해 자유롭게 쿠키를 꾸미며 까르르 웃기도 한다. 만들어낸 쿠키는 엄마가 돌아오면 나눠줄거라고 먹고싶은 마음을 꾹 참고 아껴두기까지 했다. 듣자하니 나중에 동네방네 쿠키 자랑을 했다나. 사돈어른께서 기대하신 능력을 발휘한 듯 해 어깨가 으쓱하다. 아이보기 경험이 전무한 30세 이모도, 쿠키만들기 한번으로 7세어린이와 오후시간 보내기를 훌륭하게 해냈다. 다시한번, 요리는 진정, 생존능력이라는 생각을 한다.

 만든 것을 먹어줄 식구(食口)가 평소보다 늘었으니, 레시피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본다. 워낙에 인기가 있기에 오랫동안 베이킹클래스 커리큘럼을 바꾸지 않아왔는데, 가을부터는 새 커리큘럼을 추가해보려고 하고 있다. 그동안 진행했던 ‘부담없이 따라하는 글루텐프리 베이킹’클래스에서는 누구나 쉽게 집에서 따라할 수 있는 레시피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번에는 유제품, 달걀없이는 재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식감을 지닌 디저트를 마크로비오틱 스타일로 풀어내는 레시피를 만들어 보고 있다.

 최근에는 그 대표 주자로 브라우니를 만들고 있다. 디저트라는 것이 원래 달콤하고, 건강을 위해 챙겨먹는 음식은 아니지만, 그 중 브라우니는 디저트 중에서도 건강에 주는 부담이 크지 않을까 싶다. 그 촉촉 꾸덕한 식감을 만들기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버터, 초콜릿이 들어가니. 게다가 그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얹어먹는다니...아찔하다. 하지만 유제품이 없이도 충분히 촉촉한 브라우니를 만들 수 있다. 설탕, 초콜릿이 들어가지 않기에 일반 브라우니 같은 쨍한 단 맛은 없지만 그래서 담백하고 정감이 간다. 이번에는 조금 더 재미를 주기 위해 초코브라우니 위해 뽕잎 브라우니를 올려 이층 브라우니를 만들기도 했다. 

무농약 레몬을 구하기 어려워, 당분간 클래스, 식당에서는 선보이지 못할 현미 마들렌. 아쉽다...

 레시피야 여러 종류로 만들 수 있지만, 수업을 위해서는 고려할 점이 많다. 준비과정이 너무 복잡하지는 않은지, 재료가 너무 비싸지는 않은지, 구하기 쉬우며 베이킹을 할 때 이외에도 쓰임새가 다양한 재료인지, 유기농 재료를 구할 수 있는지 등. 말린 과일 등 약간의 가공이 된 상태에서 구입하는 재료의 경우, 가공과정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몸에 부담을 주는 재료가 섞여있는지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이런 나의 수업 준비 과정을 본 언니는, 독립투사를 방불케 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독립투사 베이킹’이라는 주제로 수업을 개설해보라고 하기 까지 했다. 이렇게 재료에 대해 알아보고, 레시피 테스트를 하고, 사진을 찍다 보면 새 커리큘럼, 새 레시피를 만드는 기간은 정신없이 시간이 흐른다. 다만 만든 제품의 맛과 식감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도 들어보아야 하니, 이 기간에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입이 호강한다.

 덥다. 그리고 햇살이 뜨겁다. 온 몸의 수분과 염분을 함께 빼앗아 가는 날씨. 햇살이 빼앗아간 수분과 염분은 식사로 보충한다. 반찬에 생채소나 가벼운 조리를 한 채소를 늘려보았다. 그리고 부족해진 염분을 보충하기 위해, 방울토마토와 적채는 누룩소금에 절여둔 뒤 사용하고, 오이지도 곁들였다. 생 오이는 토마토, 톳과 함께 봄에 담근 금귤고추에 버무려 새콤 알싸한 밥반찬으로 내어본다. 식사중 채소를 통해 충분히 수분을 섭취하기에 얼음 띄운 음료, 아이스크림, 빙수가 없어도 좀처럼 갈증을 느끼지 않는다. 이렇게 과하게 몸을 식히는 음식에 의지해 여름을 나면, 몸이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식혀주지 못해 쉽게 더위를 탄다.또, 찬 음식을 먹은 직후에는 시원해진 듯 하나, 그 성질이 과해, 이내 에어컨바람을 맞으며 냉방병이 도지거나 38도의 폭염 아래에서도 수족냉증을 토로하며 가디건을 상비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가 아니라 수년전 나의 이야기다. 그리고 나의 작은 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더위에 지쳐 있었을 손님들을 위해 차린 지난주 팝업식당 오늘의 마크로플레이트.

현미밥

콩나물오이냉국

오이해초금귤고추무침

율무샐러드

바싹 두부 난반즈케

시골풍 라따뚜이

방울토마토와 양배추 누룩소금 나물


 생채소를 아낌없이 사용하고, 필요한 염분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게끔, 저장식품들을 활용했다. 봄에 담근 금귤고추의 염분과 누룩소금의 염분이 그 주인공. 손님들에게 조금은 새로운 맛을 선보이기 위해 금귤고추와 누룩소금이라는 조금은 생소할 수도 있는 조미료를 사용했을 뿐, 소금, 간장과 같이 익숙한 재료들에 재워두는 것도 좋다.  

 두부는 기름지지 않을 정도로 바삭하게 구운뒤 식초, 간장 양념에 재워둔뒤, 간 무, 당근, 파 등의 채소와 식초, 간장 양념을 끼얹어 내었다. 일본에서 여름철 별미로 즐겨 먹는 ‘난반즈케’인데, 일반적으로 닭고기 등을 튀긴뒤 마요네즈 소스도 곁들이는 경우가 많아, ‘건강식’과는 거리가 먼 메뉴이다. 튀김에 마요네즈라니, 대사와 소화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아찔하다. 하지만, 마요네즈 없이 상큼함을 매력으로 내세운 메뉴로 변신시키고 기름에 구운 두부의 소화를 도울 간 무를 곁들인다.

 무척 더웠던 지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지난주에도 가급적 불을 적게 쓰는 메뉴들을 선택했다. 만드는 나도 쾌적하고 즐겁게 요리해야, 먹는 사람도 즐겁다. 또한 신기하게도, 음과 양의 균형만을 생각해도, 지금 계절에는 이런 가벼운 조리들이 걸맞다. 

 이렇게 더운 계절에 어떻게 요리를 하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한다. 하지만 발상을 바꿔 생각해보면 지금이야말로 요리, 그리고 주방과 친해질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가벼운 조리, 짧게 가열하는 것이 어울리는 계절이니, 뚝딱 여러가지 반찬을 해낼 수 있다. 흙이 잔뜩 묻은 뿌리채소나, 줄기와 잎을 나눠 손질해야하는 잎채소보다는 매끈한 열매채소들이 제철이니, 밑손질도 쉽다. 

 물론, 곧 다가올 가을, 겨울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하지만, 모처럼 주어진 주방과 친해질 수 있는 이 기회를 만끽하는 것은 어떨까? 송송송 탁탁탁 썰고 소금 솔솔, 조선간장 또르르, 때로는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 휘리릭. 순식간에 곰손 같던 내 손 끝에서 반찬 몇가지가 태어나는 경험은 꽤나 짜릿하고 오래도록 기억된다. 내 조카가 나와 만든 쿠키를 두고두고 자랑했던 것처럼. 그렇게 초보자의 여름 요리를 즐기다 보면, 슬슬 욕심이 생긴다. 조금 더 불을 써보고 싶다던가, 재료 손질을 더 공부해보고 싶다던가. 욕심이 머리를 들때쯤에는 자연스럽게 불을 쓰기에도 편하고, 가열시간이 길고, 가열온도가 높은 요리가 어울리는 계절이 되어가고 있을 것이다.

 집밖을 나서는 것 만으로도 땀이 주르르 흐르는 요즘. 무엇하러 밖에 나가나. 집에서 시원한 오이와 토마토를 만지며 요리를 하고 이것을 나눠먹는 즐거움을 느껴보라. 한여름. 지금이야말로 주방과 친해질 절호의 찬스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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