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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Aug 21. 2019

30대. 타협하기 보다는 상호를 이해해보자.

8월 셋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밥상

 계산을 잘못해서 양배추, 토마토 누룩소금절임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 그래도 괜찮다. 갓데쳐 식혀둔 소면에 열무김치와 함께 올리면 그대로 비빔국수 고명이 되고, 참기름을 두르면 밥반찬이 된다. 남은 더위를 보내기에도 제격인 토마토. 찬바람이 불면 당분간 생 토마토와는 작별을 할테니 아쉽지 않게끔 즐겨본다.

 광복절과 샌드위치 휴일을 맞아, 서울을 떠난 손님들이 많을 것 같아, 한주 식당영업을 쉬고, 베이킹클래스로 대체했다. 여러번 진행해본 클래스이기에 아무렴 식당영업을 하는 주보다는 여유롭다. 하지만, 좀처럼 쉬지 않을 팔자인가보다. 천연발효빵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에, 미리 지난번 빵수업을 해주신 선생님께 문의를 드려 또 연희동을 찾았다. 이번에는 현미밥을 넣어 만든 현미롤과 흰밀을 섞어 만든 사워도우다. 100%통밀빵은 대형 체인점 빵에 비하면 빽빽하고 거칠기에 우리가족들에게는 비인기 종목이다. 게다가, 요즘 젊은이들은 입맛 돋구는 산미를 가진 빵이라며 치켜세우는 사워도우를 ‘신 빵’이라 부르며 찬밥신세까지 하니, 가족들과도 함께 먹을 빵을 배우고 싶었다. 흰밀을 섞어 만들기에 조금더 잘 부풀고 식감도 부드럽다. 현미밥을 넣은 현미롤은 마치 탕종법으로 만든 빵과도 같은 식감도 갖고 있다.

 정제된 곡식보다는 통곡물을 권장하고 가루로 만든 음식보다는 입자를 살린 음식을 권장하는 마크로비오틱이지만, 나는 흰밀을 섞어 만드는 빵을 배웠다. 하지만 이런 나의 결심을 ‘타협’이라 부르고 싶지는 않다. 조금은 까다로울 수 있는 나의 식생활을 응원해주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식사를 고민하다 내린 결정이기에 ‘상호이해’에 가깝다.

 자아가 과하게 비대해지면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된다. 20대를 지나 30대가 되고 보니, 20대 시절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동지들은 한두명씩 그 고민에 나름의 종지부를 찍고, ‘나는 이런 사람’ ‘나 자신을 사랑하겠어’와 같은 자아의식이 자리잡혀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안타깝게도, ‘나’만을 사랑하는 동지들도 늘어간다. 자신의 세상을 만들고 그 세상에 맞지 않는 선택을 했을 때, ‘타협했다’ 생각하며 자존심 상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타협했다’ 생각하기보다는 서로를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 ‘타협’이라는 단어는 자기 중심적이지만 ‘상호이해’는 사뭇 다르다. 갓 30대가 되고 아직 만으로는 20대이지만 나의 30대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가장 먼저 결혼해 어느 덧 결혼한지 3년차가 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혜연아. 너 혹시 조기 먹어? 우리집에 조기 많은데 나눠줄게.’

 우리 집 냉동실에도 조기는 많기에, 괜찮다고 답장을 보내고 나니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든다.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친구집에 집들이를 가도 와닿지 않던 내 친구가 유부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한다. 조기는 싱글의 냉장고에는 없을 것 같은 음식이기 때문에. 바쁘게 지내는 부부를 위해 시댁에서 보내주셨을 것이 틀림없다. 요리에는 관심이 없고, 주방에 생선냄새를 풍기기 싫어할 것이 뻔한 내 친구는 이 조기를 두고 난감해하고 있었겠지.

유부녀 친구가 선물해준 피스타치오로 1/4컵도 안될듯한 양의 피스타치오버터를 만들었다.

 조기는 물건너 갔지만, 모처럼 동네를 방문한 유부녀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요리를 하는 나를 위해 얼마전 여행차 방문한 그리스에서 사온 피스타치오를 주겠단다. 그리고 이 피스타치오로 피스타치오버터라는 것을 만들어 달라는데, 피스타치오 양을 보니 이것 갖고는 피스타치오 버터는 반컵도 안나올 듯하다. 내친구가 유부녀가 되었다며 놀라워 하고 있었는데 손이 작은 것을 보니 아직 주부는 되지 않은 듯 하다.

 식당영업을 쉬게되어 평소보다 시간이 나니 이럴때에는 새로운 커리큘럼을 위한 준비도 하고 소스류를 미리 대량생산해두기도 한다.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버터, 초콜릿, 달걀 없이도 촉촉한 브라우니 레시피가 완성되었다. 나도 약간의 알레르기가 있는지 과하게 단 음식을 먹으면 왼쪽 얼굴이 빨개지는데, 브라우니는 먹었다 하면 십중팔구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곤 한다. 직접 만들어 보면 이해가 간다. 버터, 초콜릿, 설탕을 이렇게나 들이 부으니 예민한 내 얼굴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다. 예민한 나도 즐겁게 먹을 수 있는 순한 브라우니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베이킹 초보자도 따라하기 쉬운 레시피로 개선했으니 이제 곧 클래스에서 선보일 일만 남았다.

 식어가는 브라우니를 기다리는 시간에는 완숙토마토로 피자 소스를 만든다. 8000원짜리 피자를 만들기 위해 소스만드는데만 몇시간이 걸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유기농, 국산 재료라도, 시판 토마토소스 중에서는 마음에 쏙드는 것을 찾지 못했으니 직접 만들고 있다. 시간은 걸리지만 이 시간은 꽤나 낭만적이다. 매미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냄비바닥을 젓는 시간. 1년중 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될까? 평소 라디오를 들으며 주방일을 하는 나이지만, 이 날 만큼은 잠시 라디오를 꺼두었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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