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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Aug 25. 2019

단호박, 당근...주황빛으로 물드는 밥상

8월 넷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광복절이 지나니 선선한 바람이 불고 귀뚜라미가 운다. 2019년도 네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실감나는 날씨다.

제발로 일거리를 가져왔다. 고구마 줄기. 손가락이 까매져도 늦여름에 챙겨 먹고 싶은 아이. 하지만 마크로비오틱의 음과 양을 이해하고 조금의 전처리를 더하면 고구마줄기도 조금은 수월하게 벗겨낼 수 있다. 30년은 넘게 고구마 줄기를 벗겨왔을 엄마도, 나의 비법에 무릎을 탁 쳤다.

쨍하던 여름의 빛깔은 어디로 갔는지, 식탁도 조금은 낮은 채도로 변해간다. 고구마순 나물과 가지 볶음, 둥근호박을 넣은 청국장, 고춧잎 나물. 손가락을 까맣게 물들여 가면서도 고구마는 줄기도 남김없이 먹고, 고추는 잎까지 떼먹었던 선조들의 식생활은 식재료를 소중히 여기고, 땅의 생명력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마크로비오틱 그 자체였다. 

 채식을 하다보니 따로 챙겨먹는 영양제가 없는지 묻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마크로비오틱은 재료의 한 부분만을 좁게 바라보고 영양소를 운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넓게(마크로하게) 바라보고 생명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영양제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건강을 위해 생명력이 넘치는 제철 채소를 먹을것인가,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영양제를 먹을 것인지를 고민했을 때에 나는 전자를 선택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여름철 몸에 쌓였을 수분과도 이별을 하고 몸에 양의 기운을 더해주기 시작한다. 신기하게도 자연도 계절의 변화에 맞춰 몸에 필요한 재료를 보내준다. 제철 단호박으로는 기름, 마요네즈 없이 샐러드를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계절이 변하는 시기에는 뭐니뭐니해도 소식과 곡식이다. 찰기장으로 프리타타를, 수수로는 함박스테이크를 만들었다. 여기에 둥근호박과 얼갈이를 넣은 된장찌개를 곁들이니, 훌륭한 점심이 완성된다. 하지만, 슬슬 식사양은 줄여가야겠다...

 깻잎철이니 이 계절 밥도둑도 놓칠수 없다. 깻잎에 켜켜히 양념장을 발라 깻잎김치를 만들었다. 오래 묵히지 않고 보름정도안에 가볍게 먹는 여름 김치. 작년즈음 우연히 먹은 시판 깻잎김치가 단짠매콤 트리플콤보의 자극덩어리라 온몸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깻잎 60장에 양념장 반컵이면 맵지도 짜지도 않게 만들 수 있는 나의 마크로비오틱 깻잎 김치는, 삼삼한 맛에 밥한술에 깻잎두세장을 곁들여 먹곤 한다. 먹고난 뒤에도 속이 편하다.

 가을이 다가오니 수박무늬로 물들여 두었던 나의 작은 식당의 입구에도 옷을 갈아입혔다. 그리고 오이, 가지등이 나오던 메뉴에도 변화를 주었다.

 이번주 마크로비오틱 비건 식당 오늘의 마크로플레이트

미역후리카케현미밥

큐민향토마토구이

스패니쉬 오믈렛풍 찰기장 부침

당근포타주

달콤 단호박범벅

당근 깻잎 깨무침

느타리와 대파 난반즈케

지난 겨울, 처음 팝업을 시작했을 무렵부터 인기있던 당근포타주를 오랜만에 다시 내었다. 각종 모임에서도 멤버들과 함께 포타주를 만들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역시 내가 직접 만든 것이 가장 맛있다. 가스렌지 앞에 멀뚱멀뚱 서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답답하겠지만,  기다림의 미학이 만들어내는 맛이기에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맛은 그 시간을 배신하지 않는다.

 단호박 범벅은 기름, 조청 한방울 없지만 달콤하고 포근하다. 질좋은 단호박의 역할이 크기도 했다. 굽는 것도 튀기는 것도 맛있겠지만, 아직 낮에는 덥기에 양의 성질을 강하게 살리지는 않고 가볍게 쪄서 조리한다.  계절이 변화하는 시기일수록 조심조심. 여러가지 조건을 고려해보며 식단을 구성한다. 

 올 여름 수고해준 토마토. 그 자태가 보석과도 같다. 이렇게 썰고 있다보면 날름날름 집어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애써 참아본다. 빨간빛으로 나를 유혹하지만 어느덧 절기로는 입추를 넘겼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으니 여름채소는 더이상 생으로 즐기지 않는다. 양념과 함께 가볍게 굽고 덮밥으로 만들어보았다. 여름채소 토마토를 올렸으니 밥은 평소보다 양의 성질을 살려 미역 후리카케에 버무렸다.  

 최근 즐겨만든 찰기장 오믈렛을 식당메뉴로도 내었다. 구운 감자, 양파도 넣고 반죽을 원형틀에 굽고 보니 그 모습이 정말 스패니쉬 오믈렛 같다. 손님들 중에 찰기장으로 요리를 해보거나 먹어본 분이 얼마나 있을까. 이 매력적인 곡식을 식당에서 선보일 수 있어 내심 뿌듯하다.

 반년만일까. 무척 오랜만에 식당을 찾아준 손님이 있었다. 예약문의를 받았을 때부터, 혹시 그때 그 손님이 아닐까, 기대아닌 기대를 했는데, 정말 그 손님이었다. 그 동안 왜 식당에 오지 않았는지, 이번에는 무슨 일로 나의 식당에 발걸음을 옮겨주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찌됐든 나의 식당에 여러번 발걸음을 옮겨준 것 만으로도 기쁘다. 반대로, 무척 자주 와주셨는데 최근에는 연락이 뜸한 손님들도 있다. 이 경우, 내심 걱정이 한둘이 아니다. 손님과 친해진 나머지 내가 어떤 실수를 한 것은 아닐까. 설마설마 음식에서 머리카락이라도 나왔으려나, 나는 늘 머리를 묶고 있으니 그럴리는 없는데… (숏컷이 어울리는 여자라고 자부하지만 머리를 묶기 위해 숏컷을 포기했다) 영문은 알 수 없으나, 한가지 희망이 보였다. 반년만에 찾아준 손님도 있으니, 그 분도 반년뒤에 찾아줄지도 모르지. 반년뒤에 이 작은 식당을 계속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대해본다. 반년안에 나의 식당을 찾아주었던 손님들을 다시 만날수 있기를.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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