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로비오틱이 키워준 생활의 지혜
9월 첫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매주 식당에서 내는 식사메뉴도 바꾸지만 디저트 메뉴도 다양하게 준비하려 고민하는 매일이다. 이번주에는 드물게도 차갑게 먹는 디저트를 준비했다. 마크로비오틱 크림치즈를 넣은 당근컵케이크. 기존 당근시나몬머핀 레시피도 수정할 겸, 예전에 만들었던 비건 크림치즈 레시피를 조금더 마크로비오틱하게 수정하기 위해 준비했다. 비건 디저트와 마크로비오틱 디저트는 비슷하게 보여지나, 공통점은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 뿐, 레시피를 생각해낸 배경과 레시피를 활용하는 목적이 확연히 다르다. 비건 디저트는 몸에 주는 부담이 적다며 최근 인기를 끌고 있지만, 재료의 성질과 자라는 환경을 이해하면, 비건디저트라고 해서 몸에 부담이 적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할 수있다.
디저트와 함께 준비한 이번주 팝업식당 오늘의 마크로플레이트.
현미밥과 흑임자소금
가을채소 된장국
머스터드향 단호박범벅
양배추김치
고구마샐러리그라탕
고구마순 들깨무침
청포도와 무말랭이 샐러드
태풍이 온다고 하니, 밥은 압력솥에 지어 양의 성질을 더하고, 오랜만에 흑임자소금도 살포시 뿌려 낸다. 달콤 구수 시원한 국물맛에 나의 취향을 저격했던 가을채소 된장국을 식당에서도 내었고 예상대로 빈그릇이 되어 돌아왔다. 중용에 가까운 조리법과 재료를 조합했으니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다. 된장국에도 사용한 단호박은 이번주에는 홀그레인 머스터드로 향을 내고 충분히 전처리를 해 음의 성질을 많이 가라앉힌 오이를 더했다. 파근파근한 단호박 사이에서 씹히는 오이의 식감이 재미있는 킥이 된다. 요즘 우리집 최애 아이템인 양배추 김치는 지난주보다도 더 맛있게 익었다. 김치를 더달라는 손님들도 속출했다.
엄마와 일일연속극을 흉보며 손질한 고구마순은 데치고 볶아 들깨에 무쳐 냈다.전형적인 가정식 반찬인 듯해 식당메뉴로 내는데 고민이 있었지만, 껍질벗기는데 손이가니 요즘에는 집에서 고구마순을 먹는 가정이 줄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운 가정식의 맛을 나의 식당에서 선보이고 싶었다.
나의 만능소스로 자리잡은 연두부크림을 얹은 그라탕은 계절에 따라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왔는데, 이번에는 고구마와 샐러리를 넣어보았다. 고구마는 달콤한 맛이 강해 반찬으로 만들기 어려운 재료 중 하나이다. 그만큼 상반되는 성질의 쌉쌀한 맛을 지닌 샐러리를 더하고 부드러운 연두부크림을 얹으니 반찬으로도 손색없다.
제철과일인 청포도 역시 나의 창작욕구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포도는 과일 중에서도 음의 성질이 강한편이니, 반찬으로 낼때에는 재료의 조합과 전처리에 신경을 써야한다. 강한 양의 성질을 가지는 무말랭이를 함께 사용하고 포도가 과하게 많지 않게끔 양조절을 하며 청포도와 무말랭이로 샐러드를 만들었다. 달콤하면서도 꼬들한, 새로운 식감의 반찬 탄생이다.
모처럼 고구마순 껍질도 열심히 까두었는데, 일기예보가 심상치 않다. 이번 태풍은 보통 태풍이 아닌 듯 하다. SNS를 확인해보니 태풍을 앞두고 각종 장터와 이벤트도 취소공지를 올리고 있다. 식당들은 태풍을 이유로 쉬는 곳은 적지만, 나의 식당은 거의 예약제에 가깝게 운영되는 만큼, 이대로라면 예약을 해준 손님들도 취소를 고민하며 부담스러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덧붙여, 손님들의 안전도 걱정되지만, 태풍때문에 예약취소가 속출하면 식사를 준비해두어도 손님앞으로 나가지 못할 반찬들이 아까웠다. 물론, 우리가족이 먹으면 되지만, 몇번이고 같은 반찬을 먹는 것도 고역인데다가, 그 시간에 다른 요리를 테스트 해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결국, 고구마순에게는 미안하지만, 예약을 해준 손님들에게 모두 연락을 해 이해를 구하고 토요일 영업은 쉬기로 했다.
오랜만에 상수동에 가지 않는 토요일이다. 일요일같은 기분이 들어 어색한 아침. 세수를 하고 정신이 들고보니, 냉장고 속 남아있는 재료들이 생각난다. 그래. 고구마순이 많고, 단호박도 박스채로 샀었지...오늘 우리집은 고구마순과 단호박 파티다. 신장 기능을 도와줄 단호박 팥조림을 만들고, 고구마순과 단호박은 칼칼하게 졸여보았다. 칼칼한 국물과 시원한 고구마순, 달콤한 단호박의 조합이 훌륭하다. 국물에 밥을 비벼먹고 싶은 맛이다. 이 기회에 조림요리, 김치등에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팔방미인 양념도 개발할 수 있었다. 쿠킹클래스에서도 몇입 먹고나면 얼굴이 벌개지는 자극덩어리 양념에 지친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알려줄 수 있을 듯하다.
고구마샐러리 그라탕을 위해 미리 조리해둔 고구마와 샐러리는 그라탕소스가 다 떨어져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음식물쓰레기를 만들리가 없다. 고구마와 샐러리는 부드럽게 으깨고 다른 부재료와 함께 반죽하고 빚어 고로케로 재탄생했다. 단호박샐러드와 함께 빵사이에 끼워 샌드위치를 만들어먹어도 좋겠다. 마크로비오틱을 실천하면 흔히 버리던 껍질, 씨앗, 뿌리도 사용하고, 냉장고 털이, 만들어둔 반찬을 응용해 새로운 반찬을 만들어내는 삶의 지혜도 늘기에 음식물쓰레기가 압도적으로 줄어든다.
태풍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도 얌전해졌다. 하지만 내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태풍의 피해가 있겠지. 추석을 앞두고 하늘에게 섭섭하기도 하다. 부디 빨리 복구되기를…
일요일에는 발효종에 밥을 주고 현미롤빵을 대량생산했다. 조금 늦은 여름휴가를 위한 준비이다. 공항에서 파는 음식은 영 시원치 않다. 아무리 비건식으로 부탁해도 비행기에서 먹는 식사역시 마찬가지 이다. 간편하게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시 되는 곳이니, 불평하기 보다는 내가 먹을 것은 내가 알아서 준비해야한다. 때문에 이른아침식사, 도착후 점심식사, 다음날 아침식사, 그리고 가족들이 먹을 것을 위해 자그마한 나의 가정용 오븐을 여러차례 돌려가며 빵을 구웠다.
이른 아침 공항에서 꺼내 먹는 나의 현미롤. 생김새는 못났지만, 덕분에 마크로비오틱, 채식의 선택지가 적은 공항에서도 든든하게 한끼를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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