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연 Sep 24. 2019

햇생강, 햇땅콩, 햇고구마...올해 처음 만나는 아이들

9월 셋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추석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쉴 시간이 주어졌다. 요즘 방문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오래전 비행기표를 예약했고, 나에게는 무척 익숙해 굳이 새로운 곳 탐방 등을 하며 지치지 않을 수 있는 곳이기에 나의 옛 터전에 다녀왔다. 


 열흘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며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누군가의 생각이 담긴 음식, 살아있는 음식을 먹으며 공부도 하고 영감을 받기도 했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며, 아직 어딘가에 붙잡고 있던 저의 20대를 떠나보내기도 했다. 덕분에 쉬었는지 쉬지 못한 건지 알수 없는 상태로 귀국했다.

 한국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시장에 갔더니 어느덧 ‘햇’자가 들어가는 것들이 늘어서 있다, 햇생강, 햇곡식...향과 수분이 확연히 달라 요리하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녀석들. 아 이제 정말 가을이구나. 한국을 떠나 있으며 계절이 달라진 것도 모르고 있었다.

 익숙한 곳에 다녀왔지만, 여행을 다녀오면 여독이 쌓여있기 마련. 쌓인 여독은 집밥으로 풀어본다. 햇생강을 올린 가시오이와 양배추김치, 아욱된장국, 현미밥으로 간소하게 차린 집밥. 이제 생채소는 줄여야한다. 생채소를 먹는다면 소금, 된장 등에 오래 절이고 수분을 빼 양의 성질을 더한다. 오이도 이번주 쯤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 맛난 김치거리가 부족한 요즘 같은 시기에 양배추김치는 감사한 저장 반찬. 여행 후 텅빈 냉장고에서 발견한 녀석은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그리고 가을에 먹지 않으면 섭섭한 아욱 된장국까지. 학창시절 급식에는 새우가 함께 등장했는데, 갈수록 비건에 가깝게 살다 보니 이제는 새우, 멸치 냄새나는 된장국은 피하게 되었다.다시마와 표고버섯으로 낸 채수가 있다면 비린내 없이 깔끔한 국물을 즐길 수 있다.

 여행직후 식당영업은 무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지난주에는 식당영업은 쉬고 베이킹클래스를 진행했다. 처음 진행해본 새로운 클래스도 수강하신 분들 모두 만족스러워 하시고 나 역시 비건 베이킹과 마크로비오틱 베이킹의 차이를 전달할 수 있어 몹시 만족스럽다. 비건베이킹과 마크로비오틱 베이킹은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만 같을 뿐 차원이 다른 영역이다. 향료, 백설탕, 백밀가루, 동물성 재료는 물론 마스코바도, 아가베 시럽도 사용하지 않는 마크로비오틱 레시피를 알려드리고, 이론 수업도 함께 진행했다.

베이킹클래스 후기는 이곳에

 여행 후 3일을 연달아 수업을 진행하면 피로가 쌓여있다. 저녁에 미리 아침식사를 준비해둘 여유가 없었다. 이럴 때에는 빵의 힘을 빌려보기로 한다. 상수동 근처의 비건빵집에서 장만한 묵직한 독일식 호밀빵에 기름 없이 만드는 채소파테를 올렸다. 그리고 우엉조림을 올리면 밥 반찬 같지만 샌드위치 다운 샌드위치가 완성된다. 비건 레시피 북이나 인터넷을 찾아보면 각종 소스, 스프레드 레시피가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엄청난 양의 기름이 사용된다. 건강을 위해 찾은 레시피였지만 사용되는 기름의 양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지방도 사람 몸에 필요한 3대 영양소 이기에, 기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량을 넘어서면 몸에 필요한 것도 독이 된다. 채소파테는 채소를 구울 때 사용하는 소량의 기름 이외에는 불필요한 기름은 사용되지 않는데도 발림성이 좋은 스프레드로 완성할 수 있다. 고소한 감칠맛에 너무 많이 바르게 되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 

 무화과가 제철이니, 무화과도 곁들였다. 템페로 블루치즈 풍의 소스를 만들어 올린뒤 오븐에 구웠다. 그저 집에 있던 재료로 급히 만든 아침식사인데 그럴듯한 브런치메뉴가 완성되었다. 제철 무화과의 달콤함과 템페의 쿰쿰한 향이 무척 잘어울린다. 와인안주로도 좋을 것 같다.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치과를 찾았는데, 사랑니를 뽑아야한다는 청천벽력같은 처방을 받고야 말았다. 금요일부터는 식당영업을 해야하니, 평일중 가장 이른 월요일에 사랑니를 뽑기로 했다. 매는 일찍 맞는 것이 낫다. 사랑니 발치를 앞두고 차린, 나름의 진수성찬.

 앞으로 볼일이 적어질 가지와 토마토를 써, 가지조림을 만들었다. 아무리 조림요리라 해도, 이미 찬바람이 부니, 가지와 토마토만으로는 음의 성질이 강하다. 우엉을 잘게 다져 볶아 우엉 라구소스를 만들고 양의 성질을 더하기 위한 마법의 재료로 감칠맛과 간을 더한다. 기름을 잡아 먹어 요리하기 어려운 존재로 자리 잡은 가지는 약간의 전처리를 하고 불조절만 잘하면 최소한 기름으로도 보드랍게 익힐 수 있다. 이렇게 따로 익힌 가지에 라구소스를 붓고 조리면, 초가을에 어울리는 우엉라구 가지조림이 완성된다. 밥과 먹어도 어울리고, 파스타에 버무려도 맛있고 빵에 올려서 브루스케타로도 즐길 수 있는 효자 같은 메뉴. 식혀서 하루 묵혀두면 더 맛있다.

 미리 주문해둔 햇땅콩과 햇고구마로는 작년 이 맘때에도 즐겨먹던 고구마 땅콩조림을 만들었다. 본연의 달콤한 맛을 지닌 고구마, 채수를 내고 남은 다시마와 함께 졸이면 자극적이지 않은 달콤짭짤한 맛의 땅콩조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순한 맛의 땅콩조림 맛에 익숙하니, 가끔 한식집에서 조청인지 물엿인지 모를 감미료로 번뜩번뜩한 땅콩조림이 기본반찬으로 등장하면 깜짝 놀라곤 한다. 

 이렇게 만든 우엉라구 가지조림, 고구마 땅콩조림에 콩나물국과 압력밥솥에 방금 지은 현미밥을 내니, 주말 수업으로 지친 몸과 사랑니 발치의 긴장을 달래는 행복한 점심식사가 완성된다. 따끈한 현미밥을 조금 떠 입에 넣고 수차례 꼭꼭 씹으면 현미 본연의 달콤함이 입안에 퍼진다. 이 맛을 느낄 때면 안도감이 든다. 초콜릿과 곰젤리가 아니면 단 맛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직접 차린 밥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팝업식당, 쿠킹클래스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매거진의 이전글 마크로비오틱이 키워준 생활의 지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