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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Sep 29. 2019

과식의 계절의 소식

9월 마지막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사랑니를 뽑아 왼쪽 뺨이 토실토실 하지만 오전부터 장을 보러 집을 나선다. 하늘도 파란것이 기분이 좋다. 전깃줄이 없고 아파트 대신 나무가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오랜만에 찾은 마르쉐. 이번엔 합정이다. 식당 메뉴로 사용하기 위해 오크라와 송화버섯이 필요했다. 많이 덥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오래가는 듯한 올해의 여름. 음성의 오크라와 여주도 이번주가 마지막이 되겠지. 접할 기회가 적은 작물들을 손님들이 맛봤으면 했다. 

 사랑니를 뽑아 식사가 시원치 않은 김에 며칠 현미죽으로 소식을 하며 컨디션관리를 하기로 했다. 추석연휴기간 동안 여행을 하고 오랜 친구들을 만나며, 평소와 다른 식사를 해서 그런지, 좀처럼 피로가 풀리지 않던 참이었다.

 채식을 하며 몸보신은 어떻게 하는지, 기운을 내고 싶을 때에는 어떤 음식을 챙겨먹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다. 평소, 통곡물위주로 식단을 꾸리고 제철채소들을 딱 내 몸에 필요한 만큼만 먹으면 딱히 몸보신을 할 필요도 없지만, 굳이 꼽자면 며칠 중용에 가까운 식사로 소식 중의 소식을 한다. 음과 양 어느쪽인가로 치우쳐져 있었을 몸을 중용의 상태로 돌리고, 이것 저것 걸러내느라 지쳐있었을 내장에게도 쉴시간을 준다. 못먹어서 생기는 병보다 너무 먹어서 생기는 병이 많은 요즘 같은 시대에 굳이 몸보신을 하겠다고 무언가를 더 챙겨먹는 것은 불난 곳에 기름붓기이다. 챙겨먹은 음식이 동물성 식품이라면 더더욱. 수확의 계절이며 명절도 겹치는 가을에는 특히나 과식을 조심해야 한다.

 덜 먹었다고 해서 덜 움직이고 집에 누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매트를 챙겨 요가를 하러 나선다. 요가를 하면 일상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들며, 요동치던 마음에도 쉼의 시간이 온다. 늘 새로운 것에 목마르던 시절도 있었지만, 한 두살씩 나이를 먹어가며 변함없이 나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들을 곁에 두고 싶어진다. 이런 존재들이 있어, 서글프거나 마음이 지칠때 그것을 애써 잊거나 이겨내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다시 일상에 복귀할 수 있는 듯하다. 애써 잊거나 이겨내려 노력하는 것도 치열한 삶이다. 그런 삶보다는 자연스럽게 물 흐르는 대로 살아보려한다.


 사랑니 발치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소식을 할 기회도 주고, 아무 일정을 잡지 않으니 시간도 생겼다. 시간이 났을 때는 빵을 구워본다. 발효종 향만 맡아도 산미를 가진 사워도우를 만들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제빵도 요리와 마찬가지. 재료를 계량하고 치대고 반죽을 하며, 마지막에 어떤 아이가 나올지 상상하는 시간은 요리사에게 몹시 흥분되는 시간이다. 요리를 업으로 하며, 순수하게 즐기는 마음보다도 연구하고 개선하는 자세가 더 앞설 때가 많은 요즘 이기에 제빵은 순수하게 요리를 즐기는 마음을 잊지 않게 도와주는 좋은 취미활동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식당영업준비를 하기 전. 든든히 식사를 하고 일을 시작해본다. 그리고 마르쉐에서 장만해 온 오크라와 여주, 송화버섯도 개봉해본다. 가을에 먹기에는 끈적끈적한 음의 성질을 지닌 오크라는 가볍게 데친뒤 김에 말았다. 우메보시를 바른뒤 김에 말아도 맛있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아직 우메보시는 호불호가 갈리니 피해본다. 씁쓸한 여주 역시 호불호가 갈리니 알맞는 전처리와 재료조합이 중요하다. 전처리를 잘 해준 뒤, 알맞은 두께로 썰고 설탕, 감미료 없이 만드는 마크로비오틱 깨소스에 버무렸더니 딱맞게 입맛 돋구는 어른의 맛이다. 딱 한 두젓갈만으로 식욕을 자극하는 애피타이저다. 조금은 새로운 재료들이기에 손님들도 어색함 없이 즐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프렙을 시작했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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