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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Oct 01. 2019

무화과와 평양냉면의 평행이론

9월 마지막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지난주에는 약 3주만에 식당을 열었다. 작업효율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잊은 물건과 재료는 없는지 걱정도 하며 오랜만의 식당 문을 열었다.

 지난주 마크로비오틱 비건 식탁 오늘의 마크로플레이트

단호박껍질 후리카케를 얹은 현미밥

우엉라구소스에 졸인 가지

햇생강을 올린 가시오이 절임

고구마 땅콩조림

곡물커피와 햇땅콩을 올린 단호박포타주

오크라, 여주, 송화버섯을 올린 샐러드

화이트소스를 올려구운 무화과

 무척 맛있는 단호박을 입수했기에 꼭 이 단호박으로 스프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색깔 욕심을 버릴수가 없다. 때문에, 마크로비오틱을 하며 좀처럼 쓸일이 없는 감자칼로 단호박 껍질을 벗겨냈다. 하지만, 소화 흡수가 되는 부위라면 껍질도 버리지 않고 먹는 것이 마크로비오틱. 벗겨낸 단호박 껍질로도 한가지 반찬을 더 만들어낸다. 가볍게 찐뒤 말리듯 볶아 김, 깨, 소금을 곁들여 밥위에 올려먹는 고명을 만들어냈다. 음성체질인 사람들에게 특히나 좋을 듯한 훌륭한 반찬이다. 

 이렇게 만들어낸 단호박 스프는 무척이나 달기에, 이대로 밥과 먹기에는 심심하다. 양의 성질을 더해주고 맛에도 킥을 더해주기 위해 카페인없이 곡물로 만든 곡물커피를 살짝 곁들여 본다. 마크로비오틱에서는 고명으로 올리는 것 곡물커피 한숟갈에도 다 의미가 있다.

 요리에 사용하고 싶던 무화과도 식당메뉴로 등장했다. 몇년전인가부터 무화과가 우리나라 외식업계에서도 조금씩 모습을 보이더니 작년 늦여름, 가을에 인기의 정점을 찍었던 듯 싶다. 건무화과, 생무화과를 불문하고 이른 바 '핫'하다는 디저트 카페에서는 모두 무화과를 사용한 듯도 싶다. 하지만 나는 단 듯 안 단듯, 무른 듯 쫄깃한 듯 알다가도 모를 맛과 식감을 가진 무화과의 유행이 신기할 뿐이었다. 쨍한 색감과 입안 가득 퍼지는 새콤달콤함이 일품인 딸기, 톡 터지는 식감과 청량한 색감이 아름다운 청포도라면 모를까...뭐..평양냉면의 유행과 비슷한 원리가 아닐까?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먹다보니 이 녀석 매력이 보통이 아니다. 무른 녀석만 먹다가 간혹 쫀득한 녀석이 걸렸을 때의 쾌감. 분홍빛 속살과 하얀 부분의 대조적인 식감. 나름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은 맛이기에 요리에 곁들이기에도 훌륭하다. 조연인체 하지만 결국 주연인. 그런 매력둥이가 무화과다. 이런식으로 무화과의 유행도 평양냉면의 유행처럼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아가는 듯 싶다. 이런 무화과는 템페로 만든 블루치즈 풍소스를 얹어 구워냈다. 템페로 만든 소스의 존재감이 강하기에, 곁들이는 재료로는 무화과같은 순둥순둥한 아이가 제격이다. 초가을 재료치고는 음의 성질이 강하기에 고온의 오븐에 구워내거나 말린 것을 사용하는 것이 마크로비오틱다운 조리이기도 하다. 크랜베리 등과 함께 여성에게 좋은 식재료로 꼽히는 것 중 한가지가 무화과이기도 하지만, 생 무화과를 과식하다보면 오히려 독이 될수도 있다.

 올 여름을 든든하게 지켜준 토마토, 가지와도 작별을 할 시간이다. 그저 마늘, 양파를 넣고 볶는, 산미 가득한 토마토소스는 찬 바람이 부는 계절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토마토는 특유의 흙향을 날리며 달콤하게 조리한 우엉을 곁들여 우엉 라구소스를 만들고, 가지는 최소한의 기름으로 구워낸 뒤 라구소스에 졸였다. 하루정도 식혀 먹는것이 더 맛있기에, 냉장고를 지켜주는 밑반찬으로도 안성 맞춤이다.

 이 계절 즐겨 먹는 고구마 땅콩조림도 식당에 등장했다. 햇땅콩과 햇고구마를 껍질째 먹고, 채수를 낸 뒤 남은 다시마까지 넣어 부족하기 쉬운 해조류도 챙겨먹을 수 있기에 개인적으로 아끼는 메뉴이다.

 거의 예약제에 가깝게 운영되고 있는 나의 식당에 오랜만에 예약없이 지나가던 손님 두분이 들어왔다. 눈치를 보아하니 들어온 뒤 아뿔싸 싶었나 보다. 식사 메뉴는 거의 한 개뿐이며 카드결제는 되지 않는 이 곳. 물티슈를 달라하니 주인장은 화장실 열쇠를 건네며 물티슈는 없으니 화장실에서 손을 닦고 오라고 한다. 내가 손님 입장이어도 황당할 듯 싶다.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하고 있으며, 메뉴가 한가지 뿐인 대신 메뉴를 매주 바꾸며, 한가지 플레이트에 전력을 쏟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을 숙지하고 있는 손님들을 맞아 왔기에, 나 역시 이런 나의 철학이 세상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역시 조금은 특이한 가게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세상은 여전히, 종이라면 괜찮다는 생각으로 당연하게 일회용 쓰레기를 만들어 내며, 누군가의 생각이 담긴 음식점보다는 가성비가 좋고 선택지가 많은 음식점을 원하고 있었다. 

 나름의 철학이 있는 경우, 자신의 생각에 대한 사랑이 과해져, 오만해질 수도 있기에, 대화를 통한 이해를 얻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불쾌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손님에게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는 점, 일주일에 두번만 공간을 빌려 운영하는 만큼 카드결제가 어렵다는 점 등, 변명에 가깝지만 설명을 해드리니 다행히도 이해를 해주시는 듯 하다. 마크로 플레이트를 내어드린 뒤에는 과묵해 보이던 남자분도, 굳이 음식 사진을 찍으려 하는 편은 아니지만 특이한 것을 먹으니 딸에게도 보여주겠다며 핸드폰을 꺼내셨다. 이 두 손님이 다시 나의 식당에 방문할 가능성은 몹시 낮겠지만, 그래도 평일 점심에 조금은 새로운 경험을 하고 가셨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이틀간의 영업을 마치고 먹는 조금 늦은 스탭밀. 절묘하게 딱 1인분 먹을 만큼만 남았다. 식당 스탭들이 일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먹는 음식을 ‘스탭밀’ 이라고 부르길래, 나도 이런 나의 식사를 ‘스탭밀’ 이라 불러보지만, 물론 스탭은 나 혼자이다. 여럿이 모여 스탭밀다운 스탭밀을 먹는 모습을 보면 가끔, 아주 가끔 부럽다. 무뚝뚝한 나도 혼자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사람을 그리워하는 날이 오는구나. 사람보다도 일을 좋아했던 나이기에, 이런 변화가 조금은 기쁘기도 하다. 슬슬 사람들과 대화하게 일하고 싶은 욕구가 고개를 드는 요즘이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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