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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Oct 03. 2019

따끈한 스프로 아침을 맞으며 가을을 느꼈다

10월 첫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식탁

 작년만큼 덥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오래갔던 여름과도 이제 진정 작별이다. 10월이 왔다. 산과 들 각지에서 수확을 하며 풍족해지는 계절. 가을이다.

 식당영업후 남은 재료들로 한끼를 차리며, 여름재료들과도 작별인사를 했다. 여름채소들이 많은 듯해 밥은 양의 성질을 지닌 톳, 당근과 함께 지었다. 앞으로 다가올 해조류의 계절에 가슴이 설렜는지 톳을 조금 많이 넣었나보다. 오크라는 데쳐 우메보시, 김에 버무렸다. 끈적끈적한 음의 성질을 지닌 재료이니 이 계절에는 강한 양의 성질을 가진 절임류 또는 해조류와의 조합이 좋다. 된장과의 조합도 좋을테니 미역된장국에도 동실동실 띄웠다. 미리 만들어둔 만능 매콤양념이 있으니 피자재료로 준비해두었던 구운 고구마, 양파 등은 두부와 함께 즉석에서 두부조림을 만들어 내었다. 첨가물이 가득한 시판 조미료, 양념과는 벽을 쌓고 지내다 보니, 한번 만들어두면 여러곳에 사용되는 팔방미인같은 양념들을 직접 만들며 지내고 있다.

 최근 즐겨만드는 메뉴는 반찬류보다도 스프와 같은 국물요리이다. 고구마포타주와 브로콜리 포타주를 만들었다. 계절이 변하는 시기이니 최대한 음과 양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끔 사용하는 재료의 조합을 바꾸고, 소화, 흡수를 돕는 재료를 더하며 맛의 조화도 놓치지 않게끔 레시피를 개발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스프나 국물요리는 한번 만들어 두면, 간단한 아침식사로도 응용할 수 있고, 보온통에 담아가면 도시락메뉴로도 좋다. 채소를 대충 휘리릭 볶아 물붓고 끓이는 스프 레시피들이 난무하던데 너무나 안타깝다. 불조절과 채소, 재료를 넣는 타이밍 등 기본적인 요소를 조금씩 바꿔보면 채소본연의 맛이 우러나와 우아하기 그지 없는 스프를 만들수 있다. 물론 버터, 밀가루, 부이용 등도 필요 없다. 이러한 재료들은 오히려 채소가 가진 매력적인 맛을 덮어버린다. 창문을 넘어 햇살이 들어오는 아침, 가벼운 옷차림으로는 쌀쌀해진 아침공기에 어깨를 움츠린채로 소파에 앉아 따끈한 고구마 포타주를 마시고 있으니 가을이 왔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포타주 만들고 남은 브로콜리로는 쌈장, 숙주와 함께 찌듯 볶아 순식간에 밥반찬 하나 생산. 짭쪼름한 것이 가을맥주안주로 딱이지만 사랑니를 뽑은 덕분에 낮술을 피했다. 나에게 브로콜리는 익숙하기 그지 없어 오히려 매력도가 조금 떨어진 채소인데, 쿠킹클래스를 하다보면 브로콜리는 그저 데쳐서 초장에 찍어먹을 뿐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아 놀랐다. 브로콜리는 의외로 기름과의 조합도 좋은 채소이다. 데친뒤 풍덩 찬물에 담그면 색이야 예쁘겠지만, 영양소는 파괴된다. 조금이라도 건강을 신경쓰는 조리를 하고 싶다면 데치더라도 찬물에 담그기보다 다른 방법을 고민해 보는 것을 권한다.

 올 가을 첫 연근을 개봉했다. 작년에도 즐겨 만들었던 연근함박스테이크를 올해에도 빚었다. 연근함박스테이크를 만들고 나온 즙으로는 기관지 건강에 도움이 되는 연근탕을 마시곤 했지. 또 다시 이 계절이 왔구나. 이렇게 빚은 연근함박스테이크에는 우엉으로만든 소스를 얹어 함박덮밥으로 한끼를 해결했다. 미리 절여둔 단호박도 꺼내니 간단하게 한끼가 해결된다.

 달콤한 뿌리채소들, 고구마를 먹으며 지냈더니 다시 매콤한 것이 당긴다. 그러고보니 김치가 떨어졌다. 슬슬 무도 보이지만, 가장 맛있는 겨울무를 기다리기로 하고 이번 김치는 콜라비 깍두기로 정했다. 작년, 보틀팩토리의 다운님에게 얻어온 콜라비로 담근 깍두기가 참 맛있었다. 그만큼 맛있기를 기대하며 올해에도 콜라비 2키로를 손질했다.

 김치가 익을때까지 또다시 밑반찬이 필요하다. 유부와 무말랭이로는 달콤한 무말랭이조림을 만들었다. 무말랭이는 체내에 쌓인 지방을 분해하는 데 특효약이다. 딱히 분해해야할 묵은 지방은 없는 편이지만, 이 달콤하고 포근한 맛이 그리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찾게 되는 메뉴이다. 말린 무와 튀겨낸 유부를 조린 무말랭이 조림은 상대적으로 양의 성질이 강하기에 곁들이는 반찬은 발사믹식초를 사용해 상대적으로 음의 성질을 살린 브로콜리 흑임자 발사믹무침을 만들었다. 조금만 찬장을 뒤져보았더니 이번주에는 집에 있던 재료만으로 브로콜리요리 세가지를 만들어 냈다. 흑임자발사믹소스는 브로콜리 뿐만 아니라 아스파라거스, 양배추 등에도 어울릴 듯하다.

 또 팔방미인소스를 만들어냈다는 생각에 나 자신을 칭찬하면서도, 점점 내 사랑이 깊어가는게 아닌가 싶어 걱정된다. 내 사랑이 깊어가는 것이 걱정된다기보다,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잊고 살아가는 듯해 무섭다. 나를 사랑할 줄을 몰라 ‘자존감’찾기에 여념이 없던 20대 후반을 지나고 보니, 정작 타인을 사랑할 줄 모르는 30대가 되어 가고 있었다. 채소를 사랑하는 것은 참 쉬운데 사람을 사랑하는 건 참 어렵다. 채소를 대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면 조금 더 쉬우려나. 시금치나 숙주처럼 금방 시들해지는 사람은 자주 눈길을 준다던가, 우엉이나 당근처럼 맛있게 요리하려면 조금 손을 봐줘야 하는 사람은 커뮤니케이션에 조금더 심혈을 기울인다던가...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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