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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Oct 09. 2019

우엉과 연근으로 추위를 준비해가는 시기. 10월.

10월 첫째주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회사를 나오고 혼자 일을 하며 지내다보니, 휴일에 대한 개념이 무뎌진다. 공휴일인 것을 새까맣고 잊고는 애써 걸어갔지만, 문닫은 도서관 앞에서 당황스러워 했던 기억도 한두번이 아니다. 이번 개천절 역시 정신이 들어보니 세상은 휴일이 되어있었다. 물론 휴일과는 무관한 삶을 살기에, 평소처럼 묵묵히 식당영업 준비를 했다.

지난주 마크로비오틱 비건 식탁 오늘의 마크로플레이트

현미밥과 흑임자소금

햇생강을 올린 고구마포타주

단호박팥조림

단호박 소금절임

사과 콩포트와 루이보스티젤리

브로콜리 흑임자 발사믹 무침 

우엉토마토소스를 올린 연근 함박스테이크

콜라비 깍두기

 최근 주문한 맛있는 단호박으로는 두가지 메뉴를 만들었다. 첫째는 가을철 마크로비오틱 대표반찬인 단호박 팥조림. 온화한 음과 양의 조화에 속편한 이 반찬은 마크로비오틱에서는 당뇨와 신장질환에도 도움이 되는 반찬으로 사랑받는 메뉴이다. 나의 경우 딱히 당뇨, 신장질환도 없지만 팥과 단호박 본연의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기에 즐겨 먹는다. 어느 집에나 있는 재료로 최고의 맛을 끌어내는 마크로비오틱의 진수를 체감할수 있는 메뉴이기도 하다.

 또 한가지, 단호박을 사용한 메뉴는 단호박소금절임. 생채소 섭취를 줄여가는 계절인 만큼 최근에는 다양한 절임요리의 매력에 빠져있는만큼 생 단호박을 얇게 썰어 절여보았다. 살이 꽉찬 맛있는 단호박이 아니면 즐길 수 없는 사치스러운 메뉴이기도 하다.

 작년 겨울에도 식당에서 냈던 연근 함박스테이크가 다시 돌아왔다. 식당에서 주문을 받자마자 낼수있게끔 레시피를 연구하던 기억, 마크로비오틱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며 파티에 참석한 분들과 함께 모여 앉아 함박스테이크를 빚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어쩌다 시작하게 된 이 작은 식당에서 보낸 시간이 1년이 다 되어 간다. 

 유난히 예약이 많았던 금요일. 예약을 받은 시간이 되자 어디에서 언제 만났는지 기억이 날듯 말듯한 손님이 한분이 가게로 들어왔다. 혹시나..하는 마음은 있지만 자신이 없어 묻지는 못하고 머뭇머뭇...식사를 마친 손님은 나에게 디저트 포장을 부탁했다.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하기에, 다회용 용기를 구입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해드리고 준비된 용기를 꺼내자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손님은 말했다.

 ‘작년에 왔을 때에도 같은 통에 사갔어요. 그 때는 이 근처에 살았었는데.’

 짐작은 확신에 가까워졌다. 작년 겨울, 처음 이 식당을 열었던 날, 예약없이 불쑥 가게에 들어왔던, 나의 첫 손님이었다. 동네 산책 중 불쑥 문을 열고 들어왔던 손님이, 동네를 떠난 이후에도 예약을 하고 나의 식당에 찾아와 주었다. 그 분에게 이 식당과 나의 음식에는 발전이 있었을까. 1년전 나를 찾았던 손님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식사를 내고 있는지, 다시금 마음이 다잡히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금요일과 영업이 끝나니 연근과 우엉이 애매하게 남았다. 이 계절, 애매하게 남은 연근과 우엉이 보인다면 이 녀석의 등장이다. 마크로비오틱 뿌리채소조림. 가을, 겨울이면 식탁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반찬이다. 식촛물에 담그는 등 불필요한 조리와 재료 없이 뿌리채소와 기본 조미료만으로 달콤하게 만들어 내는 마법같은 이 반찬은, 다가올 음의 계절에 맞춰 양의 성질을 살린 요리이며, 뛰어난 식이섬유로 장건강을 지켜주는 반찬이기도 하다. 냉장고에서 애매하게 굴러다니던 채소로 만들 수 있으며 한번 만들어두면 오래가니 마음도 든든하다.

 

 이렇게 만들어둔 뿌리채소조림도 있겠다, 일요일을 맞아 사워도우도 구웠으니, 월요일 아침식사는 샌드위치와 당근포타주로 결정이다. 기름없이 만드는 채소파테와 몇가지 채소, 김을 곁들여 빵사이에 끼우면 동양적인 느낌의 샌드위치가 순식간에 완성된다. 빵과 김, 밑반찬의 조합에 고개를 갸우뚱할수도 있지만, 일본의 모 햄버거체인점에서는 수년전부터 판매하고 있는 메뉴이기도 하다. 아침식사로 빵을 먹는 경우, 잼 또는 버터를 곁들이거나 요거트, 우유, 샐러드, 과일 등을 곁들이기도 하는데, 양의 성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음성의 조합이니, 먹고난 뒤 몸이 편할 수가 없다. 이 조합을 한꺼번에 먹고 아침바람부터 화장실을 드나든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뿌리채소 샌드위치는 아침 빵을 즐기는 지혜로운 메뉴중 하나이다. 여기에 따끈한 스프를 곁들이면 뱃속이 포근한 가을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

 비가 오더니 한순간에 날이 추워졌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낮에는 반팔옷을 입고 다녔는데, 어느덧 긴팔옷이 어색하지 않다. 차가운 이슬이 맺히는 가을이 완연하다. 온몸이 따뜻해지는 음식이 먹고 싶다.

 단단한 채소들을 달달하게 조리해, 여기에 칡전분을 풀어넣어 덮밥을 만들었다. 채소와 칡전분의 온기에 온 몸이 따끈해진다.

 식당을 운영하고 쿠킹클래스를 하며, 마크로비오틱 운운하기 이전에 우선 요리, 주방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체감하며 지내고 있다. 건강에 관심은 많지만 어디에서 부터 손을 대야할지도 모르겠으며 시간도 없다는 것이 그분들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이러한 경우, 처음부터 나의 마크로플레이트처럼 여러 반찬을 늘어놓은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행여나 하루정도는 가능하더라도 지속될 수 없다. 이러한 경우, 우선 주방과 친해지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덮밥은 주방과 친해지기 위해 시도해볼만한 아주 좋은 메뉴이다. 여러가지 반찬을 동시에 만들 필요도 없으며, 대부분의 덮밥은 조리과정도 무척 간단하다. 설거지가 간단하다는 점은 덤이다. 

 차 천장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가을 하늘이 높다. 낙엽까지 떨어진다. 뿌리채소가 맛있고, 잎사귀가 떨어지는 계절이다. 조만간, 옥상텃밭의 허브를 실내로 들여야겠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팝업식당, 쿠킹클래스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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