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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Oct 14. 2019

채소와 술의 조합이 어때서

10월 둘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소소한 밑반찬과 깨소금으로 채운 식사가 계속되어도 음식투정이 없는 나이지만, 가족들은 그렇지 않다. 연달아 만든 밑반찬류에 가족들도 지겨워질 때가 되었다. 오랜만에 꼬물꼬물 손을 움직여보기로 했다.

 냉동실에 잠들어 있는 만두피를 꺼냈다. 굴러다니던 양배추와 찬장속 곡식, 냉동실 속 재료들로 만들었을 뿐인데, 내가 차린 식탁에 무려 군만두가 오른것만으로도 가족들은 즐거워한다. 곱게 빚은 모양새도 한 몫한다. 고기 반찬이 없다는 이유로 내가 만든 반찬에 좀처럼 손을 대지 않는 아빠도 고기없는 만두를 깔끔히 비웠다. 하지만, 만두 이외의 반찬은 연달아 만든 밑반찬들 뿐. 나도, 엄마도 새로운 밑반찬, 국거리 준비에 소홀했던 탓에 아빠는 데워둔 김치찌개를 마다하고 현미밥을 물에 말아 드셨다. 본인의 집인데도 주방에 익숙하지 않아 만족스럽지 못한 식사를 하는 아빠를 발견할 때면 아빠의 주방데뷔를 도와야하는건지 밑반찬을 늘려야 하는건지 고민스럽다.

 만두를 구웠더니 여기에 어울리는 사이드메뉴도 곁들이고 싶다. 짭짤 매콤한 뿌리채소 쌈장에 찌듯 볶은 숙주를 곁들였다. 군만두와 숙주는 누가 보아도 맥주안주인데...대낮부터 맥주를 기울여야할 것 같은 메뉴를 만들어냈다. 술을 잘하는 편은 못되지만 술을 즐기는 사람이기에, 술안주로 적격일 듯한 메뉴에 자신이 있는 편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채식을 하고 있다고 알리면 으레 '술은 마시냐'는 질문이 돌아오지만 잊어서는 안된다. 뱀술이 아닌 이상 술도 풀로 만든다. 어찌되었든, 지금 운영하고 있는 ‘오늘’ 이외에 술과 채소를 즐길 수 있는 식당을 운영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하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손을 대고 있지 못하다. 나의 음식은 ‘건강식’ 이라는 인상이 강하고, 건강을 추구하는 분은 술을 멀리하는 분이 많기에 나의 음식에 술과의 마리아주를 기대하는 분은 많지 않다는 점이 큰듯하다. 

 한편, 채소와 술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도 무시할 수 없다. 와인과 마크로비오틱의 페어링클래스 의뢰를 받은적이 있었는데, ‘와인은 고기나 치즈와 어울리니 콩고기를 사용한 메뉴를 준비해달라’는 부탁에 결국 무산된적이 있다. (내 요리에서 콩고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역시 대중은 술과 채소의 조합을 어색해 하는구나...라며 내심 안타까워했다. 이후, 해외에서 채소가 주인공이 되는 요리를 하며 이와 어울리는 와인을 준비해두는 레스토랑을 방문한 적이 있다. 1인쉐프의 공간이었기에 식사를 하며,쉐프에게 ‘채소가 주인공이 되는 요리와 와인을 페어링하며 대중의 시선을 끌기까지 어렵지는 않았냐’는 질문을 한적이 있는데, 그 나라에서는 채소와 와인의 조합을 어색해하지 않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다는 대답을 들으며 아차 싶었다. 와인에 어울리는 채소요리를 잘하는 음식점 어디 없으려나. 단골될 자신이 있는데...

 요리와는 거리가 있을 것 같은 친구가 왠일인지 솥밥에 관심이 있다며 솥밥 클래스를 해보라는 적극적인 제안을 했다. 본격적이게 솥밥 클래스를 검토하는 것은 아니지만, 친구이야기에 솔깃하기도 하고 집에 굴러다니던 밤과 우엉, 얼려둔 표고가 보이니 오늘은 가을영양솥밥을 해보기로 한다. 솔직히 자신있는 메뉴였다. 밤을 넣었으니 맛없기가 어렵다. 여러가지 이유로 클래스에 할지는 고민스럽지만 가을이 가기전에 친구에게도 해줘야겠다. 육류사랑이 지극한 친구가 기대하는 채소밥상이니 안해줄수가 없다.

 일상에 큰 변화가 없고 평탄한 삶을 살아가는 나이지만, 오랜만에 최근 요리이외에 관심이 가는 분야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아로마’. 

 도쿄에 들렀다가 교토로 여행을 떠나는 나에게, 리마에서 함께 마크로비오틱을 공부한 지인이 ‘여행 중 좋은 친구가 되면 좋겠어’ 라는 말과 함께 천연 아로마 룸스프레이를 선물했다. 향기에는 무지하고 흥미도 없던 나이기에, 우리집에서 굴러다니는 수많은 향수들처럼 이 친구 역시 찬장속 골칫덩이가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기우였다. 큰길가에 접해 있어, 밤에 길거리의 차소리가 들려오던 교토의 숙소에서 룸 스프레이는 눈베개와 함께 나의 숙면을 도우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이후로 잠이 부족한 편인 나에게 이 룸스프레이는 좋은 잠친구가 되어주었다. 조만간 아로마 오일과 그 효과에 대해 조금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다양한 아로마 오일을 구비해 침대 머리맡에 ‘아로마 스테이션’을 두고, 그 날의 기분에 따라 다른 아로마오일 향을 맡고 잠드는 날이 오면 좋겠다.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일주일에 3일 이상은 챙겨다니던 도시락을 오랜만에 챙겼다. 이번에는 내가 아닌 엄마가 챙겨줬다. 내 기억에 의하면 엄마가 도시락을 챙겨준 적은 많지 않다. 학창시절 소풍때나 챙겨줬으려나. 언니가 다니던 중학교 근처에서 가성비가 좋은 김밥집을 알아낸뒤에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단체로 이 집 김밥을 주문했기에, 소풍때에도 나는, 알록달록한 도시락 대신 알루미늄 호일로 감은 김밥을 비닐봉지에 품은채로 소풍을 떠났다. 이후 직장인시절에는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식습관 때문에도, 내 도시락은 내가 직접 챙겼다. 때문에, 서투르지만 엄마가 오랜만에 챙겨준 도시락이 내심 기쁘다. 고운 색감, 도시락을 신경써서 만든 메뉴는 전혀 없으며, 심지어 도시락통을 비닐봉지에 싸주려 했던 도시락.( 도시락은 예쁜천으로 포장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나의 고집센 취향 때문에, 비닐봉지는 찬장에 넣어두고 왔다) 하지만 나에게 핀잔을 듣지 않을 마크로비오틱한 메뉴들로 눌러담은 도시락에 엄마의 고민이 엿보였다. 누군가가 만들어준 도시락이 너무나 오랜만이라 예쁘지는 않지만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생각해보니 누군가가 나를 위해 만들어준 도시락이 없지는 않았다. 꽤나 곰살맞은 남자친구들이었다. 반대로 요리를 직업으로 삼기 전에도 누군가의 도시락을 만든 경험은 없지 않았다. 말로 표현을 못할 뿐, 생각보다 나는 꽤나 곰살맞은 여자친구였으리라 믿는다. 이제는 그때보다도 맛있고 예쁜 도시락을 쌀수 있을텐데...슬슬 다시 남의 도시락을 싸보고 싶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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