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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Oct 23. 2019

안타깝게도 요리는 감으로 하는 것이 사실이다

10월 셋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식당영업을 하는날의 아침식사로 현미밥, 청국장, 무조림, 무나물과 콩나물, 무말랭이조림을 올렸다. 이번에도 무가 가득한 한 상. 식탁한켠에 송편이 보였다. 올 추석에는 해외에 나가있어 송편을 못먹었다. 조금 탐이 났지만 기운내 일해야 하니 송편은 아빠한테 양보하기로 하고 밥을 한술 더 챙겼다. 어제 야식을 드신 듯 하니 아빠도 송편은 안드시는게 좋겠지만.

책을 읽으며 전철을 타고 가는 출근길. 일본의 어느 요리연구가의 에세이를 읽으며 출근길에 올랐다. 다른 요리사(특히 쉐프보다는 요리 연구가)의 삶을 글로 본 경험은 많지 않기에,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의 삶을 담은 글을 읽는다는 것은 꽤나 흥미롭다. 남들은 수업이 있는 날, 또는 식당영업을 하는 날만이 내가 일하는 날일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책에서 염탐한 그녀의 삶은, 나와 많이 닮아 있었다. (물론, 그녀는 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인기 있는 요리 연구가 이지만) 나름 같은 애환을 지닌 그녀의 삶 이야기에 크게 공감했다. 한편, 그녀는 쉐프로도 일하며, 잡지, 방송 등의 의뢰로 레시피를 개발하는 요리연구가로도 일하는데,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거의 처음으로 쉐프라는 직업에 대한 부러운 마음이 생겼다. 방송 때문인지 멋지게 칼질을 하거나 소금을 뿌리는 등의 쉐프의 모습을 동경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많은 사람과 함께 팀으로 일한다는 점, 든든한 팀원이 있기에 한 발짝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점이 부러웠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공기와 눈빛으로 통하는 주방의 전사들은 멋지다. 주방에서는 늘 홀로 일해왔기에, 이런 주방의 팀워크에 대한 부러운 마음이 있다.

 토요일 저녁영업 준비를 생각보다 일찍 마쳤기에 조금은 느긋한 오후를 보냈다. 하지만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영업을 하면서도, 그날 얼마나 손님이 올것인가는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저녁영업이 가까워질무렵 예상밖의 예약 문의가 몰려 급하게 준비를 시작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그할때, 침착해지라고 워 워 스스로를 달래가며 일하곤 한다. 이럴 때 다시 한번 서로 역할 분담도 해가며 서로를 달래가며 일하는 큰 주방이 부러워진다.

집으로 돌아오니, 일요일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쿠킹클래스를 위해 빵 선생님이 보내주신 빵들이 도착해있다. 아름다운 자태. 선생님다운 박스에 담겨왔다.
 이번 클래스는 마크로비오틱 기본반찬의 대표주자인 뿌리채소조림을 만들고, 이를 활용한 샌드위치를 알려드리는 수업. 당근냄새는 사라지고 달콤한 단호박스프같은 맛이 나는 당근포타주도 곁들였다. 지난번 수업에서 불이 약한 인덕션으로 호되게 고생을 했는데, 뒤늦게 버너를 준비해주실 수 있다해, 이번에는 필요한 만큼 버너준비를 부탁드렸다. 덧붙여, 마크로비오틱에서는 가급적 전기 주방가전보다는 가스를 선호하며, 불조절이 관건인 요리가 많기에 인덕션은 적합하지않다.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수강생도 있는 가운데, 정신없게 실습하는 것보다는 시연 위주로 진행하는 수업을 좋아한다. 마크로비오틱 조리법으로 제대로 만든 요리의 맛을 기억하기 위해서도 마크로비오틱에 익숙한 내가 요리하는 것이 좋다. 또한, 시연인가 실습인가보다도, 수업을 통해 오감을 깨울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레시피야 인터넷을 뒤져보면 비슷한 것이 나오지만, 오감은 인터넷이 깨워주지는 않는다. 결국, 요리는 감으로 하는 것이 사실이다. 시연 위주이더라도, 내 옆에 모여, 모두가 재료의 모습을 지켜 보고, 지글지글 소리를 듣고, 향을 맡고 맛을 보며 오감을 깨우실 수 있게끔 이번에는 실습을 줄이고 다함께 옹기종기 모여 수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역시 어시스턴트 없이 10명이 넘는 인원의 수업을 진행하는것은 정신이 없다. 심지어 평소보다 수업시간도 짧다. 빵 선생님이 그토록 아름다운 빵을 보내주셨는데, 샌드위치 완성샷이 남지 않았다...안타까워하는 나를 위해 수강하신 분이 사진을 보내주셨다.

쿠킹클래스와 식당영업을 마쳤더니, 애매하게 조금씩, 빵으로 아침식사를 차리기에 좋은 반찬들이 남았다. 게다가 고소한 브로콜리 포타주도 있다. 기장과 잣을 곁들인 당근 샐러드 옆에는샌드위치용으로 준비해두었다가 남은 잎채소를 끼우고, 뿌리채소조림도 올렸다. 빵은 토스트하지 않고 김이 오른 찜기에 쪄 먹었다. 음의 기운이 활성화 되는 것이 좋은 아침에 토스트는 적합하지 않다. 여기에 소시지, 달걀 등 동물성 식품을 더한다면 더더욱… 변비를 촉진하는 식단이다.

 쿠킹클래스를 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쿠킹클래스 준비를 했다. 다가올 클래스에서 유부초밥을 만들기로 했는데, 봄철에 가까운 레시피였기에 추운 계절에 맞게끔 레시피를 살짝 수정하고 싶었다. 밥 물을 줄여보았는데 원래 양으로 해도 될듯하다. 요즘 컨디션이 양성화 되어가고 있는지 촉촉한 것들이 당기는 것 같다. 엄마랑 유부초밥을 세개씩 나누어 먹었다.

식당메뉴로도 뿌리채소조림을 내고, 쿠킹클래스에서도 만들었더니, 우엉, 당근, 연근이 많이 남았다. 한동안 요리할 시간이 없을 듯 해, 짬을 내어 또다시 뿌리채소조림을 대량생산했다. 지난주부터 이녀석을 kg단위로 만든 듯하다. 같은 재료로 다른 반찬을 만들 수도 있지만, 기본 반찬이 나에게는 가장 속이 편하기에 이 계절에는 끊이지 않을 정도로 만든다. 쿠킹클래스와 식당영업, 우리집 반찬 생산을 위해 최근 냉장고에 연근이 없던 적이 없기에, 엄마는 이제 슬슬 너의 요리에서 연근은 빼보라는 이야기도 했다. 하지만 연근은 워낙에 여러가지 얼굴을 가진 재료이기에 자주 사용해도 질리지가 않는다. 굽고 찌고 튀기는 등 가열 방법에 따라서도 얼굴이 바뀌고, 갈고 슬라이스하고 토막내는 등 써는 방법에 따라서도 식감이 다르다. 조만간 스프로도 만들고 싶다. 어떤 재료를 조합시킬지 조리순서는 어떻게 할지...이런 것을 생각하다 보면 순식간에 시간이 흐른다.

 이런 좋은 듯 나쁜 듯한 버릇 때문에 늘 취침시간이 늦다. 이렇게 깊은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면, 꿈을 꾼다. 잠이 얕은 듯 하다. 최근에는 비슷한 패턴의 꿈을 자주 꾸는데, 주로 배경은 교토이다. 이 꿈을 꾼지는 꽤나 오래되었다. 9월에 잠시 교토에 다녀오기로 하며 더 이상 비슷한 꿈을 꾸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꾼다.

 교토에서 있었던 일을 글로 남기지 않았다. 교토를 떠나기 전날 밤, 교토에서 내 눈 앞에 펼쳐진 것들, 손끝을 스친 아름다운 것들을 글로 남길까 하는 마음에 휴대용 키보드를 펼쳐보았다. 나의 비루한 어휘력과 표현력으로는 글로 남겨 보아 봤자 오히려 그 기억이 줄어드는 것만 같아,얼마가지않아다시키보드를덮고잠을청했다. 교토에서 돌아온지 한달이 지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자세한 기억이 줄어드는 것 같아, 다시 글로 남길까 하면서도 더 줄어들까 무섭다. 하지만 왠지 그 날 본 석양과 풍경, 신발을 뚫고 발에 느껴지던 모래의 감촉 등 꼭 기억하고 싶은 좋은 기억들은 어렴풋하게 나마 오래 기억될것도 같다. 어쩌면 계속 꿈에 등장해 원치 않더라도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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