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연 Oct 19. 2019

현실의 엄마는 소설속 엄마와 다르다

10월 셋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고등학교 시절 함께 꼬마곰젤리와 포카리스웨트를 사먹던 친구들을 만났다. 20대 시절에는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시러 다니기도 했지만, 어른이 되니 좋은 와인을 하프 보틀로 골라 딱 한 잔씩만을 나누어 마시고 헤어졌다. 안주로는 콜리플라워 구이를 주문했다. 참으로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이다. 다음날 아침, 어제의 술자리가 참 좋았다고 친구에게 이야기하니, 화끈하게 술 잘 마시는 그녀답게 ‘그래도 가끔은 퍼 마셔 주어야 한다’며 웃어준다.

 여행을 떠났던 엄마아빠가 돌아오는 날. 밑반찬과 국거리를 만들어 둘겸 냉장고를 열어보니, 지난날 한살림에서 배달온 무가 한통 눈에 들어온다. 나박썰어 버섯과 함께 된장국을 끓이고, 은근하게 졸인뒤 버섯소스를 끼얹어 버섯소스 무조림을 만들었다. 리마의 오카다 교장선생님한테 배운 무 사과 샐러드도. 계절에 따른 기름, 식초 사용에 대해 함께 배웠던 메뉴. 유부도 굴러다니니 무말랭이와 함께 유부 무말랭이 조림도. 상을 차려놓고 보니 엄청나게 무가 많은 한 상이라 피식 웃음이 나온다. 소화가 잘되겠거니 싶다. 실제로 배는 부른데 속이 더부룩하지는 않다. 각종 재료와 조리의 조합이 과식이 잦은 계절에 도움이 될듯하다. 모임과 술자리가 잦을 연말에 같은 구성으로 상을 차려보아도 좋겠다.

 오랜만의 식당 영업. 이른 아침, 옥상에 올라가 로즈마리를 따왔다. 추워진 날씨 속에서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던 아이들이라 그런지, 유난히 향이 더 강한 듯 하다. 로즈마리 가지가 손에서 떠난지 오래인데도, 손에서는 로즈마리 향이 남아있다. 생명력에 감탄해보기는 했지만, 로즈마리의 안녕을 위해 조만간 실내로 들여올 시간을 내야겠다.

 지난주 팝업식당 오늘의 마크로플레이트

단단덮밥

브로콜리포타주

뿌리채소조림

유부쑥갓 깨무침

양배추만두

뿌리채소쌈장과 숙주나물

기장 당근 샐러드

 단단하고 달달한 채소들로 만드는 몸이 따끈해지는 덮밥이기에, 단단덮밥이라 이름을 붙였다. 마크로비오틱의 음과 양을 이해해가며 각 식재료가 가진 식감을 살려 만드는 덮밥. 연근과 양파는 아삭하게, 단호박과 양배추는 파근하게, 표고는 쫄깃하게 조리하는 것이 포인트.

 즐겨만드는 브로콜리 포타주도 고소하다며 손님들이 좋아해주었다. 버터에 양파랑 브로콜리 휘휘 볶고 끓여 생크림을 넣는 등 속임수를 더하지 않으니, 둥실 뜬 기름 없이 담백하게 만들 수 있다. 

 마크로비오틱의 기본이 가득한 한상이기도 했다. 너무나도 자주 등장하지만, 마크로비오틱 뿌리채소 조림도 살포시 올리고, 리마의 전통 레시피인 뿌리채소 된장을 활용한 뿌리채소 쌈장도 숙주나물에 곁들였다. 여기에 샐러드, 만두에도 잡곡이 숨어있으니 마크로비오틱이 권하는 곡물채식까지 충실히 따르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지나치게 마크로비오틱에 얽매이지 않고, 즐기며 나의 마크로비오틱을 만드는 반년으로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보니 나의 마크로비오틱은 마크로비오틱의 기본을 따르고 있었다. 마크로비오틱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나의 색깔을 만드는데 충실해 왔다는 느낌이 든다.

 이 중, 손님들의 취향을 저격한 메뉴는 뭐니뭐니해도 양배추만두. 빚느라 고생은 했지만, 인스턴트 이외의 채식만두를 접하기 어렵다는 점에도 손님들은 좋아해주신 듯하다.

 혼자 수십개의 만두를 빚는 딸을 위해 엄마도 옆에 앉아 거들어 보려고 했지만 한개를 빚고는 포기했다. 예쁘게 빚는데에는 자신이 없어 나에게 핀잔을 듣기 전에 그만두겠다는 것이었다. 

 20년이 넘도록 엄마는 요리를 꽤나 잘하고 손재주도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20대 후반 쯤부터 딱히 그렇지도 않다는 점을 눈치채고 있었다. 요리 따위에는 관심이 없지만 엄마는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의무적으로 요리를 해왔다. 때문에 우리 집에는 예쁘게 말거나 빚어야 하는 메뉴나 야심찬 신메뉴는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사시사철, 애호박 볶음 ,무나물, 콩나물이 오르며 김치찌개, 비지찌개, 미역국의 무한 반복이었다. 반찬투정이 없는 아빠한테는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비단 우리엄마 만이 아닐 것이다. 소설 또는 영화속의 엄마들과 현실의 엄마는 다르다. 나이가 들고 요리가 업이 되며 세상의 엄마들이 새롭게 보이고 있다. 지금의 엄마아빠들은 조금더 요리를 즐기며 하면 좋겠다. 굳이 장비를 늘리고 그럴싸한 일품요리를 하지 않더라도, 요리를 즐기는 방법은 많다. 계절마다 다양한 재료로 된장국을 만들어 보며 재료의 숨은 맛을 탐험해 본다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재료를 조합해본다던가...

쑥갓 유부 깨무침을 만들려 했으나 한살림에 쑥갓이 얼마 없어 두번째날부터는 쑥갓대신 고춧잎을 사용하기로 했다. 날이 추워지고 이런 나물 손질은 오랜만이다. 봄 생각이 난다. 봄 생각에 젖을 즈음, 고춧잎에 섞여 들어온 아기고추가 하나 나온다. 귀엽기도 하면서도 너무 작아 미안하기도 하다. 이런 내 사정을 SNS에 공유했더니, 저런 아이들 골라가며 수확하는 것이 엄청나게 힘들다며, 이해해주라는 센스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게다가 저런 애들이 은근히 별미란다. 백번 맞는 말이다. 저런 애들은 별미다. 다음에는 고춧잎 나물을 손질하다가 저런 애들이 나오면 기분이 좋을 듯하다.  달걀을 깼는데 쌍란이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려나...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팝업식당, 쿠킹클래스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매거진의 이전글 배추를 보고는 벌써부터 겨울과 연말을 떠올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