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넷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가족과 모여 앉아 뉴스를 보며 먹는 저녁식사. 드넓은 바다로 떠났다가 연어가 돌아오는 시기가 왔단다. 요즘이 연어가 돌아오는 때이구나...채소에만 신경이 팔려있기에 해산물의 제철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편이다. 물살을 거스르며 온 몸에 상처가 난 연어. 그 큰 몸으로 펄쩍 뛰어가며 강을 거스르는 모습을 넋 놓고 지켜보았다. 하지만, 뉴스 속 사람들은 드넓은 바다를 경험하고 강을 거슬르며 긴 여행을 하고 돌아온 연어를 잡아 곧장 배를 가르고 알을 채취했다. 연어 양식을 위해서란다. 대규모 연어 축제가 조성되고 맨손연어잡기 체험도 예정하고 있단다.
이 뉴스가 몹시 불편했다. 채식을 하는 사람이기에 불편하다기 보다는, 1년에 한번 꼴로 시인 안도현의 소설 ‘연어’를 읽어서 일 것 같다. 소설 속에서 강은 연어들에게, 세상에는 낚싯대를 든 인간과 카메라를 든 인간,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카메라를 든 인간들을 보며 주인공 은빛 연어는 ‘세상은 정말 살 만한 곳인가 보다.’ 라는 감상을 내비쳤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꼬마에게 ‘너는 낚싯대 보다는 카메라를 든 어른이 되렴’ 이라는 말을 남기고 연어는 떠났다. 그 꼬마가 카메라를 든 어른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소설이 나온뒤 몇십년 뒤, 낚싯대를 든 인간의 이기심이 조금 더 커진 듯 하다.
연어가 돌아오는 시기에, 나도 올해의 한가지 중요한 일을 마무리 했다. 2월에 담근 된장과 간장을 집으로 챙겨왔다.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장담그기 행사에 참여해 장을 담근 것이 어느 덧 반년전. 장을 담그기 전날, 뒤늦은 폭설에 걱정하며 집을 나섰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약 두 달뒤에는 장을 갈라, 된장과 간장으로 나누었고, 반년이 지난 10월이 되어 먹기 좋게 익은 된장과 간장을 챙겨왔다. 항아리에서 간장과 된장을 옮겨 담으며 그 향에 취해, 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자꾸만 손가락으로 된장맛을 보았다. 시간과 정성, 온도가 만들어 낸 맛. 발효식품만이 가진 매력이다. 서울의 서쪽까지 온 김에 저녁에는 연희동에 들러 내가 팝업식당을 진행하고 있는 공간, ‘프로젝트 하다’ 의 운영자인 다운님을 만나 된장을 나누어 드리고 왔다.
저녁에는 홍대의 어느 카페에 들러 맥주와 함께 템페, 채소 후라이를 먹으며 책을 읽다 왔다. 생각보다 많은 양에 깜짝 놀랐다. 귀한 재료들을 사용하시는 것을 알기에 배는 부르지만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맥주와 튀김, 각종 소스를 이렇게나 많이 먹어버리다니… 뱃속이 깜짝 놀라 다음날 아침까지도 고생했기에 후회스러웠다. 결국 아침식사를 건너뛰어야 할 정도였다. 평소 적게 먹는 편이기에 대부분의 외식이 편하지 않다. 다음부터는 외식할 때마다 양을 적게 달라고 부탁드려야 겠다. 남은 음식을 담아올 통을 챙겨다니는 것도 방법의 한가지일 듯 하다.
하루에 두끼 이상을 밖에서 먹는 날이 많은 한주였다. 나답지 않게 외식이 잦았다. 주로 엄마와 함께 식사를 했는데, 식생활에 까다로운 딸이다 보니 외식의 선택지가 많지 않아, 너랑 뭘 먹어야할지 모르겠다며 의도치 않은 불평을 털어놓기도 했다. 나 때문에 선택지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니, 미안한 마음에 내 기준에는 탐탁치 않은 식사를 해야할 때도 있었다.
도시락을 챙겨갈때도 있었지만, 도시락을 데워먹을 만한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았기에, 빵이나 고구마, 과일 등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정도의 식사만을 챙겨갔다. 이런 식사가 계속되다보니 결국은 폭발했다. 내 몸에 필요한 음식을 제대로 먹고 싶은 기분이었다.
오전부터 끊임없이 일을 하고 돌아와 몸은 녹초였다. 저녁식사를 하기에 조금 이른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곧바로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지난밤, 맥주에 튀김을 한가득 먹어 음양 팔짝팔짝 뛰어다니느라 내 몸이 정신을 못 차리겠단다. 내 몸이 흐물흐물 축축 처지니, 나는 현미밥에 된장국을 먹어야만 쓰겠다. 그 누구도 나를 말리지 말라. 라는 기분으로 밥을 차렸다. 지어둔 현미밥을 찜기에 데워 국, 냉장고 속 밑반찬 두가지를 놓고 밥을 먹었다. 현미밥을 꼭꼭 씹어 넘기고, 김이 오른 된장국을 호호 불며 사발째 들이 마셨다. 이제서야 온 몸에 열기가 도는 것 같다. 캠핑카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흙으로 지은 집에 돌아온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며칠전 끓여둔 양배추, 무 된장국과 뿌리채소 조림, 엄마가 만들어 둔 말린가지 나물이 나를 살렸다. 오랜만에 바쁠때 일수록 밑반찬과 같이 저장성이 높은 반찬들을 미리미리 만들어 두어야 한다는 점을 실감했다. 그리고는 야밤에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 살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담갔다. 절박한 마음이 들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조리과정 하나하나를 신경쓰며 만들었다. 느낌상 역대급 깍두기가 나온 듯 하다. 내가 지은 현미밥에 깍두기, 뿌리채소조림만 있어도 나는 지금보다 행복하게 밥을 먹을 수 있다. 하루라도 빨리 깍두기가 익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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