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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Jan 30. 2020

돈을 벌기 위한 음식과 스토리를 들려주기 위한 음식

1월 마지막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몇년 전인가 부터 명절이면 해외에 다녀온다. ‘올해는 결혼을 하라’는 어른들 말씀이 편하지 않기도 하고, 수업을 쉴수 밖에 없는 명절이 나에게는 쉴 기회이기에 다소 항공권 가격이 비싸더라도 두눈을 딱 감고 결제 버튼을 클릭하고 만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며 언어도 문화도 통하지 않는 곳에 가기 위해 사전 조사를 하는 수고를 하는 것도 힘드니 가는 곳은 늘 일본으로 정해져 있다. 부정할 생각도 없지만 부정할 수 없이, 20대의 10년을 보낸 그 곳은 나에게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그 곳에 다녀오기 위해 떠나기 이틀전부터 준비를 해두었다. 우리 집보다는 아현동 작업실이 공항에서 가깝기에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현동 작업실에 출근할 때부터 여행짐을 챙겨 나섰다. 세시간의 수업과 앞뒤 한시간씩의 준비와 뒷정리 시간, 총 다섯시간의 쉼 없는 노동 후에도 친구들에게 나누어줄 스콘을 구웠다. 얼마전 주문한 5킬로 가량의 유자로 유자소금을 만들어 두었으니 이 녀석으로 상큼짭짤한 스콘을 만들었다. 공항에 가면 도통 먹을 것이 없고 도착한 후에도 공항 음식은 먹지 않을 것이니 도시락용으로 유부초밥과 샐러드도 만들어 두었다. 공항에서 주섬주섬 도시락을 꺼내는 사람이 있더라도 놀라지 마시길. 세계각국의 사람이 모이는 공간인데도 공항에서는 비건음식은 물론 마크로비오틱한 음식을 찾기 어려우니 나처럼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 믿어본다.

 5박6일의 일본 방문은 나에게 긴 시간이 아니었다. 도쿄에서 3박 4일, 교토에서는 2박3일. 많은 것을 배우고 보고 와서 느낀 것은, 나에게 일본 방문은 더이상 휴가가 아니라 출장이라는 점. 쉴시간은 거의 없었다. 다른 일을 하고 다른 삶을 사는 나를 응원해 주는 친구들을 만나 대화하며 마음이 쉬어갈 시간이야 조금은 있었지만 몇시간의 술자리 이외에는 줄곧 홀로 음식점을 방문하거나 필요하던 도구를 사러 다녔다. 그렇게 나의 설연휴는 ‘출장’으로 마무리 되었다.

 귀국후에는 연휴마지막날부터 조금 이른 일상복귀. 12월부터 진행중인 ‘미니멀리스트 베이킹’클래스를하는날이다. 기름과 감미료를 최소한으로 사용한 클래스인 만큼 개강한지 두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꾸준히 문의가 많은 클래스이다. 연휴 마지막날 시간을 내어 오신 만큼, 수강생분들의 스토리도 다양하다. 아이를 위해 시간을 내어 오신분들, 부모님을 위해, 비거니즘을 실천하기 위해 오신분들 까지. 정통 프랑스식 마들렌을 만드는 분들이 보면 펄쩍 뛸, 레몬이 아닌 감귤, 밀가루가 아닌 현미가루로 만든 레시피 인데다가 정교한 과정을 건너뛴 레시피이다. 하지만, 건강, 알레르기, 동물복지 등 수강하시는 분들 각자의 스토리에 부합하는 수업이기에, 이해해주시는 수강생분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1년간의 팝업식당을 접고 쿠킹클래스에 집중하고 있다. 쿠킹클래스와 식당의 장단점은 무척 명확한데, 식당의 장점이라면, 클래스보다는 조금 더 나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꼽겠다. 앞으로 정규반에서는 조금더 나의 창의성을 발휘한 메뉴도 선보이겠지만, 기초반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알려드리다보니, 식당을 하던 시절에 비교하면 다소 창의성이 줄어든다. 때문에, 요리를 통한 표현의 세계에 대한 갈증이 남지만 이런 것들은 나의 공간을 방문해주는 이들과의 시간을 보내며 해소한다. 

 20여년지기 친구들이 드디어 나의 공간에 방문해주었다. 친구들을 위해, 라는 핑계로 오랜만에 식당을 하던 시절을 떠올리는 요리를 했다.

올리브향 갈릭톳 치라시스시

달콤 당근카츠와 유즈코쇼

감태와 무를 곁들인 버섯소스와 디톡스오코노미야키

냉이 아마란스 무침

 치즈볼과 피자에 물든 속세 입맛의 친구들이지만 감사하게도 오코노미야키와 당근카츠에 엄지를 치켜세우며 그릇을 비워주었다. 팝업식당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던 시절, 양이 너무 적다는 신랄한 평가를 해주던 속세 입맛, 속세 뱃속의 친구들 덕에 양을 늘리고 손님들의 불평없이 가격도 높일 수 있었다. 친구들과 너무나도 다른 취향을갖고, 다른 삶을 살기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친구가 없는 삶에 하소연을 할 때도있다. 하지만 굳이 공감하지 않더라도, 친구라는 이유 만으로 돈을 주고 내 음식을 먹으러 오고 내가 어떤 일을 하든 나의 삶을 걱정하면서도 응원하는 친구들이 있어 어떻게든 이 일을 해왔다. 

 이틀을 연달아, 나의 공간에 손님들을 모셨다. 내가 1년에 가까운 기간동안 팝업식당을 해온 공간,  프로젝트 하다를 운영해온 다운님, 그리고 서로 다른 시간에 프로젝트 하다에서 요리를 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음식과 시간을 나누었다. 프로젝트 하다의 채식음식점을 사랑하던 손님들이 부러워할 식탁이다.

 프로젝트 하다의 운영자, 다운님과, 마하키친 소영님의  와인

 지구커리 구슬님의 귤 무라바

 단비식당 단비님의 무전, 버섯조림, 유자차

 오늘의 내가 준비한 무말랭이 주먹밥, 감말랭이와 쑥갓 두부무침,  펜넬씨드향 양배추 샐러드, 로즈마리와 고구마 레몬소금조림.

 함께 프로젝트 하다에서 요리를 하던 이야기를 나누니 신이라도 난 듯 이야기 보따리가 풀린다. 이들과의 이야기가 즐겁고 기쁜 이유는 모두가 돈을 벌기 위한 음식이나 공간을 만들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들은 자신이 전달하고픈 스토리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수단으로 음식, 또는 공간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들의 스토리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이를 최대한 배려한 공간을 그들은 만들어 왔다. 일회용 물수건 한장 제공되지 않지만, 소독한 다회용 물수건을 내어드리고, 그 대신 그 공간에서 즐거운 기억을 갖고가실 수 있게끔 정성을 다한 음식과 서비스로 그들은 노력해왔다. 어떻게 보면 노력이 아닌,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10년의 일본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본인 명의의 신용카드조차 갖고 있지 않았던 3년전의 여름. 인생을 즐기고 있는 듯한 고등학교 선배를 찾아가, 한국에서 재미있게 살고 싶다며 황당한 상담을 했다. 선배는 취미로만 요리를 즐기던 나에게 공유공간 ‘프로젝트하다’를 소개하는, 황당한 답을 내어 주었다. 이후 프로젝트 하다가 기억속에 잊혀질 무렵, 선배가 아닌, 프로젝트 하다의 운영자인 다운님의 제안으로 그곳에서 식당을 하게 되었다. 선배의 제안으로 프로젝트 하다에서 식당을 하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문현답이었다. 다른 조건은 두지 않고 그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사람에게 있어 공유공간 프로젝트 하다 만한 제안도 없을 것이다. 덕분에 인생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20대의 끝자락에 do more what makes you happy 를 제대로 행했다.


쿠킹클래스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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