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둘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식탁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선택하며 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지듯, 부모님의 일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척 사소하지만, 장을 보러 가는 횟수가 줄어든 점도 그 중 한가지가 아닐까 싶다. 팝업식당을 하고, 쿠킹클래스를 하며 늘 남는 재료가 생기기에, 엄마도 장을 봐오거든 냉장고가 넘쳐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아, 여느때와 다를 바 없이 장을 봐왔다가 남은 재료가 냉동실로, 할머니 댁으로 실려가는 일도 있었지만, 이제는 제법 이런 변화에 익숙해졌다. 다행히 우리 엄마는 요리와 장보기를 즐기기보다는 의무적으로 해왔던 주부이기에 이러한 변화를 편하게 맞이한 듯 하다. 장을 보러가는 횟수가 줄어들고, 식물성 재료만을 사용하는 나의 쿠킹클래스에서 남은 재료로 우리집의 반찬을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모님 식탁에 동물성 반찬이 오르는 일도 줄었다.
때문에, 팝업식당을 하던 시절에는 영업후 남은 반찬이 나의 식탁에 곧잘 올랐지만, 이제는 수업을 하고 난 다음날이면 수업 후 남은 재료로 만든 반찬이 나의 식탁에 오른다. 정규반 수업 후 냉이와 미나리가 많이 남았다. 냉이와 미나리는 가볍게 데쳐 깨된장 소스에 무쳐 초봄을 맞이하는 반찬을 하나 만들고, 남은 미나리는 맑은 비지찌개에 곁들이니 밥도둑이 따로 없구나. 채소의 달콤한 맛을 끌어내고 미나리로 상큼하게 마무리 하니, 돼지고기, 신김치를 볶아 만든 비지찌개와는 다른 우아한 맛이다. 달래간장을 만들어 올려 먹었다면 금상첨화였을텐데! 조만간 달래를 사와 손질하는 시간을 가져야 겠다. 손으로 나물을 만지는 시간이 늘어나는 시기가 곧 다가오겠구나. 푸릇푸릇한 것들을 만지고, 그 향을 느낄 날들이 기다려진다.
겨울부터 새로 시작한 미니멀리스트 베이킹(기름과 감미료를 최소화한 베이킹) 클래스에 집중하며, 한동안 비스코티와 브라우니를 배워가시는 클래스를 쉬었더니, 재개 시기에 대해 문의를 주시는 분들이 계시다. 미니멀리스트 베이킹에서 알려드리는 현미 마들렌의 재료로 감귤을 사용하는데, 감귤철이 곧 끝나가기도 하니, 3월쯤부터는 비스코티, 브라우니 클래스도 재개해야겠다. 재개를 맞이해 이 클래스에 추가할 새 메뉴를 테스팅 중이다. 이번에는 콩가루와 흑임자의 고소함이 일품인 인절미 볼 쿠키를 추가해볼까 한다. 일본에 살던 시절 백화점 지하 식품 매장에서 자주 발견하던 ‘스노우 볼’ 쿠키를 생각하고 만든 레시피이다. ‘스노우볼’은 바삭하게 씹히면서도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는 식감이 일품인 쿠키인데, 백설탕을 갈아 만든 슈가파우더를 잔뜩 뿌려 만든다. 나의 마크로비오틱 베이킹에서는 백설탕은 커녕 원당도 사용하지 않기에 슈가파우더 대신 볶은 콩가루를 입혀 ‘스노우 볼’이 아닌 ‘인절미볼’로 만들어 보았다. 머릿속에서만 구상하다가 만들어 보았는데 아주 잘 나왔다. 이런 날은 종일 기분이 좋아, 이 날의 작업실 풍경이 아름답게 기억되곤 한다. (반면에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은 영 기분이 좋지 않다. 스스로의 감정 기복을 잘 조절할 줄 아는 것 또한 요리 선생님, 요리 연구가에게 필요한 자질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
올 겨울은 이렇게 따뜻하게 지나가나 싶었지만 그럴리가 없었다. 갑자기 한파가 찾아오더니 눈이 온다. 냉이와 미나리를 먹고는 봄을 맞이했다며 기뻐했지만 방심해선 안된다. 얼마전 먹은 미나리, 냉이 보다는 양성인 것들을 먹고 싶다. 냉동실에서 매생이를 꺼내어 무와 함께 매생이 무 국을 끓이고 양성 가득한 우엉에 톳과 납작보리를 곁들여 샐러드를 만들었다. 대보름을 앞뒀으니 고사리나물도 해본다. 다음에는 들깨가루는 조금은 줄여보아야지.
베이킹 클래스 새 커리큘럼 테스팅을 하며 평소 먹지 않던 달달이들을 먹었더니 짭짤하면서도 아삭한 것이 당긴다. 김치를 담글때가 되었나보다. 때마침 한살림에서 양배추가 배달왔는데 아주 실한 녀석이 왔다. 그렇지. 봄에는 십자화과 채소도 맛있다. 이 달고 맛난 양배추로는 오랜만에 김치를 담그기로. 채소에 따라, 철에 따라 절이는 방법도 다르고, 양념방법도 다르니 김치 담그기도 빠져들기 쉬운 취미이다. 어른들의 김장 무용담 때문에 김치 담그기는, 무척 손이 많이 가고 한번 하고 나면 녹초가 되는 작업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겨우내 먹을 김치를 한번에 담글 때에나 해당 되는 일이지,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양만 담그면, 김치 담그기는 큰 일이 아니다. 불쓰는 일도 많지 않고, 만들기도 쉬운데, 한번 많이 만들어 두면, 두고두고 식탁을 지켜주는 밑반찬이 되어주기에 김치야 말로 바쁜 사람들이 알아두면 좋은 요리라 생각한다.
독서모임에서 오랜만에 대학 시절 전공 서적같은 책을 읽었다. 100년전에 쓰여진 선전과 홍보의 고전으로, 정치, 기업 등 다양한 분야와 선전의 관계에 대해 엿볼수도 있는데, 회사원으로서 일을 했어서 그런지, 기업안에서 PR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PR은 단기적인 매출을 만들어 내는 역할은 아니기에, 그 역할에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역할이며, 이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훌륭한 PR 담당자로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식품업계에 종사하는 PR 담당자의 경우 자사의 제품을 조금이라도 더 팔기 위해, 자사의 제품이 몸의 어디에 좋은지, 어떠한 효능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매스컴에 쏟아내는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정보를 매일같이 접하는 소비자는 꼭 챙겨먹어야할 음식도, 때로는 절대 먹어서는 안될 음식도 너무나도 많아, 과연 무엇을 먹고 사는 것이 좋은지 혼란스럽게 된다. 넘쳐나는 건강정보가 소비자의 즐거운 식생활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특히나 건강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수업에 오기에, 나의 수업 첫 시간에는 떠돌아 다니는 건강 정보를 내려놓으시기를 부탁드리고 있다. 몸 뿐만 아니라 마음도 건강해야 진정 건강한 삶이라 할 수있다. 건강에 신경을 쓰는 것도 좋지만, 떠돌아다니는 정보보다는 자신의 몸에 귀기울이며 식사를 하기 위한 여유로운 마음도 수업에서 익혀가셨으면 한다.
12월과 1월에 이어 2월에도 마크로비오틱을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한 첫걸음 클래스가 시작되었다. 12월에도 진행했던 수업이지만, 계절이 변했으니 같은 된장국을 끓여도 재료와 조리법을 바꾸었다. 12월에는 뿌리채소를 사용한 국을 끓였지만, 2월에는 봄동을 사용했다. 12월의 뿌리채소 된장국은 ‘겨울왕’국이라 불리며 새로운 조리법과 맛에 놀라워 하셨지만, 두달이 지났을 뿐인데도 지금 그 된장국을 다시 끓여먹으면 무겁게 느껴진다. 이처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몸과 입맛도 자연스럽게 변한다.
첫걸음 클래스 첫수업은 여러번 진행해온 수업이지만,눈 앞에서 마크로비오틱을 처음 접하는 분들의 생생한 반응을 볼 수 있기에 늘 흥미진진하다. 특히 나에게는 익숙하고 당연한 조리법이더라도, 놀라워하고 새로워하시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정신이 번쩍 든다. 마크로비오틱에서는 재료를 써는 방법, 재료를 넣는 순서에도 의미가 있기에, 특히나 마크로비오틱을 처음 접하는 분들께는 짧은 수업시간 안에 제대로 이해하실 수 있게끔 설명을 드려야 한다. 또한, 마크로비오틱을 처음 접하며 의욕이 넘치는 분들도 속출하기에 차근차근 마크로비오틱을 알아갈 수 있게끔 도와드리는 것 또한 나의 역할이다. 며칠 현미밥을 먹어본다고 몸과 라이프스타일이 바뀔리가 없다. 한번에 얼마나 많이 복습을 했는가 보다는 얼마나 꾸준히 실천하며 내 삶의 일부로 만드는가가 중요하다. 때문에 이 수업의 이름은 ‘기초 클래스’가 아니라 ‘첫걸음 클래스’이다. 마크로비오틱의 기초를 두달 동안 해치우는 것이 아닌, 꾸준히 실천하기 위한 첫발걸음을 도와드리는 클래스이기 때문이다. 초봄, 마크로비오틱의 첫발걸음을 뗀 이 분들의 생활에 두달 뒤 어떤 변화가 생겨있을지, 벌써 기대가 크다.
쿠킹클래스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