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연 Feb 17. 2020

발렌타인데이. 때로는 상술에 넘어가 보련다.

2월둘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식탁

 코로나 바이러스 탓에 외출이 줄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며 잠깐이나마 생활이 바뀌었다. 집과 작업실 이외의 나의 주된 활동영역은 요가원과 도서관인데, 요가원도 가지 않으며 도서관도 휴관중이니 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 덕에 오랜만에 웹툰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다른이의 생활을 훔쳐보는 것을 좋아해서 일까, 글도 일상 에세이를 즐겨 읽듯 웹툰 역시 생활툰을 좋아한다. 나의 인생 웹툰이라면 뭐니뭐니해도 서나래 작가님의 ‘낢이 사는 이야기’ 이다. 지금은 정규 연재는 쉬고 계신 듯하니, 거의 10년 전 연재까지 거슬러 올라가 정주행 하고 있다. 사실, 이 정주행도 수차례 해왔지만, 언제 읽어도 소소하면서도 별거 없는 듯한 일상에 공감이 가기도 하고, 별거 없는 듯한 일상 속에서도 소재를 얻어가며 연재를 해온 작가님에 대한 존경심도 가지며 이번에도 무척 즐겁게 읽고 있다. 작년에 아끼던 고양이 웅이를 떠나보내며 힘든 시간을 보내신 듯한데, 어서 이겨내시고 연재를 재개하시기를 팬의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매주 월요일은 나의 공식 휴일. 작업실에 가지 않는 날이다. 그렇다고 해서 주방에 서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일 양치를 하는 것 처럼 요리는 빠지지 않는 일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수업후 늘 조금씩 재료가 남으니 이 재료를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요리를 한다. 한데, 남는 재료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은근 재미가 쏠쏠하다. 

 대보름을 맞아 나물을 하고 조금 남겨둔 삶은 고사리로는 매콤한 채소 육개장을 끓였다. 사실 채소 육개장을 끓이려고 일부러 고사리를 남겨두었다. 일부러 콩나물도 남겨뒀는데 엄마가 깜빡하고 써버렸다. 콩나물 정도 빼고 만들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그럴수는 없다. 이 재료 조합에는 콩나물의 시원한 국물이 빠지면 안된단 말이다. 그렇게 눈곱만 대충 뗀 자연인의 모습으로 콩나물을 사오기까지 했다. (우리 동네 마트 아주머니는 아직까지도 화장을 한 나와 하지 않은 내가 다른 사람인줄 아신다)

 그렇게 놓치고 싶지 않던 콩나물을 넣어 만든 채개장에는 냉이와 미나리 깨무침, 얼마전 담근 양배추 김치, 다시마표고조림을 곁들여 한상 차려 본다. 노지 채소가 없는 시기에 식탁을 지켜주는 마른 나물 (이날은 고사리)와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봄채소들이 한꺼번에 상에 오르니 딱 2월초 답다.

 동물성 식품을 피한다는 것, 마크로비오틱을 실천한다는 것은 단순히 식생활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전체를 바꾸는 일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첫째로, 가공식품, 외식과 거리를 두게 되기 때문에 늘 부지런히 살게 된다. 하지만 나라고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 밥만 짓고 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직장을 다니던 시절보다 나의 일을 하고 사는 지금이 더 바쁘다. 이럴때에는 나도 빵도 사먹고 외식도 한다. (다만, 자연스럽게 발효시킨 빵인지, 어떤 재료를 사용하는지 등은 따져서 고른다.) 작업실 근처의 훌륭한 천연발효빵 집에서 치아바타를 사와, 미리 만들어둔 브로콜리 페스토를 넣은 스프에 곁들여 먹으니 바쁜 일상 속에서도 따뜻한 한끼가 완성된다.

 2월에는 생각보다 이벤트가 많다. 대보름을 맞아 고사리나물을 만든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번에는 발렌타인데이가 찾아왔다. 베이킹 업계가 떠들썩해지는 연중 최대급의 이벤트인데 발렌타인데이를 의식한 클래스는 개설하지도 않았다. 나의 클래스의 경우, 평소 집에서 손쉽게 간단하게, 몸에 주는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인 디저트를 만들고 싶어하는 분들이 오시기에 굳이 발렌타인데이를 의식한 클래스를 만들 필요는 없다. 그래도 발렌타인데이를 대충 넘어가기에는 내 마음이 섭섭해 오랜만에 현미가루를 꺼내어 브라우니를 구워보았다. 마침 다음날 쿠킹클래스도 있겠다, 수강생들과 나누면 된다.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모두 상술이란 것은 물론 알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상술에도 넘어가 보련다. 지독하도록 표현에 서툰 사람이기에, 때론 상술의 힘을 빌려 1년에 한번 정도 마음을 표현해보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컴퓨터를 짊어지고 출근하거나 때로는 남은 음식과 재료를 챙겨 퇴근하기도 하는 나에게 슬슬 자가용을 장만하고 운전을 하기를 권하는 지인들도 있지만 여전히 전철로 출퇴근을 고집하고 있다. 심지어 나의 출근길은 오전 9시전까지 9호선을 타고 여의도를 향해, 여의도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야 하는 최악의 지옥철과 함께 해야 한다. 하지만, 당분간은 출근길을 계속할 예정이다. 다른 무엇보다 손이 운전대에서 자유로웠으면 한다. 출퇴근 길 만큼은 책을 읽거나, 때론 웹툰을 보고싶기도 하고, 이따금씩 밤중 밀렸던 연락을 하고 싶기도 하다. 잠시나마 한공간에서 스쳐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보름을 지났고 우수(雨水)를 앞두었다. 날이 풀리고 입춘보다는 한층 더 봄이 가까워지는 절기, 우수. 우수를 앞둔 정규반 마크로비오틱 쿠킹클래스에서는 봄을 맞이하며 쑥을 사용했다. 잘 들여다보니 손질도 거의 필요없을 정도로 여리디 여린 초봄의 쑥이다. 그렇다고 해서 방심해선 안된다. 2~3주만 지나도 조금씩 억세질테니 말이다. 이처럼 봄부터가 시간 싸움이다. 봄철에는 채소가 새로운 싹을 틔우고 이 싹을 즐기는 요리가 많은 만큼, ‘이 채소가 벌써 나왔어?’ 싶다가도 몇 주뒤에는 억세지거나 찾아보기 어려운 채소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동물성식품의 섭취를 피하고 있는 나에게 ‘고기가 먹고 싶을 때가 없지는 않느냐’는 질문을 하기도 하지만, 절기별로 가장 맛있는 식재료를 찾아 먹는 것 만으로도 바빠, 딱히 동물성 식품 생각은 나지 않는다.

 쑥은 다양한 에너지를 가진 만큼, 이 계절 꼭 먹고 지나가고 싶은데, 요즈음에는 쑥을 식탁에서 보는 일이 드물다. 쑥떡, 쑥파운드케이크 등...어느덧 쑥은 디저트 재료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쑥을 낟알을 가진 통곡물과 함께 지혜롭게 즐기기 위한 메뉴로 쑥 현미리조또를 함께 만들었다. (죽처럼 만들지 않는 것이 포인트!)

 쑥 리조또와 함께 2월의 두번째 정규반 수업에서는 마크로비오틱 응용식부터 기본조미료, 테아테 (음식의 에너지를 이용한 치유식)까지 함께 공부해보았다. 

 이번 정규반 수업의 메뉴

쑥 현미리조또

오코노미야키와 버섯소스

다시마표고조림

레몬향 프레스샐러드

사과칡조림

 봄철에는 양배추, 브로콜리 등 십자화과 채소도 맛있다. 한껏 달콤해진 양배추를 아낌없이 채썰어 넣고 각종 소스, 밀가루, 달걀은 쏙 뺀 디톡스 오코노미야키도 함께 만들었다. 첨가물과 감미료, 기름을 잔뜩 넣은 우스터소스와 마요네즈 대신 중화풍 버섯소스를 얹고 그 위에는 소화를 돕는 간 무와 감태를 올리니, 오코노미야키를 먹어도 속이 더부룩할리가 없다. 

 이렇게 응용식도 배우는가 하면 마크로비오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본식 반찬, 다시마표고조림이 드디어 등장했다. 소화, 흡수가 가능한 음식이라면 뿌리, 껍질도 버리지 않고 먹는 만큼, 채수를 내고 남은 다시마와 표고로도 반찬을 만들어 낸다.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고 재료의 생명력을 온전히 받는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마와 표고의 음양의 균형을 갖춘 반찬이며, 오랜시간 동물성식품을 섭취해 치우친 체질을 갖게된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반찬이다.

사과 칡조림은 이유식, 디저트, 간식으로도 좋지만 칡과 사과가 갖는 에너지를 사용한 치유식의 한가지이다. 장이 안좋은 경우, 증상에 따라 어떤 치유식을 사용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함께 공부했다.

 봄이 오나 했더니 추적추적 비가 오고 비를 넘어 눈이 온다. 봄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갑작스런 눈이 야속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유난히 따뜻한 겨울이었기에 눈이 반가운 마음이 공존한다. 이 눈이 녹으면 우수(雨水)가 코앞이겠지. 이제 진정 봄이 코앞이다. 만물이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봄이 기다려진다.


쿠킹클래스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