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품고 모이다.
서울에서 지속가능성을 하나의 문화로 만들어 나가고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해 무척 좋아하는 마르쉐@. 이런 마르쉐@에서 농부시장의 기획자들, 농부들을 모아 농부시장포럼을 개최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무턱대고 손을 들고 참석했다. 지속가능성에 관심을 갖고 있고, 특히 식탁을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그려보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이 있기에, 농부시장의 기획자들, 농부들이 현실적으로 갖고 있는 고민에 대해 들어보고 싶었다.
반나절을 꽉 채운 이 날은 한국 농부시장의 현황과 과제, 새로운 농부시장의 사례 공유, 농부시장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토론, 네트워킹 파티 이렇게 네가지 세션으로 구성되었다.
첫번째 세션, ‘농부 시장의 현황과 과제’에서는 푸드시스템 연구자이자 지리학자인 허남혁 님이 한국 농부시장의 현황과 과제에 대해 발표했고, 대만의 NCHU Organic Farmers Market을 대표해 양웬젠 매니저님의 대만의 사례 발표가 있었다.
농부시장. 해외 여행 꽤나 다니는 내 또래 세대들에게는 ‘Farmers’ Market’ 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 수도 있다. 농부시장은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농부들이 주축이 되어 시장을 기획하고 그 지역의 생산품을 농부들이 직접 판매하는 직거래 시장을 말한다. 요즘에는 유기농,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는 조건이 덧붙여진 경우도 많다.
이러한 농부시장은, 농민들에게는 안정적인 소득원이 되며, 소비자에게는 믿을 수 있는 좋은 먹거리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이자 지역공동체 교류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나아가 로컬푸드, 지역 활성화의 허브가 된다는 것이 허남혁 님의 의견이었다. 나로서는 유기농, 친환경 이라는 조건을 덧붙인 농부시장이라면 환경의 지속가능성에도 크게 공헌하는 역할까지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마르쉐@’처럼 세련된 브랜딩, 쉐프들과의 협업이 덧붙여 진다면 이러한 농부시장을 통해 ‘지속가능성’ 을 소비하는 행동 자체가 세련된 것이라는 소비문화로도 이어질수 있기에, 어떻게 기획하는가에 따라 농부 시장의 역할은 얼마든지 크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문화와의 결합을 꾀한 마르쉐@의 성공사례를 통해, 전국적으로 유사한 컨셉의 시장들이 확산되어가고 있다. 반면, 마르쉐@이 문화와의 결합을 통해 성공적인 발걸음을 내딛고 있지만, 문화장터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화되면서 농부시장으로서의 정체성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 또한 있었다.
이런 고민 속에서 허남혁 님은 한국 농부 시장의 향후 과제로,
1. ‘농부시장’에 대한 공통점과 합의 도출, 사회적 확산 노력
2. 로컬푸드, 제로 웨이스트의 결합
3. 커뮤니티로의 확장
이 세가지를 꼽았다.
이번 세션을 들으며 특히 첫번째 과제, ‘농부 시장’만의 컨셉과 분위기에 대해 ‘농부 시장’을 운영하고 기획하는 당사자들의 공통 인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큰 파급력을 위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획자의 목적에 따라 같은 ‘농부 시장’이라 불려도 제각기 다른 모습을 띄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유기농만을 취급하며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한으로 줄인, 환경과의 공존에 포커스한 농부 시장도 있는가 하면, 로컬 푸드에 포커스한 농부 시장도 있다. 한편, 지역의 농부 시장을 지향하며 로컬푸드를 내세는 듯 하면서도 수입 식품을 판매하는 농부 시장마저 있다는 이야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편, ‘마르쉐@’, ‘얼굴 있는 농부 시장’과도 같은 도시형 농부시장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는 흥미에 이끌려 한번 둘러보는 정도로 시장에 발걸음을 옮기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그동안 다양한 문화 컨텐츠와 접근성으로, 신규 유저들의 흥미 유도를 해왔다면, 헤비유저를 늘릴 방안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헤비유저가 매력을 느낄만한 명확한 ‘컨셉’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때이다.
헤비유저 육성에 있어, 대만의 사례 또한 흥미로웠다. 대만의 NCHU Organic Farmers Market의 경우 구매 빈도, 구매량 등의 기준으로 일반회원과 VIP회원이 나누어지며 VIP 회원에게는 할인가가 적용되는 등의 혜택이 있다. 이러한 VIP만의 혜택 또한 헤비유저 육성을 위한 한가지 좋은 사례일 것이다.
이후, 두번째 세션에서는 올해 시장을 첫 오픈한 당진의 ‘당장’을 포함해 국내의 농부 시장의 사례를 각 농부 시장 기획자들로부터 들어볼 수있었다. 각 시장의 기획 과정, 특색, 고민에 대해 들어보며, 공감과 감탄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마지막 세션에서는 ‘농부시장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다’ 라는 주제로 토론이 이어졌다. 이 토론에서는 당진의 ‘당장’을 기획한 권민진님, ‘문전성시, 움직이는 농부시장’의 기획자 김용자님, ‘얼굴 있는 농부 시장’ 기획자 홍천기님, 그리고 식품 안전 담당 입법조사관 장영주님이 함께 했다.
토론의 주제는 ‘농부시장을 지속가능하기 어렵게 하는 것은 어떤것인가’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이기도 했다. 디자인의 역할과 그 필요성에 대한 이해, 정책담당자의 방침 등 다양한 의견이 오갔지만, 공통된 의견은 안정적인 공간확보, 품목의 다양성, 우수한 기획자들의 영입 및 이들의 지속적인 참여로 좁혀졌다.
아무리 매력적인 시장을 기획해도 이를 개최할 장소를 구할 수 없다면 시장으로서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절한 유동인구를 갖고 있으며, 저가에 안정적이게 시장을 개최할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하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현장의 생생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여름, 겨울에 더위와 추위를 피하며 시장을 개최할 수 있는 공간을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한편, 시장 기획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품목의 다양성’을 꼽은 것 또한 흥미로웠다. 특히나, 도시형 농부시장이 아닌 지방의 농부 시장의 경우, 그 지역의 특산품을 재배하는 농가가 많기 때문에 더더욱, 품목이 겹치기 쉽다는 것.
나 또한, 이전 포스팅에서 포틀랜드의 파머스 마켓의 성공요인 중 하나로 품목의 다양성을 꼽기도 했다. 나의 경우, 파머스 마켓에서 판매되는 품목의 다양성을 통해 그 지역의 풍성한 식문화에도 연결된다는 소비자의 관점을 들어 설명했다.
한편, 이날 토론에서 거론된 점은, 이러한 품목의 다양성은 소비자가 갖는 선택의 다양성과도 직결될 뿐만 아니라, 시장 내 셀러들의 경쟁에도 연결된다는 관점이었다. 과연 시장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당사자들이 경험해온 리얼한 의견이었다. 시장이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자금, 인프라 등 다양한 요소가 필요하지만 시장내 셀러들간의 원만한 관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수한 기획자의 영입과 이들의 지속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조건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앞선 세션들에서는 다양한 농부시장의 사례가 공유되며, 주로 농부들의 참여를 유도한 사례, 농부들과의 관계 유지 등, 농부들의 관점에 중점을 둔 내용이 거론되었다. 하지만 생산품을 제공하고 직접 판매를 할 농부들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모인 공간과 그 공간에서 제공되는 컨텐츠를 묶어낼 기획자 또한 빼 놓을 수 없다. 웹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발자, 디자이너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기획하는 PM(Product Manager)이 필요하고 그 상품을 필요로 하는 소비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마케터가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러한 국내의 과제에 대해, 대만 농부시장을 대표해 참석한 양웬젠 매니저가 대만의 사례를 공유했다. 우선, 공간의 문제는 역시나 크리티컬하다. 농촌에서 농부시장이 성공한 케이스도 물론 있지만, 양웬젠 매니저가 기획,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NCHU Organic Farmers Market의 경우 주거지가 밀집된 지역에서 개최되고 있는 점 또한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이처럼 좋은 시장을 만들겠다는 비전 역시 중요하지만 이것을 성공으로 이끌 조건을 갖춘 장소확보는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기도 하다. 또한, 안정적인 공간 확보 또한 빼놓을 수 없다. NCHU Organic Farmers Market의 경우, 국립대학의 공간을 사용하고 있으며 공간과의 좋은 관계 유지를 위해 서로의 이해관계를 파악하며 꾸준한 노력을 거듭해왔다고 밝혔다.
한편, 좋은 기획자의 영입과 이들의 지속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조건에 대해서는, 양웬젠 매니저 역시 쓴 웃음을 지으며, ‘제가 시장이 없는 날에는 한가해 보일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것이 아닙니다’라는 말로 기획자들의 공감과 웃음을 얻기도 했다. 웹서비스의 기획자와 마찬가지로, 농부시장의 기획자 역시, 여러 분야의 관계자와의 조율, 커뮤니케이션 등 꼭 필요하지만, 달리 보면 잡다하기도 한 업무가 무척 많다. 때문에, 이들의 지속적인 참여를 위한 인프라적 조건도 필요하지만, 기획자 본인이 스스로의 모티베이션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는 본인의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대만의 경우, 10여전 부터 꾸준히 농부시장의 기획자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를 갖고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한국 농부 시장은 이런 자리가 있는지를 물어 좌중을 당황스럽게 하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이번 농부시장의 포럼이 농부시장 기획자들의 모임으로서는 첫번째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자리를 자주 갖고 같은 고민을 나누고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대화해나가는 계기가 되지 않겠느냐는 희망적인 메세지로 세번째 세션의 토론이 끝났다.
우리나라의 농부시장은 조금씩이나마 그 파급력을 키워나가고 있지만, 아직 과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앞선 첫번째 세션에서 알 수 있었듯, 로컬푸드 직매장의 상대적 고성장세 속에서 농부시장의 성장세는 아직 더딘 편이라는 것 또한 적나라한 사실이다. 하지만, 마지막 토론세션에서 ‘얼굴 있는 농부 시장’의 홍천기 님으로부터 너무 빠른 성장을 바라는 조급한 마음 또한 과제가 아니겠냐는 의견이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유럽, 미국 권의 농부시장은 오랜 시간이 걸려 구축된 것이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농부 시장은 이제 갓 발을 뗀 참이고, 과제도 많지만 짧은 시간 사이에 해낸 점도 많다. 이 날의 농부시장을 계기로 앞으로 다양한 농부시장간의 교류가 이루어지며 조금씩 이들이 성장해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나아가 이러한 농부 시장의 확대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소비하는 문화가 대중에게도 조금 더 확산되는 것 또한 기대해 본다.
포틀랜드에서 엿본 도시의 지속가능성 이야기는 이곳
평소에는 비건, 마크로비오틱을 공부하고 함께 나누는 일을 합니다. 가벼운 인상은 인스타그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