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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Mar 02. 2019

아직 쑥은 조금 성급했구나

2월 마지막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세달간의 팝업식당, 쿠킹클래스 운영에 쉼표를 찍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월요일은 남은 재료,반찬들로 차려보는 밥상. 수업때 함께 만든 뿌리채소 된장국, 식당메뉴로 등장했던 생강국물에 재운 시금치와 유부, 미나리 깍두기, 미리 만들어둔 미나리 나물까지. 상수동으로 출장가있던 그릇들도 돌아왔다.

 잠시 식당과 쿠킹클래스는 쉬어가지만 요리를 쉬는 것은 아니다. 계절에 따라 변해가는 재료와 변해가는 환경을 이해하며 새로운 시도를 해 가는 것은 내게 늘 즐거운 일. 그리고 마크로비오틱을 알고 싶어하는 분들을 위해서 내가 해야할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일을, 즐기며 해갈 수 있다는 것은 퇴사 후 얻은 큰 기쁨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만들어 보는 나의 마파 두부. 화학적인 방법으로 추출한 고추기름, 무거운 웍도 사용하지 않고 만들수 있어, 간단한 식사를 위해 종종 해먹는 요리이기도 하다. 그 동안 여름에는 마파가지, 가을에는 마파 연근을 만들었는데, 겨울과 작별 인사를 하며 마파우엉을 만들어 보았다. 겨울과의 작별인사 이기는 하지만 봄기운이 돌기에 두부는 단단한 두부(조금 더 양성)보다는 연두부(조금 더 음성)를 써보았다. 우엉을 다져서 볶아, 흙향은 날리고 달콤한 맛을 살려보았다. 우엉을 다져 넣으니 식감이 마치 볶은 고기 같기도 하다. 채식을 하면서도 고기가 그립지 않기에 나에게는 큰 이점은 아니지만, 고기를 그리워하는 채식인이나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에 된장이 있다면 일본에는 미소가 있다. 그리고 구분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어느 방법으로 구분하든, 미소는 생각보다 그 종류가 다양하며 마크로비오틱에서는 체질, 컨디션에 따라 다른 미소를 사용하거나 두가지 미소를 블렌드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쌀누룩을 사용한 미소, 보리누룩을 사용한 미소가 있으며 이 두가지의 음과 양의 성질 또한 다르다.

 우리나라의 된장역시 그 종류가 다양하다. 오히려 무궁무진하다. 지역은 물론, 집집마다 만드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 그러기에 국내에서 마크로비오틱을 공부하고 알리는 입장으로서 마크로비오틱의 기본 중의 기본 재료인 장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체질, 컨디션에 맞춘 마크로비오틱을 제안하기 위해서는 체질, 컨디션에 따른 다양한 선택지를 알아야하는 것은 필수 조건. 특히나 그것이 기본적인 식재료라면 더더욱.

 이런 마음에서 얼마전 우수를 맞아, 장을 담그고 왔지만, 다른 종류의 장을 직접 담그고 조금 더 자주 돌보아주기 위해 집에서 장을 한번 더 담아 보았다. 이번에 담근 것은 막장. 메주를 가루내어 사용하고 보리등의 곡물을 삭혀 넣는다. 숙성기간은 된장보다는 짧다. 된장에 비해 장을 가르는 수고는 덜수 있지만, 장을 담그는 날은 보리밥을 짓고 끊임없이 메주가루와 다른 재료들을 저으며 섞어주어야 하기에 팔 힘을 써야 하는 날이기도 하다. 메주에 소금과 물을 넣고 만드는 된장과는 만드는 방법이 완전히 다르기에 그 성질도 확연히 다르다. 할머니의 진두지휘 하에 직접 막장을 담아 보며 어떤 날 먹을지, 어떤 계절에 먹을지 활용방법을 다시 정리해 본다.

 늘 무료해하시던 할머니도 날개 돋힌 듯 들떠 계시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시고, 이제는 전화로도 말이 빠른 상담원의 설명을 잘 이해하지 못하시기에, 일 처리에 자신이 없어지신 할머니. 이 날 만큼은 미국에서 온 동생(나의 이모 할머니)과도 만나고, 딸과 남편은 못하고 자신만이 할수 있는 일을 하신다는 자부심에서였을까. 유독 신이 나 있으셨다.

 냉이와의 사랑은 현재진행형이다. 주말 식당영업에서 내었던 냉이 사과 샐러드가 내 걱정과는 달리 호평이었다. 냉이의 쌉쌀한 맛이 사과와 제법 잘 어울렸던 듯하다. 다만 따로 노는 듯했던 냉이 잎과 뿌리를 어우러지게끔 써는 방법을 바꾸고 드레싱도 개선했다. 샐러드이지만 음성으로 치우치지 않아 우리집 밥반찬으로도 성공적인 데뷔를 가졌다.

 봄의 준비를 알리는 채소가 냉이라면, 나에게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채소는 쑥. 하루라도 빨리 쑥에 손을 대고 싶은 마음에 조금 이르지만 쑥을 사왔다. 냉이, 쑥, 미나리. 이렇게 특유의 향을 지는 봄철의 채소들은 겨울철 응축된 신체를 풀어주고 체내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해주는 음의 효능을 지닌다.

 쑥을 밥과 함께 먹는다면 역시 된장국이 편하다. 소량의 기름에 볶은 버섯과 함께 다시마와 표고버섯을 블렌드한 채수에 쑥을 넣고 국을 끓여본다. 하지만 나의 욕심이 과했다. 향이 매력이어야 할 쑥인데 아직 향이 짙지 않다. 역시 그 계절에 맞는 채소가 있듯 그 채소가 가장 돋보이는 시기는 따로 있다.

 하지만 향이 조금 덜하면 어떤가. 나에게 주어진 쑥을 마음껏 즐겨보려 한다. 남은 쑥은 버섯과 함께 현미 리조또가 되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서양풍의 음식을 먹었다. 동물성 재료 하나 없이 어느집에나 있을 법한 재료들로 차려보는 리조또. 내가 만들었지만 참 맛있다.

팝업식당을 하면서 늘 수요일부터 주말까지는 긴장상태였다. 매주 수요일은 김치를 담갔으며 목요일 금요일은 영업준비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다. 오랜만에 김치를 담그지 않고 좋아하는 바에 가서 와인을 마시며 글쟁이의 시간을 가졌다. 오랜만에 주어진 휴식이 달콤하다. 이번주말도 도쿄에 수업을 들으러 간다. 도쿄에 가기전 나에게 주어진 짧은 휴식시간을 술, 책과 함께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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