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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Mar 12. 2019

유채꽃대, 미즈나, 돼지감자와 함께한 경칩의 마르쉐

경칩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수업을 들으러 도쿄에 다녀왔더니, 주문해둔 소금이 와있다. 토판염을 장만해보았다. 

 소금 하나만 두고도 그 기준에 따라 분류방법이 여러가지가 있다. 이 자리에서 소금의 분류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삼천포로 빠질 것이 분명하니 천일염만을 거론하고, 천일염을 생산하는 결정지의 바닥을 기준으로 천일염을 분류해 토판염, 장판염, 옹기염에 대해서만 이야기 해보겠다. 


 요리를 공부하고 자연식과도 가까운 마크로비오틱을 공부하고 있지만, 자연에 섭리에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음식, 재료라면 최고급만을 추구하지는 않는 편인 나. 오히려, 많은 사람과 마크로비오틱을 나누기 위해서는, 백두산 정상에서 어렵게 공수한 최고의 재료를 다루기 보다는,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도 구입도 어렵지 않은 재료에 대해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소금도 믿을만 하면서도 구입도 편한 한살림 소금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토판염은 흥미가 갔다. 비닐 장판도 없이 흙바닥을 평평하게 다진 뒤 이 위에서 만든 소금이니 장판염보다 자연스러운 전통제법에 가깝다. 또한, 흙 위에서 만든 만큼 다양한 성분과 만나면서 오묘한 짠 맛이 있다고 하니 요리를 하는 입장에서도 흥미가 간다 (‘다양한 성분과 만난다’는 점에 있어서 위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영역이기도 하다.). 장판염보다는 월등히 가격이 비싸기에 주문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이 덜덜 떨리기는 했지만 소유보다는 경험에 가치를 두는 편이기에 새로운 소금의 세상에 접하기 위해 큰맘 먹고 결제버튼을 눌렀다.

 새로 소금을 장만했으니 소금맛을 제대로 보는 요리를 하는 것이 인지상정. 콩나물국을 끓이기로 했다. 재료로 사용한 콩나물, 미나리는 물론 채수로 사용한 다시마도 월등히 품질이 좋은 것이 아니라, 한살림에서 언제든 구매할 수 있는 평범한 것들로 해본다. 그리고 내 혈액내 염분 농도와 비슷한 염도로 채수에 토판염을 넣고 간을 맞춰 본다. 쓴 맛이 덜하고 짠 맛은 있지만 정제염의 짠 맛과는 확연히 다른 맛. 국그릇채 국물을 홀홀 마셨다. 이래서 토판염 토판염 하는구나. 용도에 따라 토판염과 장판염을 나눠 사용한다면, 토판염은 자주 쓰는 소금도 아니기에 헤프게 사용할 것 같지도 않다. 수업에서 사용하고 소개하기에도 부담스럽지는 않다. 이렇게 소유보다 경험에 가치를 두니 몇만원 안되는 금액에 새로운 세계와 만날 수 있었다.

 미세먼지 때문에 ‘날씨가 좋다’고 말하기에는 위화감이 있지만, 몇주 전 보다 기온은 확실히 올라갔다. 반찬에도 미나리, 쑥과 같은 봄채소들이 보인다. 경칩 쯤 되면 봄기운이 완연하고, 반가운 마음에 봄나물들로 밥상을 가득 메우기도 하지만, 봄나물들은 아직 쌀쌀한 계절에 재배하는 주제에 경우에 따라 음의 성질이 강한 편. 날로 먹는 것은 삼가고 가벼운 조리를 하더라도 장류 등으로 양의 기운을 더해주는 것이 음양의 밸런스가 좋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엄마가 쑥으로는 된장국을 끓여 놓았다. 미나리를 가볍게 데쳐 양의 성질이 강한 콩미소에 버무렸다. 채수를 내고 남은 다시마와 표고버섯으로 만드는 다시마 표고조림은 도쿄에서 카쿠모토 선생님께 간단한 레시피를 전수 받았다. 순식간에 세상 보들보들하게 완성된다. 도쿄에서 돌아오고 따로 장을 보지 않고도 냉장고 속 재료들로 이렇게 또 한끼를 완성했다.


 어언 세달만의 마르쉐. 세달동안 팝업식당, 쿠킹클래스로 주말을 채워보내며 마르쉐 방문도 뜸했다. 춥기도 했다. 오랜만에 찾은 마르쉐 역시 채소의 빛이 다르다. 11월 즈음 방문한 마르쉐는 순무가 많이 보였지만, 이번에는 냉이, 봄동, 쑥 등이 보인다. 

'준혁이네'에서 만난 펜넬과 파스닙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채소들을 많이 재배하신다는 ‘준혁이네’ 앞에 이른 시간부터 줄을 섰다. 펜넬, 파스닙 등 일반 마트에서는 보기 어려운 채소에 욕심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미식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쉐프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집에서도 쉽게 마크로비오틱을 접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사람이기에 사진만 찍고 욕심은 눌렀다. 

이것이 유채 꽃대. 일본어로는 '나노하나'.

 ‘준혁이네’의 유채꽃대를 사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마르쉐를 방문했다. 유채꽃대는 일본에서 봄철 많이 먹는 식재료. 4월에 일본에서 나의 요리를 선보일 기회가 있다. 그 곳에서 일본의 봄철 채소를 사용할 예정인데, 실습을 위해 이 유채 꽃대를 꼭 사용하고 싶었다. 가까운 나라이지만 일본과 한국은 특히나 봄철에 즐겨 먹는 채소가 다르다. 그 대표격이 이 유채 꽃대. 우리나라에서도 ‘유채나물’을 먹는다. 하지만 이 유채나물과 일본의 유채꽃대는 품종자체가 다르기에 우리나라의 유채나물로는 대체가 되지 않는다. 유채꽃대는 데쳐서 미소와 식초소스에 버무려 먹기도 하고 올리브오일에 볶아 봄철 파스타로도 즐겨 먹는다. 유채 꽃대 역시 음이 강한 재료이기도 하니 미소를 사용하거나 가볍게 볶는 등의 조리가 음양 밸런스를 잡는데도 좋다.

 준혁이네에서 ‘미즈나’도 발견했다. 미즈나는 계절을 불문하고 일본 어느 마트에서도 쉽게 볼수 있는 채소 중 한가지. 샐러드 채소로도 사용하며, 줄기가 가늘지만, 데쳐도 아삭함이 살아있어 전골요리에 넣어 먹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무척 저렴하고 평범한 재료인데 국내에서는 수요자체가 없어 지금까지 재배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겉절이에도 어울릴 법하고 한국의 식문화에 맞춰 다양한 요리에 사용하기 쉬울테니, 잘만 소개된다면 수요가 늘어날 법도 하다. 하지만, 강한 향이나 맛이 있지 않고 오히려 밍숭맹숭한 편인데다가 생김새도 평범해, 다른 외래채소에 비해 주목도가 낮다는 것이 국내 인지도가 낮은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요즘의 소비자는 음식, 채소까지도 새롭고 예쁜 것을 원한다. 음식, 채소까지도. 마르쉐에서도 ‘이 채소 예쁘다’, ‘그 예쁜 당근은 언제 나오느냐’ 등의 발언을 자주 들었다.

 이런 소비자들 사이에서 돼지감자는 ‘새롭고 예쁜 것’은 아니었나 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마르쉐를 다시 방문했더니, 채소는 순식간에 다 팔리고 유난히 돼지감자만 많이 남아있다. 먹어본 적도 없고, 사도 어떻게 해먹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대화를 훔쳐 들었다. 3월 돼지감자의 맛을 알기에, 이런 걱정없이 냉큼 돼지감자를 집어왔다.

 돼지감자. ‘감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추운 계절에 수확 한다. 그리고 수확시기는 1년에 두번 정도. 추운 겨울이 오기전과 추운 겨울을 지난 3월 쯤. 땅이 얼기전 한번 수확을 하고, 미처 캐지 못했던 것들은 땅속에 묻어둔 채로 겨울을 난다. 그리고 얼었던 땅이 녹은 3월 쯤 다시 수확한다. 이 정도로 돼지감자는 추위에 강하다. 3월에 재배한 돼지감자는 11월 돼지감자에 비해 수분이 적고 단단하다. 11월과 3월 각각의 매력이 있으니 두 계절의 돼지감자를 둘다 경험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돼지감자스프에 100%통밀빵, 곡물커피를 곁들였다.

 생으로도 먹는 돼지감자이지만, 돼지감자 특유의 달콤한 맛을 살리기에는 스프가 제격. 나의 팝업식당에서도 몇번 돼지감자 포타주를 메뉴도 내었다. 돼지감자를 처음 먹어본 손님들에게도 인기있던 메뉴. 원래 인기가 좋았지만, 재료의 성질을 정리해 레시피를 개량해보았다. 돼지감자를 잘못 익혔을 때 나는 특유의 흙향을 덜어내고 돼지감자 본연의 달콤한 향을 살려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돼지감자가 자라는 환경과 조리법을 토대로 그 음양의 성질을 이해하며 레시피를 개량해 보니 들어가는 재료도 훨씬 적고 조리도 간단해졌다. 이 레시피라면 올 가을 또는 내년 봄 클래스에서 선보여도 좋을 것 같다.


 이렇게 마크로비오틱을 공부하며 식당도 하고 클래스도 하다보면 채소에 대해 알만큼 알겠거니 하지만, 채소의 세계는 늘 새롭다. 절기에 따라, 지역에 따라 같은 채소인줄 알았던 녀석이 새로운 얼굴을 보인다. 이 채소에 이런 수염같은 뿌리가 있었구나. 이 지역의 마는 마치 우엉처럼 가느다랗네. 관행농법냉이와 노지재배 냉이는 생김새가 이렇게나 다르구나. 채소의 세계가 새롭다보니 요리도 새롭고 즐겁다. 또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이 재료에는 이 조리법이 좋겠구나. 이 채소로 만든 반찬이 있으니 그 옆에는 다른 채소와 조미료를 사용한 이 반찬을 놓아야지.


 채소로 밥상을 차려 낸다는 것은 드라마, 또는 연극을 만들어내는 기분이다.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를 표현하기 위해 스토리와 배역을 정하고, 그 배역에 맞는 배우를 정하고 이들이 최상의 컨디션에서 연기를 할 조건을 갖추어주는 것처럼. 식사를 하는 사람의 컨디션을 생각해 식단의 구성을 정하고, 그 식단에 맞는 조리법과 재료를 고른다. 그리고 그 재료가 최고의 연기를 펼칠수 있도록 그 계절, 채소의 컨디션에 맞춰 밑작업을 한다. 내가 만들었지만 나는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식탁위에 오른 음식. 하지만 이렇게 차린 식사를 마치고 만족스러운 얼굴을 볼 수있다면 나는 백스테이지에 있어도 행복할 수 있다. 스크린에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일은 없지만 묵묵히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기분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조각글과 팝업식당,클래스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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