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연 Mar 15. 2019

레몬껍질을 사용한다는 것

3월 셋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이제 겨울이라 부르기에는 어색하다. 계절이 바뀌었으니 식탁위 필수품들도 조금은 바꿔주어야할 때.

 겨우내 줄곧 만들던 깍두기에서 벗어나 양배추로 김치를 만든다. 미나리가 어울릴듯 하니 미나리도 넣어 물김치로 해본다. 설탕을 대신할 재료로는 사과를 넣었다. 수확한지 한참이 지나 요즘 사과는 디저트로 먹기에는 심심하지만, 요리에 감미료 대신 사용하면 아까운 사과를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다. 

 마르쉐에서 사온 돼지감자는 스프로도 해먹고, 로스트로도 해먹었다. 날이 따뜻해지니 베란다 텃밭의 허브들도 활기차다. 베란다에서 로즈마리를 뚝뚝 끊어 돼지감자 사이에 듬성듬성 넣어 구으니 로즈마리와 돼지감자 향이 온 집안에 가득하다. 베란다 텃밭에서 이탈리안 파슬리도 뜯어와 송송 썰어 올려주었다. 채소와 소금, 올리브오일만으로 뚝딱 만들어낸 메인요리. 때마침 놀러온 할머니들도 새로운 요리에 즐거워 하셨다.

 날이 따뜻해져오니 순두부가 그립다. 온몸이 따뜻해질 듯한 순두부이지만, 채수와 다른 간 없이 둥실, 순두부만 끓여 만들기에 몸에 온기를 더해주는 메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때문에, 같은 두부라도 계절마다 다른 선택, 다른 조리를 해주는 것이 마크로비오틱 섭생. 안쪽까지 따뜻해지게 약불에 은근하게 끓여내, 짭짤한 달래장을 얹어 한끼 해결했다.

 따뜻해졌다 싶더니 칼바람이 불며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꽃샘추위가 찾아오니 양의 기운을 더해주고 싶다. 온 몸에 양의 기운을 더해줄 뿌리채소 된장 조림을 만들었다. 스프로도, 로스트로도 활약해준 돼지감자도 듬뿍 넣어주고. 식으면 더 맛있다. 워낙에 양의 성질이 강한 터라 이 재료, 조리법, 조미료의 조합은 내년 1월에나 다시 만날 것 같다.

 마르쉐에서 장만한 유채꽃대는 비밀리에 진행중인 나의 4월 도쿄 프로젝트를 위해 야금야금 사용하고 한주먹정도로 애매하게 남았다. 애매하게 남았다는 빌미로 일본에 살던 시절 봄철 별미로 즐겨먹던 유채파스타를 만들었다. 간장과 함께 가볍게 볶은 톳을 곁들이니, 바다 향이 더해져 유채향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좋아할 법하다.  면은 카펠리니 였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요즘들어 카펠리니 잘다루는 집의 파스타가 조금 그립다. 카펠리니가 아니라 어쩌면 소면이 그리운 것 같기도 하다. 

 집에 상큼한 일거리들이 쏟아졌다. 레몬과 금귤 한아름. 깨끗하게 닦고, 손질해, 레몬은 레몬소금, 레몬고추로. 금귤은 금귤된장, 금귤고추로 다시 태어났다. 금귤고추, 레몬고추에는 껍질만 사용하기에, 남은 과육으로는 베이킹용으로 사용할 시럽을 만들어두었다. 눈에 레몬즙, 금귤즙이 튈새라, 안경까지 껴가며 유리병 몇개를 가득 채웠더니 오후가 훌쩍 지나있다. 그래도 가득한 찬장을 바라보니 뿌듯하다.

 내가 어릴적. 90년대에는 레몬은 백화점 수입과일 코너에나 있던 과일이었다. 그런 것이 2000년대부터는 접근성이야 좋아졌지만 왁스며 농약이며, 신경쓰이는 것이 많아 껍질을 넣는 요리에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랬던 레몬을 이제는 무농약으로 국산에서 재배하는 분들이 있다. 인스타그램, 블로그를 들춰보면 이러한 무농약 레몬으로 나처럼 각종 저장식품을 만들거나 베이킹을 하는 분들도 부쩍 늘었다.

 자유롭게 농수산물을 수입수출할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마크로비오틱을 실천하며, 안전한 먹거리를 찾다보니 수입농수산물은 농약, 약품, GMO 등의 이유로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마크로비오틱으로도 다양한 재료와 요리를 선보이고 싶다는 욕심은 가시지 않는다. 그래서도, 마크로비오틱을 공부하며 식재료에 감사하게 되었다. 그동안 구하기 힘들던 식재료를, 안전하게, 그리고 좋은 품질로 우리 식탁에 올려놓기 위해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고 있다. 

 레몬고추에 넣을 레몬껍질을 벗겨내며, 농업과 먹거리의 안전성, 식문화의 다양성에 대해 생각했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조각글과 팝업식당,클래스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매거진의 이전글 유채꽃대, 미즈나, 돼지감자와 함께한 경칩의 마르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