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증명한다는 것
퇴사 후,
한동안은 오전 약 이후엔,
정신이 흐릿해지고 졸음이 쏟아졌습니다.
몸은 늘어지고
하루는 흘러가는 듯, 멈춘 듯
어딘가에 걸려 있었습니다.
오후가 되어 조금씩 정신이 들면
이런 내가 너무나 작아집니다.
그래도 손끝으로
무너진 일상을 조금이라도 세워보려 합니다.
난장판이던 옷장과 화장대, 집안 구석구석들
그 사이를 오가며 하루에 5분이라도 손끝으로 쓸어봅니다.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한라산을 올랐습니다.
두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얼굴을 보인
백록담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하루 여덟 시간 넘는 산행응
들숨과 날숨, 통증과 피로로 가득 차서
다른 어떤 감정도 들어올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나에 대한 증명도,
세상의 시선도,
그리고 자책도
잠시 잊을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나의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만,
아주 작은 희망의 빛이
조용히 살아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움직이며,
고통을 느끼며,
살아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아차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