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로 그리는 디지털 캘리그라피
아이패드를 샀다. 공부를 하는 요즘, 노트 필기도 할 겸 오답노트도 쓸 겸 겸사겸사 샀는데, 공부보다 캘리그라피를 하느라 시간을 더 보냈다. 펜으로 슥슥 쓰니깐 너무나 재밌다. 신기하고. 그리고 좋은 문구를 쓰려고 하다 보니 오랜만에 또 시를 찾아서 읽으니 더 좋다.
며칠 전에 아는 동생에게 시집을 한 권 선물할까 하고 서점에 갔다. 결국 시집을 선물하진 않았지만, 요즘 나온 시집을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다. 풀꽃이라는 시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훑어보던 중, ‘좋다’라는 시를 알게 되었다.
좋다
좋아요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
이 짧은 시를 보니, 생각나는 내 친구. 기분이 좋으면 다 좋다는 그 친구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 친구를 위해 캘리그라피를 써서 선물로 줬다. 그랬더니 생각보다 너무 좋아해줘서 좋았다. 진심 시처럼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았)다’ 좋고, 예쁘다는 게 빈말은 아니었는지, 재빠르게 프사 배경사진으로 바꿔놓았다. 더 열심히 연습해서, 더 잘하고 싶다. 그래서 또 좋은 구절을 예쁘게 담아내고 싶다.
사랑은 살려달라고 하는 일 아니겠나
이 구절은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발견한 구절. 괜시리 반짝거리는 구절이다. 이 구절이 포함된 시를 찾아봤다.
사려니 숲길을 가는 - 황학주
사려니 숲길을 가는
그 다음 다칠까 되부르지 못한 일이
사실은 단둘뿐인 먼 길을 간 것인지
야윈 눈청에 빗금을 다는 저녁은
눈이 어는 길만 밟듯이 오고
사랑은 무엇과도 달아야 한다
어떤 생각은 노루 혓바닥 같은 야생을 핥고
혀를 깨무는 소리를 돌아나오는 거기도 하지만
사랑은 살려달라고 하는 일 아니겠나
이젠 전화도 가지 않는 옛날에게
사려니 숲길을 걷게 하는 건 아니지
막 숲을 벗어났다 돌아오는 메아리가
때죽나무 하나를 두르고
성냥불을 쬐며 쿨럭이는 뽀얀 영혼을 덧입는다
죽을 거 같은 채로 시작된
그런 그 사랑 지나갔나 싶은
길은 끝까지 촛농이 떨어진 얼굴색이라 여기고 마네
뽀삭뽀삭 눈에 밟히는
그 사람 오지 못한 길에서
그 한 사람, 마주치는 일
눈밭 한쪽에 볕이 들어 놀라고만 서 있는
쓸모없이 사랑은 신비롭다 우산도 없는 나
사랑은 살려달라고 하는 일이라는 해석이 참 새롭다. 근데 막상 생각해보니 또 그런 것 같다. 내가 그분을 사랑하는 것도 살려달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죽겠으니 살려달라고 하는 일이 아닐까.
시와 함께 하는 요즘,
친구와 함께 하는 요즘,
아이패드와 함께 하는 요즘.
좋다. 좋아.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