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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드저드 Mar 15. 2020

prologue. 나의 하루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본다. 그리고 잠옷을 벗는다. 속옷만 입은 채로 전신 거울 앞에 선다. 가끔은 속옷도 벗는다. 오늘은 완전히 알몸으로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앞에 서 있는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펴본다. 오늘은 특히 더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알몸으로 거울 앞에 서 있는 나를 보는 것은 낯설다. 그러나 더 낯선 것은 어제보다 살 찐 나를 보는 것이다. 몸의 모든 부위가 어제보다 더 뚱뚱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서는 줄자를 꺼내서 둘레를 잰다. 팔뚝, 허리, 골반,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그리고 발목. 그리고 그 숫자를 공책에 적는다. 다행이다. 숫자는 똑같다. 수치로서의 나는 어제의 나와 같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단계가 남아 있다. 이 결과에 따라 오늘 나의 기분과 오늘 내가 무엇을 먹고 얼마나 움직여야 하는지 그리고 오늘의 나의 가치가 정해진다. 사형수가 교수형 대에 오르듯 체중계 위에 올랐다. 검은 자루로 얼굴이 가려지듯 눈을 질끈 감았다. ‘49kg’ 망했다. 어제보다 0.5키로가 늘었다. 밧줄은 내 목에 감기고 나를 지탱하던 바닥은 사라졌다. ‘오늘 하루는 숨 막히는 하루가 되겠구나.’

 

 일이 끝난 저녁 7시 지친 몸을 재촉해 조깅을 하러 나왔다. 오늘은 많이 움직여야 한다. 운동장을 뛰면서 어제 먹은 음식과 오늘 내가 지금까지 먹은 음식을 생각한다. 전자는 너무 많아서 기억 할 수가 없다. 후자는 간단하다. 아메리카노 1잔. 한 시간 동안 운동장을 뛰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8시 간단한 샐러드를 1접시 먹는다. 저녁 8시 30분, 지갑을 챙기고 집을 나와 편의점으로 뛰어 들어간다. 편의점을 나오는 나의 양 손에는 과자와 빵 따위로 가득찬 봉지가 들려있다. 밤 9시 두 개의 봉지에 꽉꽉 차 있던 과자와 빵의 2/3를 먹었다. 음식의 맛은 더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일련의 행위를 반복할 뿐이다. 밤 9시 30분 사온 음식을 다 먹고 칫솔을 들고 변기 앞에 쭈그려 앉아 먹었던 음식을 모두 토해낸다. 지금까지 먹은 양을 다 토하려면 1시간은 걸릴 것이다. 밤11시 드디어 오늘 하루가 끝났다. 오늘 내가 먹었던 음식들을 생각해본다. 토한 음식은 먹은 것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먹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식도와 위장이 아프다. 구토를 자주 한다면 위장 기관과 소화 능력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내일 아침에 마주하게 될 나이다. 나는 내일 또 알몸으로 거울 앞에 설 것이고 부위 별 둘레를 잴 것이며 교수형에 처해질 것이다.


 나는 폭식증 식이장애를 가지고 있다. 반복적인 폭식과 이를 제거하려는 행동(구토나 이뇨제 및 하제 투여 등) 및 체중증가에 대한 공포가 폭식증 식이장애의 특징이다. 나는 아주 짧은 시간에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는다. 먹는 것에 대한 조절감을 완전히 상실하여 배가 불러도 스스로 먹는 행위를 멈출 수 없다. 음식을 모두 먹어치워서 눈 앞에 남아 있는 음식이 없는 경우에 가까스로 행위를 멈춘다. 폭식하는 원인은 다양한데 불쾌감, 대인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극단적인 식단 제한 다이어트에서 유발 되는 배고픔 등 충족되지 못한 욕구에서 발생한다.

  

 이 글은 나의 먹고 토하는 일상에 관한 글이다. 먹고 토하는 행위에 대해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혐오감마저 느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겪고있는 모든 것에 대하여 거침 없이 써 나갈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나는 나의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찾아내고 그것과 대면할 것이다. 내일도 나는 거울 앞에서 알몸으로 서 있을 것이다. 지난 밤에 먹고 토한 음식을 생각하면서 두려움을 가지고 체중계에 오를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제와 단 한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는 나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나아질 것이다. 낫게 될거라는 강한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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