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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드저드 Mar 16. 2020

1. 식이장애를 깨닫게 된 날.


 그 날의 상황과 느낌이 생생하다. 3일 밤낮을 먹고 토하고 다시 먹고 토하다가 이대로라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울면서 정신과를 찾아갔다. 나는 3교대 근무를 하는 간호사다. 그 날은 유난히 힘든 날이었다. 당일 입원한 환자 중 한 명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환자의 상태가 점점 나빠졌기 때문에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면서 응급 처치를 시행했다. 구내 식당이 문을 닫는 시간에는 직원들을 위해 식당에서 만들어둔 음식으로 도시락을 배달해 준다. 일 하는 도중에 배달된 도시락을 보자 심한 허기를 느꼈다. 환자의 상태가 조금은 안정되어 잠깐 짬을 내서 허겁지겁 밥을 먹던 와중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다 먹고 나면 다시 일을 해야 하는 구나.’ 그러자 나는 먹는 행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 도시락을 다 먹고 동료가 남긴 도시락마저 다 먹어치웠다. 그리고 나서도 멈출 수 없어 탕비실에 들어가 일주일 치의 간식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먹을 만한 음식이 없었지만 먹는 것을 멈추는 순간 다시 일하러 가야 했다. 음식을 찾기 위해 탕비실을 샅샅히 뒤졌다. 냉장고에 누군가 넣어둔 즉석밥이 있었다. 차갑고 딱딱한 맨 밥을 맨 손으로 입 안에 우겨 넣으면서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음식을 내 위장에 쏟아붓고는 더 이상 남은 음식이 없었기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많은 음식을 먹었지만 얼마나 빨리 먹었는지 시간은 15분 밖에 지나지 않았다. 15분의 부재를 채우기 위해서 다시 환자 상태를 살피며 바쁘게 움직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뒤이어 끔찍한 포만감이 느껴졌다. 과도한 음식물로 부풀어진 위장으로 숨 쉬는 것마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쉴 수가 없었다.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처치하고 또 확인하고 처치하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다. 다시 환자의 상태가 안정된 것을 확인하고 화장실로 달려가서 변기에 머리를 처박고 모든 것을 토해버렸다. 위장의 음식물이 역류하는 것을 참으며 화장실로 달려가기 직전에도 동료에게 잠시만 나 대신에 환자의 상태를 대신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토해낸 것은 음식물이였을까? 압박감이였을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여전히 굶주린 그대로였다. 먹은 것을 모두 토해냈기에 위장에 남은 음식물이 아무것도 없었다. 집 앞 빵집으로 달려가 눈에 보이는 모든 빵을 사왔다. 씹을 새도 없이 음식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내가 채워넣고 싶었던 것은 음식이였을까? 휴식이였을까? 다시 토하고 먹고 토하기를 반복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잠을 잘 수도 쉴 수도 없었다. 먹고 토하다 보면 출근할 시간이 됐고 일 하는 중간에도 먹고 토하다 보면 퇴근할 시간이 됐다. 3일간 6시간을 잤고 8번을 토했다. 도저히 내 의지로 멈출 수가 없었다. 모든 의지를 총 동원하여 내가 했던 것은 울면서 정신과로 도움을 청하려 달려가는 것이었다.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가끔 강렬한 그날의 감정을 생각한다. 지금도 물론 먹고 토하는 것을 멈출 수 없지만 그 날의 감정은 마치 쓰나미 같았다. 자아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휩쓸려 갔고 그 날 이후 나는 천천히 복구 중이다. 멈추지 않는 감정의 쓰나미 속에서 무너진 것들을 몇 번이고 다시 세우며 나는 느리지만 천천히 자아를 회복하고 있다. 자아를 회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결심은 퇴사였다. 대학병원에서 4년차 간호사로서 일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참아왔다. 식이 장애가 생기기 전에도 “간호사로 일하는 것은 어때?”라는 친구의 질문에 나는 “나를 죽여가면서 일해.”라는 대답을 한 적이 있다. 누군가를 도우면서 돈을 번다는 것은 참 가치 있는 일이며 일 하는 도중 많은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남을 도우면서 정작 스스로는 돌보지 못했다. 먹고 살기 위해 했던 일이 먹고 사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내가 이렇게나 힘들게 일했다‘라는 식의 예시를 나열하고 싶지는 않다. 이 글은 간호사로서 일하는 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잘 먹고 살기 위해서 회복하는 나에 대한 글이기 때문이다. 전 편의 글과 이번의 글을 통해 ‘먹고 살기 위해 퇴사합니다.’라는 나의 글의 제목이 당신에게 이해 되기를 바라며 내가 식이장애를 깨닫게 된 날의 이야기를 마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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