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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드저드 Mar 18. 2020

2.먹고 살기 위해 먹고 사는 것을 포기 할수 있을까?

퇴사할 것인가? 버틸 것인가?


 식이 장애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처음 결정한 것이자 제일 마지막으로 망설였던 것은 퇴사이다. 주된 스트레스 원인이자 나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경제적 수익원. 이번 챕터의 제목이자 나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던 질문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 먹고 사는 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 이번 글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나의 고민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 싶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퇴사에 대한 의사를 밝히고 현재 그 과정중에 있다. 그러나 퇴사 이후의 삶에 대한 생각으로 현재도 끊임없이 고민 중이다. 한국 교육 과정의 충실한 수혜자로 인서울 4년제 대학을 휴학 없이 졸업하고 졸업 직후 공백기 없이 취직하여 4년째 일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인정받는 평범한 회사원인 나. 이런 내가 퇴사 이후의 삶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 취업이 잘 된다는 부모님의 권유로 간호학과를 선택하고 전공을 백프로 살려 간호사로 일해왔던 나의 20대에는 치열하게 미래에 대해 고민 할 수 있는 시간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끝내주는 인내심으로 참고 참고 참으면서 지옥 같던 신규 간호사 생활도 버텨냈다. 속된 말로 어느 정도 짬도 찼고 힘든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날에는 수월하게 일도 잘해내던 나에게 어느날 갑자기 식이 장애가 찾아왔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나 한 번 해보시지?’ 하면서 말이다.


 변기를 붙잡고 먹은 것을 게워내는 폭풍 같은 한 밤 중에는 ‘이놈의 회사, 내일 당장 그만두겠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모든 것이 고요해진 새벽에는 ‘조금 더 버텨 볼 수 있지 않을까?’ 결정을 번복했다. 숨만 쉬어도 나가는 월세 및 생활비 같은 고정 지출 외에도 식이 장애로 병원을 방문하고 상담을 받는 것에 많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결정은 더더욱 어려웠다. 끊임없이 돌아오는 바위를 굴려야 하는 시시포스처럼 나 역시도 같은 고민으로 매일 밤 끊임없이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폭식증과 퇴사에 대한 고민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어느 날, 일하던 도중에 “저 일 그만두겠습니다.”라는 말이 생각지도 않게 저절로 나왔다. 퇴사 이후의 삶에 대해 어느 하나 답을 내리지 못했고 그 말을 하려고 계획하지도 않았던 어느날, 그 말이 갑작스럽게 튀어나았다. 나를 포함하여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예상치 못한 말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가 퇴사를 말하기에 가장 적합한 때 였던 것같다. 인생에서 모든 것이 준비된 때라는 것은 없다. 갓 난 아기가 장래 희망에서부터 노후계획까지 준비한 뒤 태어나지 않는 것처럼 올 해 벚꽃 축제 기간은 3월 셋째주부터 4월 둘째주까지 하기로 하자하고 벚꽃이 피지 않는 것처럼 양수가 터지고 꽃망울이 터지는 바로 그 때가 누군가의 생일이자 봄의 시작이 되기에 가장 적합한 때인 것이다. 나의 퇴사, 나의 두 번째 생일, 내 인생의 봄날의 시작.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준비 해 놓은 것 하나 없이 갑자기 일을 그만 두겠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뭐 이리 거창하게 글로 포장했나 생각할 수도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퇴사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은 현재도 진행중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누르면서도 머리로는 고민 중이다. 퇴사를 앞두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 “일 그만두고 뭐할거야?“라고 물어보면 “잘 먹으려구요”라고 대답한다. 상대방은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나는 그 말 외에 다른 말을 덧붙일 마음이 없다. 먹고 살기 위해서 먹고 사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먹고 살지 못하면 먹고 사는 문제가 의미가 있는가? 고민하느라 지친 오늘의 나는 당신의 현명한 대답을 기대하며 당신에게 질문을 넘기고 오늘의 글을 마치고 싶다. 그대에게 먹는 것이란 무엇인가? 그대는 먹고 살기 위해서 먹고 사는 것을 포기 할 수 있는가? 그대가 먹고 살지 못한다면 먹고 사는 문제가 의미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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