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했던 사람들과 그 의미
간절한 사람은 언제나 이긴다. 다른 표현으로, 간절한 사람은 질 수가 없다. 최소한 내가 봐왔던 1등들은 그랬었다. 사실, 간절함은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래서, 0 to 1을 일구어 낸 사람들의 간절함이 조명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과연 10 to 100을 만들어 낸 사람들은 간절함이 없을까? 단언컨대, 절대 아니라고 본다. 예컨대, 이건희같은 사람.
이건희는 소위 말해, 금수저 중의 금수저다(당연하게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기업 총수의 아들로 태어났다면, 그 누구보다 편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현상을 유지만 해도, 모자람이 없이 살았을 거다. 그런데, 삼성의 오너로 취임한 이건희는 그 누구보다 간절했다. 그 누구보다 많이 가진 사람이 - 그룹 내 그 누구보다 간절한 것이다 (당연히, 이건희는 삼성의 임직원보다 가진게 많았을 것이다).
반도체, 반도체, 반도체.
무수히 쏟아지는 반대에도, 밀어붙혔다. 그리고 지금의 삼성이 됐다. 반도체는 지금까지도 없어서는 안 될 우리나라의 핵심 먹거리다. 만약, 삼성이 반도체 산업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감히, 삼성은 그저 오래된 기업 정도로 치부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희 이야기를 꺼낸 건, 특정 누군가를 찬양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그의 간절함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한다. 그럼 간절함은 뭘까? ‘간절해야 한다’ , ‘누구는 간절함이 없어’ 따위의 말들은 수도 없이 들었지만. 간절함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하기는 어렵다.
나는 간절함을 얼마나 뚜렸한 목표가 있는가로 정의한다. 그 누구도 믿지 않지만, 나는 뚜렷하게 믿고 있는 목표 그리고 비전. 그 것을 얼마나 갈망하고, 원하는가가 ‘간절함’이라고 생각한다.
간절함은 그 누구도 믿지 않지만, 나는 뚜렷하게 믿고 있는 목표 그리고 비전. 그리고 그 것을 얼마나 갈망하고, 원하는가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존한 빅터 프랑클 박사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많은 사람들의 공통점으로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현재의 의미를 찾는 것으로 꼽았다. 그들이 가졌던 자신의 미래에 대한 비전은 엄청나게 거창할 것도 없이, 돌아가서 딸을 봐야해 등 이었다.
간절함은 현재를 이길 힘을준다.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고로, 간절함은 언제나 이긴다. 절대로 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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