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e May 20. 2023

3 아레카야자는 맞고 보스턴고사리는 아니다#2

오늘도 자라는 중입니다


 뭐든 적당히 하는 게 좋다. 하루종일 신경을 쓰며 나를 소모하다 보면 결국 포기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취미이건 직업이건 무엇이든. 그래서 어떤 일을 오랫동안 지속하고 싶다면 너무 큰 힘을 들이지 않게, 조금씩 천천히 할 수 있어야 했다.

 

아레카야자는 마침 그런 나에게 잘 맞았던 것 같다.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그렇듯 화분을 그냥 거기에 두고 아주 가끔 들여다보았는데, 이 초록친구는 건조한 뿌리를 좋아해서 내가 물 주는 것을 잊어도 크게 개의치 않았고 목이 너무 마를 때면 커다란 잎이 눈에 띄게 쳐져서 아직 식물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나도 눈치챌 수 있었다.

 자라는 환경도 운 좋게 우리 집과 잘 맞아서 그 성장이 눈에 띄게 빨랐는데, 햇빛이 쨍한 거실 창가에서 빠르게 잎들을 늘려 나갔다. 제법 풍성해진 아레카야자는 집안에 동남아 어딘가의 공기를 한 스푼 가져다주었다. 이게 식물이 만들어주는 분위기구나, 새삼 깨달았다. 멍하니 반짝이는 아침 해 아래 싱그러운 야자 잎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건 나 혼자 느끼는 게 아니었다. 우주는 아레카야자를 정말 좋아한다. 종종 테이블야자나 아레카야자 잎을 맛있게 먹어치운 고양이 이야기가 들리는 걸 보면 향이나 맛이 선호도가 높은 식물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주는 아레카야자를 보고는 난생처음 보는 표정으로 입을 벌려 냄새를 저장했다. 여태껏 같이 사는 동안 유일하게 플레멘 반응을 보여주던 순간이었다.

 여전히 우주는 아레카야자에 물을 주는 날이면 욕실로 따라 들어와서 한참을 향을 맡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건 나와 우주 둘 모두에게 힐링이 되곤 한다. (인간이 식물에 물을 주는 광경을 구경하는 고양이를 구경하는 인간!)

 보스턴고사리가 그 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홀로 남은 야자가 외로워 보이는 건 정말로 내 기분 탓이었을 테지만, 친구를 들여보기로 한다. 성장 환경이나 성향이 비슷한 초록 친구들로.


작가의 이전글 3 아레카야자는 맞고 보스턴고사리는 아니다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