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딱지
표지가 주는 그림에서 『무릎딱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표지의 빨간색은 강렬하지만 아이는
힘이 없어 보인다.
‘아이는 왜 상처가 났을까?’
‘얼마나 아플까?’
‘저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울지 않는 모습이 대견하네’
꽤 아플 것 같은 상처를 덤덤하게 바라보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여러 마음이 올라온다.
그림책 속 아이는 엄마를 잃었다. 사랑하는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다. 아이는 엄마의 죽음을 부정하고 화를 내고 거부했다.
‘우리만 이렇게 남겨 놓다니 너무했다. 정말 나빴다.
어떻게 아빠한테 내가 좋아하는 아침 빵을 만들게 한담?
아침마다 난 빵에 지그재그로 꿀을 발라서 반으로 잘라 먹는데?
엄마는 아빠한테 그걸 가르쳐주지 않은 게 분명하다.
엄마는 죽기 전에 아빠한테 가르쳐 줬어야 했다.
아빠 혼자서는 잘 해내지 못할 거다.’
아이에게는 오로지 엄마가 전부다. 아침에 빵을 만들어주는 건 사소해 보이지만 그 사소한 아이의 일상에는 엄마의 존재가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빵을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없는 건 엄마의 상실이 된다. 어른들도 떠나간 사람이 남긴 사소한 물건에 의미를 두듯이, 빵은 엄마와 아이가 교감한 것이었다. 그 감정은 점차 그리움이 되고, 집착으로 바뀌게 된다.
아이는 엄마를 잊어버릴까 봐, 엄마 냄새가 새나가지 않도록 집안의 창문들을 꼭꼭 닫는다. 엄마의 목소리를 잊어버릴까 봐, 목소리가 새나가지 않도록 귀를 막는다. ‘엄마’라는 말만 꺼내도 아빠가 울기 때문에 입을 다문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생물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불안, 상실, 우울 등의 마음은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며 서로가 독립적이지 않고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는다. 아이의 무릎 딱지는 몸의 상처가 아니라 마음의 상처이다. 이 상처는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가 찾아왔다. 할머니는 손자의 손을 잡고 가슴에 올려주며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법을 현명하게 가르쳐 준다.
“여기, 쏙 들어간 데 있지? 엄마는 바로 여기에 있어.
엄마는 절대로 여길 떠나지 않아”
할머니는 엄마는 절대로 떠나지 않고 너의 곁에 있을 거라고 말을 해준다.
상처라는 말을 떠올리면 어릴 적 자주 넘어졌던 기억이 난다. 나도 무릎에 상처를 입었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혼난 기억이 먼저 난다. 성격이 급해서 걸음걸이보다 몸이 먼저 나가는 바람에 자주 넘어지곤 했다. 1학년 입학이라며 큰조카인 나를 위해 이모가 선물로 보내준 주황색 원피스에 하얀색 면스타킹을 신고 동네를 자랑하듯 걸었다. 주변 아이들의 부러워하던 시선을 맘껏 느끼며 기뻐서 뛰다가 그날도 몸이 먼저 나가는 바람에 넘어졌다.
새 스타킹은 무릎 부분이 크게 찢어졌고 시커멓게 흙이 묻은 살갗은 여러 결로 찧어지더니 피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상처가 나서 아픈 것 보다 찢어진 새 스타킹이 엉망이 된 것에 쉴 새 없이 눈물이 나왔다. 테이프로 붙일 수도 없고 엄마가 꿰매준다 해도 예전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울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모른 채 친구들은 많이 아프냐고 위로해주었다. 집에 와서는 엄마한테도 혼나고 한참을 절망스럽고 속상해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꿰매준 스타킹을 볼 때마다, 상처가 난 무릎의 딱지를 볼 때마다, 속상했던 마음이 올라왔지만, 나에겐 어느새 여러 스타킹이 생겼고 딱지도 없어져 자연스럽게 잊어버렸다.
게슈탈트에서는 전경과 배경이 있다. 어느 한순간에 관심의 초점이 되는 부분을 ‘전경’이라고 하고 나머지 관심 밖으로 물러난 부분을 ‘배경’이라고 한다. 즉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은 전경이 되고 그 이외의 것은 배경으로 자리를 잡는다. 아이에게 엄마의 죽음은 전경으로 들어와 있고, 아빠와 할머니는 배경으로 물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아이의 두려움을 알아차려 주고 할머니가 애도의 방법을 알려주면서 아이에게 엄마의 죽음은 배경으로 물러나고 아빠와 할머니가 아이의 삶에 전경으로 들어온다.
이것이 상처가 회복되는 과정이다. 아이 곁에 남아있는 가족은 전경과 배경의 교체가 자연스럽게 순환해주는 지원자가 된다. 할머니가 오셔서 창문을 열게 되고 지금까지 자신의 감정을 누르고 있던 아이는 모든 걸 다 끄집어내서 울음을 터뜨린다. 아이는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으로 미소를 짓고 아빠에게 가서 안긴다.
상처가 아무는 과정에는 흉물 같은 딱지가 생긴다. 감염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건조하게 해서 아물게 하는 치유의 과정이다. 만약 보기 싫다고 손톱으로 긁어 떼어내려고 하면 다시 상처는 재발하고 다시 피가 난다. 딱딱한 딱지가 자연스럽게 떨어진다는 것은 하얀 새살이 올라온다는 신호로 상처가 아물고 회복이 되었다는 알림이다.
아이들도 어른과 같은 상처를 똑같이 받고 상처의 감정은 어른보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다.
부모들이 하는 실수는 아이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아이들은 이러면서 크는 거야”하고 아이가 느끼는 상처과 불안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상처받은 아이를 위로하는 방법은 아이의 마음을 먼저 읽어주는 것이다. 이때 자신의 감정을 수용 받은 아이들은 상처가 난 감정을 드러낼 용기를 얻는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부모가 아이의 상처에 반창고를 발라준 것이 아니라 소금을 뿌려 마음의 문을 닫았거나 곯아서 터져서 오는 경우가 많다. 외고에서 만났던 P는 ‘공부도 안 하는 너를 비싼 학비를 내면서 키우고 있다’라는 말을 매일 들으면서 2년째 학교에 다니고 있다. P는 그 상처로 인해 너무나 지쳐있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적절한 때에 사랑도 받고 지지도 받아야 한다. 이런 마음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아이는 몸은 성장하겠지만 마음에는 『무릎딱지』속 아이처럼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다.
지금 우리 아이의 상처는 어떤 반창고가 필요한지 찾아보자.
격려의 반창고
인정의 반창고
챙김의 반창고
그리고 사랑의 반창고
딱지는 떨어져도 꽤 오랫동안 흔적으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흔적도 흐려진다. 상처는 흉터로만 남지 않는다. 그렇듯이 아이는 이별의 아픈 과정을 경험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절망의 끝에서 다시 돋아나는 희망을 배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