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는 그런 의심.
반복되는 고양이의 행동을 보다보니 몇가지 의심이 나날이 짙어지고 있다.
자꾸 보다보니 내게 심술을 부리는 것 같은데, 이거이거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고.
어렴풋이 왜인지 알 것 같은 고양이의 심술, 도통 모르겠는 고양이의 심술에 대한 이야기.
첫번째 심술
한동안 고양이가 거의 매일 물을 엎질렀다.
물을 엎지른 날은 마치 빨리 치우라고 재촉이라도 하듯 아주 큰 소리로 잔소리를 하며 쏟아진 물 근처에 앉아 날 쳐다본다.
따뜻하라고 깔아둔 온수매트도 홀딱 적시고(다행히 방수커버!), 근처에 놓아둔 책들도 모두 젖기 일쑤였다. 매일 퇴근하고 돌아와서 매트 커버를 빨고, 책을 말리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엎질러진 물이야 치우면 그만이지만 물을 엎지르면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가늠이 안되는 문제가 있었다. 고양이에게 물마시기란 아주아주 중요한 부분이니까.
하루는 거실에 앉아 혼자 놀고 있는데 고양이가 물그릇을 앞발로 살살 잡아 끌기 시작했다. 그 당시 계속 머그컵에 든 물을 탐을 내서 아예 머그컵에 물을 주고 있었다.
흔들리는 물이 넘치지 않게 살살, 조심스럽게 컵 상단을 요리조리 앞발로 톡톡 끌기도 하고, 손잡이에 앞발을 넣고 살살 옮기는데 그 모습이 너무너무 귀여워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세상에, 머그컵 손잡이에 앞발을 넣고 끄는 모습이라니! 손잡이의 손재를 알아챘단 말인가! 역시 우리 고양이는 천재인가!
불출산을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지켜보다가 조금 위험해보이길래 '쯥, 그만해- 안돼안돼, 물 엎질러져' 라고 한마디를 했다.
그러자 고양이가 나를 보더니 컵을 툭, 넘어뜨렸다.
뭐..뭐지...?
놀다 실수한거라고 넘기기엔 무언가 찝찝함이 계속 남아있었다.
갸웃거리며 물을 치우는 내 옆에 앉아 나를 유심히 보는 고양이를 보니 왠지 모를 찝찝함이 가시질 않았다.
의심을 가지고 다시 지켜보기 시작했다.
우선 물을 엎지르는 날에 나, 또는 고양이에게 특별한 일이 없었는지 고민해보았다.
2주정도 지나니 패턴이 보였다.
내 귀가가 늦는 날, 내가 집에 와서도 놀아주지 않은 날, 그런 날이 이어지면 어김없이 물을 엎질렀다. (그러고보니 매일 우다다할 때가 이때였다.)
또 물그릇을 가지고 장난치는 고양이를 만류하면 더 가지고 놀다 꼭 물을 엎질렀다.
이자식.
이거 일부러 그랬구나.
그래서 꼭 내가 치울 때 옆에서 그렇게 지켜보면서 잔소리를 했구나!!!
내가 물을 조금 덜 닦으면 그 옆에 다시 앉아서 빽빽 울더니. 이거 나 고생하는게 재미있었네 재미있었어-_-
왠지 모를 배신감에 뻐근해지는 뒷목.
그래도 뭐..뭐 어쩌겠어. 고양이들이란 그런거지.
불만을 오줌테러로 표출해주지 않은 고양이에게 감사하며, 당장 물그릇을 원래 사용하던 무겁고 잘 움직이지 않는 그릇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 때가 우다다를 매일 밤 할 때였다. 한밤중 우다다도, 물 엎지르는 것도 같이 노는 시간을 많이 늘렸더니 더 이상 하지 않는다.
혹시 고양이가 자꾸 심술을 부려서, 나를 쉬게 내버려두지 않아서 고민인 집사가 있다면 격렬하게 놀아주는 걸 추천한다.
지내보니 애정이 부족하거나 활동량이 부족해서 고양이가 또는 강아지가 혼자 놀다가 어지르는 걸 우리, 사람들은 사고를 쳤다, 말썽을 부렸다며 주로 혼을 낸다.
반려동물은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와 같다. 원하는 걸 우리와 대화로 나누고 풀 수 없다.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관심을 가지고 찾아내는 건 함께 사는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