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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 Feb 01. 2017

고양이의 우다다

고양이란 뭘까.


고양이를 보다 보면 종종 이런 생각이 드는데, 특히 오밤중에 집의 끝과 끝을 최대한 가로질러 우다다 달리는 녀석을 보면 내 안의 물음표는 더 커진다.


대체로 고양이의 우다다(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뛰어다니는 고양이의 행동을 집사들은 우다다라 부른다.)는 예고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시작되고 끝이 난다.

앞 베란다 끝에서 거실과 주방을 거쳐 뒷베란다까지 질주를 하다 갑자기 코스를 바꿔 방문들을 두들기기도 한다. 우다다를 하다가 난데없이 침대에 뛰어올라 나를 마치 반환점 마냥 밟고 지나가기도 하고, 낮게 으르렁 소리를 내면서 달리기도 한다.


우다다 전력질주를 하는 고양이는 마치 초원에서 내달리는 사자, 표범을 닮았다.

치고 나갈 때 탄탄하게 잡히는 다리 근육들과 등, 어깨 근육, 빠른 속도, 장애물을 피하는 민첩함과 빠른 판단력. 야생의 습성이 거의 남아있지 않는 집고양이지만 우다다를 할 때만큼은 사자, 표범과 같은 맹수가 얼핏 보인다.


너는 왜 갑자기 그렇게 열심히 달리는 걸까.

정말 너의 DNA 어딘가에 드넓은 초원에 대한 그리움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일까.

도대체 왜 내달리는지 알 수가 없으니 우다다가 시작되면 다치지 말라고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주고 부딪히지 않게 조심조심해주는 게 전부였다.

낮에 우다다가 시작되면 그나마 괜찮은데 한밤 중, 새벽녘에 우다다가 시작되면 참 피곤하다. 아래층에 피해가 갈까 봐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소란스러움에 제대로 자는 게 쉽지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이 고양이가 왜 그리 전력질주를 하는지 알 수 없는 이유 백만 개 중 한 개 정도를 찾게 되었다. 아니 찾게 된 것 같다. 

그즈음 잦은 한밤 중 우다다로 제대로 자질 못해서 무척이나 피곤했다. 

그날도 퇴근 후, 너무 피곤해서 놀아주는 둥 마는 둥 대충 마사지로 찡얼거림을 달래주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갑자기 시작된 우다다. 

몇 번을 침대에서 일어나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우다다를 멈추게끔 놀아주었다. 잠깐 놀아주다 다시 자러 가면 시작되는 우다다가 몇 번을 반복하고, 몇 날을 반복된 우다다에 짜증이 났다.

'아, 나는 모르겠다. 뛰고 싶으면 뛰어'

침실 문을 닫고 누워서 우다다 소리를 듣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하루 종일 고양이랑 같이 있었던 적이 언제였지'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장난감으로 격렬하게 놀아줬었지'

그땐 회사일도 바쁘고 개인적인 일도 바빠서 한 달 넘게 주말도 모두 집을 비웠고, 집에 와선 잠깐 놀아주고 자거나 내 할 일 하기 바빴었다.

그날 밤, 고양이는 한동안 요란하게 우다다를 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집에 와서 정말 나도, 고양이도 지칠 만큼 혼심의 힘을 다해 놀아주었다. 고양이가 지쳐서 뛸 힘이 안 남아있을 만큼. 내가 고양이랑 놀아주는 건지, 고양이가 나랑 놀아주는 건지 헷갈려하며 열심히 집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놀았다.

신기하게도 한동안 매일 밤 반복되었던 우다다가 멈췄다. 우다다 대신 그 전처럼 자는 내 옆에 기대어 같이 잠을 잤다.


어쩌면 이 고양이의 우다다는 내가 없는 시간 동안 빈집에서 비축해놓은 에너지를 쏟아내는 방법이었거나 얼굴 보기도 힘든 집사에게 보내는 놀자는 항의가 아니었을까.

요즘은 되도록이면 한바탕 정신없이 뛸 수 있게 놀아준다. 그렇게 피곤하게 만들어야 밤에 나도, 고양이도 모두 편하게 잘 수 있으니까. 집사의 이런 계책이 고양이도 싫지는 않은 것 같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 계책이 좋은 게 고양이인지 나인지. 둘이서 신나게 놀면서 고양이만 잘 자게 된 건지, 나도 잘 자게 된 건지. 그 시간이 고양이만 재미있는 건지, 나도 정말 재미있는 건지.


뭐, 뭐든 어때.

재미나게 놀면 됐지 :-)


1. 발견
2. 순간이동
3. 냐아앜ㅋ왘ㅋㅋ아아아ㅇ아아앙ㅇ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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