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양이와 함께 살까

by 호밀

묘연이란 게 있단다.

고양이와의 인연. 우연하게 만나고 함께 지내게 되는 인연.

어떤 이는 길고양이에게 간택당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집 근처에서 고양이를 구조하기도 하고 각자 저마다의 묘연을 가지고 있다.


고양이와 함께 살기로 마음먹고 어떤 고양이와 함께 살지 꽤 오랜 시간 고민을 했다.

각자 저마다의 방법으로 간택당하는 집사들을 보면서 나도 운명적인 묘연을 기다렸다.

동네 고양이들 중 혹시 어미 고양이에게 버려지거나 주인에게 버려 전 녀석이 있나 동네를 오갈 때면 유심히 보았다. 지역 유기동물단체의 홈페이지에 자주 들어가며 혹시 새로 구조된 녀석이 있나 살피기도 했다. 육지에서 조금 떨어진 섬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나의 묘연이 없었던 탓인지 지역 내에서 집을 찾는 고양이를 만나지 못했다. 유기동물 홈페이지는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았고, 봉사를 할만한 동물센터도 찾지 못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지만 나의 묘연은 없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꽤 오랫동안 고양이를 키우는 결정에 대한 고민을 했었고 마음을 먹었으니 어서, 어서 나의 고양이를 맞이하고 싶었었다. 거기다 길고양이와의 운명적인 묘연을 기대하면서 보낸 시간이 한참. 하루라도 빨리 고양이를 데려오고 싶었다.


마음이 급해졌던 나는 펫샵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웹페이지 가득 올라와 있는 아기 고양이들 사진을 매일매일 보면서 어떤 고양이를 데려올지 고민을 했다.

그런데 집사 카페를 돌아다니다 샵에서 데려온 고양이들이 아프다거나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후기를 꽤 많이 보게 되었다. 샵의 고양이들은 대부분 고양이 공장에서 데려오는지라 건강이 좋지 않고 면역력이 낮아 병에 걸리기 쉬운데, 범백 같은 경우는 발병 전 잠복 기간이 있어 모르고 분양할 수 있다 했다. 치료를 해서 완쾌가 되면 다행이지만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경우가 더 많고 이럴 경우 샵과 서로 책임을 물으며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했다. 아픈 아이를 모르고 데려왔을 경우 생기는 경제적 문제도 걱정이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데려온 아이가 죽었을 때 그 충격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인터넷에서 펫샵 주인과의 몇 마디 대화와 사진만으로 신뢰할 수 있는 샵을 고를 자신도 없었다.

어떤 샵은 분양 후 일정 기간 이내 유전적이나 샵의 책임으로 병에 걸리거나 죽을 경우, 다른 아이로 교환(?)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했다. 펫샵 분양을 알아보기 그만둔 제일 큰 까닭은 이 것 때문이었다.

판매자가 상품에 퀄리티에 대한 책임을 지는 거라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그 상품이 생명이었기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다음, 가정 분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펫샵 아이들보다 훨씬 건강하고 어미와도 함께한 시간이 길어서 심리적으로 훨씬 안정적이고 고양이의 사회생활을 배울 기회가 있다 하였다.

가정 분양으로도 묘연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한 번은 고양이를 데리러 가는 도중, 갑자기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취소를 하기도 했었다.

그 이후 다시 유기동물 사이트를 기웃거리며 알아봤었지만 아픈 아이들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서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 동물을 직접 키우는 건 처음이었기에 기본 지식이 없는 상태인 내가 상처 있는 아이들을 더 잘 보살필 수 있을지 무서웠다. 끊임없이 사랑을 줘야만 하는 일이 두려웠고, 자신이 없었다.

나는 꽤 끈질기게 가정 분양하는 곳을 찾았고 다시 오랜 시간 기다려 지금 고양이를 데려왔다.


나와 함께 사는 고양이는 예쁘고 귀엽고 애교도 많고, 지금은 내게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이다.

하지만 이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마음 한쪽엔 죄책감 같은 게 커져만 갔다. 가정 분양이긴 했지만 결국 나는 고양이를 데려오면서 일정 금액을 지불했고, 생명을 돈을 주고 거래한 것에 대한 죄의식이 마음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더불어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하니 길에 버려지는 고양이들의 이야기들을 더 많이 접하게 되었다.

좋은 묘연을 타고나지 못해 길 위에서 사라지는 생명들. 한 겨울이면 허기를 채우기 위해 꽁꽁 언 김치도 마다하지 않고 먹는 녀석들. 고양이 건강에 치명적인 음식이지만 그마저도 없어서 못 먹는 아이들. 제대로 먹지 못해 항상 부어있고, 엉망이 된 얼굴들.

나의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커져가는 만큼, 어쩌면 내가 구할 수 있었을지 모를 다른 고양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커져만 갔다.


나는 나의 고양이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이 녀석의 애교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고, 내가 이 녀석 덕분에 경험하는 다채로운 감정들을 나누고 싶다. 하지만 마음 한 켠은 여전히 당당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자리 잡고 있어 때때로 괴롭다.

어떤 말로 그때의 나를 스스로 변명하고 합리화를 시키더라도 내 안에 자리 잡은 부끄러움과 죄책감은 없어질 것 같지 않다. 평생 가져갈 무겁고 불편한 가방이 하나 생긴 듯하다.

어쩌면 나의 묘연은 이 녀석이었을 것이다. 겁 많고 모든 것이 서툰 집사에게 온 소중한 이 생명이 나의 묘연이었을 것이다.

나의 묘연인 이 녀석도 소중한 생명이니 오래오래 더 많은 사랑을 줄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의 부끄러움에서 도망가기보단 다른 녀석들에게도 같은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아볼 예정이다.


누구에게나 묘연은 있다.

당장 찾아오지 않는다면 만들어갈 수도 있다.

어떤 묘연을 택하였다고 비난할 수 없다.

단지 이어진 그 묘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주위에 있는 다른 생명들에게도 그 마음을 조금씩 나누어주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

길 위에서 만난 동물들, 반려인과 함께하는 동물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