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혜윰

서른을 목전에 둔, 이십 대의 끝자락에 와 있던 나는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떠나 정 반대편인 캐나다 밴쿠버로 향하는 비행기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처음 겪는 감정과 설렘 그리고 복잡하리만치 미묘하게 흘러가는 심장 박동이 나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매일 입으로 떠난다고 떠벌리던 어느 날 무슨 마음이었는지 모르게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했고, 우여곡절 끝에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그리고도 한참이나 가는 게 맞는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옥죄었던 것 같다.


내 수중에 돈은 비행기 삯만 빼면 한 달 생활비가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군 제대한 후 집은 많은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다. 그래서 바로 일터로 발걸음을 향해야 했었고, 스스로 가장이 되어 하나둘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했던 시절이다. 그렇게 은행으로 일터로 나의 20대는 재미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나날들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문득 대학은 졸업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학자금 대출을 받고 남은 학기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문화예술 단체에 들어갔고 그렇게 내 삶이 한번 바뀌는 시기가 왔다. 여전히 돈을 벌면 은행에 갖다 바치는 신세였지만, 그래도 나름 목적성 없이 살아왔던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마음이 나를 버티게 해 주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런 마음도 오래 지나다 보면 고인 물처럼 곳곳이 썩어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기에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외국을 나갈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현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던 마음이 더 간절했기에 그렇게 혼잣말처럼 주저리 떠들어 댔으리라, 그냥 그때의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열심히 일해도 결국 나의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어느새 내 마음을 좀먹어 들어가 내면의 어두컴컴한 방을 만들어 그 안에 나를 가두는 느낌이었기에 겉은 웃고 있지만 혼자 남겨질 때 나는 더없이 초라했다.


여타 다를 것 없던 하루 중 누군가가 나에게 "외국 나간다며? 언제 나가? 맨날 말만 하는 것 같네?"라며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에 내 치부를 들킨 것 같은 마음에 혼자 안절부절못했다. 그리고 결국 이대론 죽도 밥도 안될 것 같다는 심산으로 알아보던 중에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모집 글을 보고 부랴부랴 신청하게 된다.

창피한 일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그 시절도 지금도 영어를 잘 못 한다. 한 번도 토익 시험을 치러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제대로 교육을 받았던 기억도 없었다. 시골의 작은 실업계 고교를 다녔던 나는 공부를 그다지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서류는 몽땅 영어로 보내야 했었으며 또 한 가지 이십 대의 마지막이었기에 성인이 된 후의 나의 모든 행적을 다 찾아서 제출해야 했다.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 나는 혼자서 꿋꿋하게 준비를 했다. 인터넷을 뒤지고 영문 번역은 친척 동생에 도움을 받아 꾸역꾸역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열정으로 나는 준비된 서류를 시간에 맞춰 보냈고 발표날을 뒤로 한 채 다시 일터로 돌아가 평소와 같이 공장의 기계처럼 자연스럽게 일터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최종 합격 통지가 메일로 도착해 있었다. 많은 경쟁자를 뚫고 합격을 받았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노력에 대가인지 아니면 운이 좋았던 건지 그때나 지금이나 잘 알지 못하겠다. 다만 나에게 또 다른 계기가 될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던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활동한 지 1년 남짓 되는 해였는데 슬슬 일이 들어오는 시기, 그걸 끊고 나가야 하는 게 맞는가? 에 대한 자기 고민이 심각하게 들었었다. 또한 남들은 영어 준비한다 뭐하다 한창 바쁜 시기를 보낼 텐데 나는 그냥 시간만 흘려보내는 게 스스로 웃기기도 했다.


하지만,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 갔던 생각은 지금 아니면 나는 평생 외국을 못 나갈 것 같다는 점과 지금 겪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 같은 감정들을 그냥 보내기 싫었다. 그렇게 해서 무작정 밴쿠버 행 편도 티켓을 구매했고 2주 후 나는 비행기 안에서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밤하늘을 우두커니 보며, 무거운 마음의 짐들을 하나둘씩 정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떠난 첫 외국을 워킹홀리데이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번 돈으로 어릴 적부터 가보고 싶었던 마추픽추를 보았으며, 이를 통해 브런치에 여행사진작가로 글을 기고하는 행운이 따랐고, 글 연재를 위한 핑계로 나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여행을 다니고 있다. 그렇게 틈틈이 2012년 스무 살 끝 무렵에 시작된 나의 여행은 현재 9곳의 나라를 다녀왔으며 아직 진행 중이다.


사실 지금도 내 형편은 그다지 많이 나아지진 않았다. 다만 처음 여행을 떠나기 전의 마음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여행을 하고 있다. 간혹 주변에서는 나에게 부럽다는 표현을 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한 마디를 툭 내 던진다. '나는 돈을 포기하고 여행하는 중이야!' 젊은 나이에 열심히 돈 벌고 나이 들어 편하게 여행 다니면 좋지 않냐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지금 느낄 수 있는 감정과 감성 그리고 생각들은 나이 들어서는 경험해 보지 못할 것들이기에 나는 미래의 나에게 주는 여행보다는 지금의 나에게 여행으로써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싶다. 그렇게 이 책은 도망치듯 떠났던 여행을 통해 스스로 변화되는 과정을 담고 싶었던 에세이이다.


이번 여행자의 일기장은 2013년 여행했던 쿠스코 편으로 여행하며 느꼈던 생각을 정리하듯 써 내려간 나만의 일기 형식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