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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Oct 09. 2019

프라하, 걷고 생각하고 휴식하다.

프라하 : 포토에세이



쉬는 날



평소 가고 싶었었던 나라 중에 몇 군데를 선택해서 최종으로 결정된 게 프라하였다. 그래서 산토리니에서의 모든 업무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의 마무리를 프라하에서 할 수 있었다. 다만 구경보다는 휴식하고 싶었다. 물론 산토리니도 좋았지만, 생각보다 몸이 고단했는지 그냥 사진을 찍지 않더라도 푹 쉬다가 잘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기에 딱히 여행을 계획하지도 어디를 가고 싶지도 않았다. 프라하에서는 근교 여행이나 액티비티를 많이들 하는 것으로 알았지만 나에겐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하고 싶다는 욕구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5일간의 일정 동안 나는 그냥 편히 숙소에 머물기로 했다. 누가 보면 이왕 갔는데 힘들지라도 이곳저곳 둘러보는 게 낫지 않겠나? 라는 생각을 다시 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지금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 여겼다. 그래서 도착 첫날은 여행용 가방의 짐을 제대로 풀지도 않고 바로 씻었다. 그리고 지친 몸을 침대에서 뉘어 뒹굴 뒹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너무나도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눈을 떠보니 둘째 날 아침이었다. 코끝을 향기롭게 감싸는 밥 냄새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했다. 이 얼마 만에 보는 한식인가? 내가 먹고 싶었던 음식이 한가득 있었다. 아침을 어떻게 먹었는지도 기억이 안 날 만큼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먹어 치운 것 같다. 혼자 속으로 이런 게 행복이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며, 역시 숙소 예약을 잘했다고 자축했다. 배도 부르겠다. 다시 노곤하니 잠이 오길래 또 침대로 스믈 스믈 올라가 눈을 붙이기로 한다. 참 계획대로 충실히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다른 약속은 잘 안 지키는데 이런 약속은 칼 같이 지키는 내 모습에 나 스스로도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 또한 나의 여행 방법의 하나인걸? 그렇게 꿈속에서 헤매다 눈을 떠보니 시간이 어느새 점심을 지나가고 있었다. 역시 나는 동물에 가까웠다. 또다시 배가 고파져 왔다. 무엇이든 먹어야 할 것 같은데 딱히 뭘 먹어야 할지 모르던 찰나에 같은 방에 묵던 여행자와 전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친해졌는데 그 친구가 같이 점심 먹으러 가자고 나에게 물어왔다. 속으로 오호! 혼자 먹기 애매했는데 잘됐다고 생각하며,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대충 씻고 옷을 입는 중에 같이 먹기로 한 친구가 한 명 더 같이 먹는다고 괜찮냐고 물어오길래 나는 당연히 오케이!! 라고 말하며 빨리 준비를 마쳤다. 이렇게 우린 3명이 같이 밥 먹을 먹게 되었다.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인지 나도 모르게 무심결에 카메라를 메고 나가기로 한다. 혹시 몰라 좋은 장면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아 분신(카메라)을 챙긴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서 추천해주신 식당으로 가기로 했는데 거기서 우린 프라하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음식 몇 가지를 시켜 먹기로 했다. 먼저 목이 건조한 거 같아 코젤 흑맥주로 목을 좀 적셔주었다. 크~ 역시 맥주의 나라답게 한국에서 먹었던 코젤 맥주랑은 비교 불가할 정도로 맛있었다. 뭐 분위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진짜 맛있었다. 그렇게 목도 촉촉이 적셔 기분이 좋을 때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는데 3가지 중 2가지는 기억이 잘 안 나고 족발같이 생긴 것만 기억이 났다. 모든 음식이 내 입맛에 맞아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그중 체코 족발(꼴레뇨)이 내 입맛에 가장 잘 맞았다. 그렇게 기분 좋게 식사도 했고 우리는 돌아가는 길에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 한잔하기로 했다. 나만 빼고 다들 좀 길게 여행 중이었는데 각자 좋았던 여행지나 일정 등을 소소한 얘기들을 이어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우린 숙소를 돌아가 각자의 일정을 소화하기로 했다. 나 역시 오늘 남은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숙소로 향했고 대충 씻고 침대에 풀썩 누웠다. 나의 남은 일정은 쉬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의 둘째 날 일정도 이렇게 순조롭게 잘 마무리되었다.






걷고, 생각한 날



세 번째 날 아침도 양껏 배부르게 먹고 배를 통통 튀기고 있었는데, 숙소 사장님께서 오늘도 안 나가시고 쉬시나요? 라고 조심스레 물어오길래 순간 나도 너무 안 나가는 것 같아, 사장님에게 잠깐 근처 산책을 하려 한다고 말을 했다. 딱히 어디를 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전날 같은 방에 있던 여행자가 휴식하기 좋은 공원이 있다고 알려줘 그곳을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게스트하우스 밖을 나섰다. 이틀 동안 정말 푹 쉬었던 탓인지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뻐근한 어깨도 파스로 달래다 보니 많이 호전되어 시가지를 좀 걸으며 두런두런 동네 구경을 하기로했다 . 프라하는 유럽의 어느 도시와 비슷한 오래되고 고즈넉한 건축물을 자랑한다. 그리고 중간중간 공원들이 있어 생활하기에 쾌적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정말이지 한국 사람들이 많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프라하에 오기 전까지는 한국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공항에 도착해서 안내판을 보고 조금 놀랐다. 영어 밑에 한국어로 다 표기가 되어있었다. 중국어도 아니고 일본어도 아닌 한국어! 그 순간 뭐지? 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유럽 공항에서 한국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했는데 내가 도착한 2 터미널에서 1 터미널로 넘어가는 순간 왜 한국어가 쓰여 있는지 이해할 만큼 여기저기 한국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 어디를 가도 한국어가 들리기에 내가 마치 인천공항에 온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였으니... 무튼 그렇게 한국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걸어보자는 심산으로 골목골목 돌아다녔다.


조그마한 공원을 지나는데 아이들이 한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먹는 모습에 나도 못 참고 줄 서서 얼른 내 손에 아이스크림을 쥐여 주었다. 정말이지 꿀 같은 맛이다. 무슨 생과일을 그대로 먹는 느낌처럼 달콤하고 시원하니 내 입안을 기분 좋게 해주었다. 한여름의 뙤약볕을 피해 나무 그늘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에 마치 내가 여기 살기라도 한 듯 너무나 자연스러워 스스로 웃기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역시 새로운 세상은 언제나 볼거리가 많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하루 먼저 돌아 다닐걸? 하는 후회가 조금 밀려왔지만, 그래도 이렇게 파란 하늘과 깨끗한 공기를 마시니 금방 잊혔다. 소나기가 지나가고 난 오후의 프라하는 더욱 청명하게 느껴졌다. 오늘 많이 걷지 않기로 했지만, 아마 그렇게 되진 않을 것 같다. 이곳저곳 정처 없이 발길을 옮기다 보니 넓은 광장이 나온다. 이제 사람이 많은 광장을 걷고 있다. 많은 관광객의 말소리와 웃음소리 그리고 길거리 공연 등이 거리를 꽉 채우고 있다. 나도 그들처럼 그곳을 걸으며 다양한 볼거리를 눈으로 즐기고 있다. 아직 소개해준 공원도 가지 못했는데 벌써 두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시간은 정말이지 걷는 속도의 몇 배로 흘러가는 게 분명하다. 아니면 내 걸음걸이가 느린 건지... 혼자만의 시간을 오랜만에 갖게 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분일초가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몸이 힘들어 있을 때는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또 평온하게 걷다 보니 다른 세상이 보인다. 사람 참 간사한 건지 변덕이 심한 건지 도통 모를 일이다.


예전 스페인을 걸었을 때 보다 프라하가 더 좋은 느낌이다. 강줄기를 따라 공원들이 잘 돼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공원을 따라 많은 사람이 산책도 하고 책도 읽으며 각자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중심관광지와는 참으로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조금만 벗어나도 천천히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점에서 많은 사람이 프라하를 찾는 건인지도 모르겠다. 도시가 숲을 끼고 있으니 한결 여유로워 보이는 느낌이랄까? 아마 내 여행속도로 프라하를 걷다 보면 일 년 동안 다녀도 다 못 둘러볼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처음 프라하에 와서 트램을 탔을때 든 생각인데 이곳을 다시 온다면 트램만 타고서 여행해도 재밌을 거란 생각을 했다. 처음 시작하는 곳부터 종점까지 한 라인만 타고 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들을 더욱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서이다. 다만 이번 여행에서는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인파 속에서 벗어나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정말이지 사람 정말 많다. 이렇게 많을 줄이야... 프라하에는 진짜 사람이 많았다. 건축물도 찍고 싶었지만,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그 앞을 메우고 있어 많은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웠지만 다들 같이 생각을 할 테니 서운함은 뒤로 접어 두기로 한다. 내가 가려는 공원은 레티나 공원으로 다리를 건너야지만 갈 수 있었다. 어느덧 다리는 눈앞에 있었다. 꽤 열심히 걷고 걸었던 거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 정신없이 걷다 보면 중간중간 다른 곳으로 빠져 결국에 목적지에 못 가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 그래도 오늘은 길을 제대로 찾아온 거 같다.


프라하에는 많은 다리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카렐교(까를교)가 제일 유명하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다리를 건너기 때문에 그냥저냥 스쳐지나 기로 한다. 다리를 건너는 중간 저 멀리 카렐교(까를교)가 보이고 다리 위로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개인적으로 그곳을 피해 다른 다리를 이용한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꼈다. 여행자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새벽 시간대 많이들 일출을 보러 가기도 한다고... 이유는 이쁘기도 하지만 사람이 없어 천천히 카렐교(까를교)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나도 한국 돌아가기 전에 꼭 한번 다녀오리라 했지만.. 못했다. 아무튼 오늘은 번잡한 곳보다는 천천히 둘러볼 수 있는 곳을 더 원했기에 멀리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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