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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Aug 17. 2018

급하지 않게 천천히, 세고비아

다녀올게요 여행 : 포토에세이


한 템포, 쉼


  스페인에 도착한 후로 일정에 따라 움직이려니 조금은 빠듯하게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디를 다녀도 몸에도 마음에서도 약간의 휴식이 필요했던 참에 딱 그쯤에서 만난 동네가 세고비아였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포근한 인상을 주던 동네이다. 우리네 시골의 버스정류장 같은….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으며 오후의 햇볕이 따뜻하게 비추던 그런 포근한 느낌이다. 처음 버스정류장을 나가려고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이었다. 중절모에 지팡이를…. 마치 영화에서 보던 이미지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이 장면을 놓칠세라 이내 카메라를 꺼내 들고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찍히는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다만 나의 욕심에 일단 셔터를 누르기에 바빴던 거 같다. 저기 멀리 보이는 이미지는 평생 다시 볼 수 없으리란 확신이 있었기에 그랬던 거 같았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촬영을 하였고, 카메라를 내려놓을 때쯤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할아버지는 나에게 살짝 눈웃음을 지어 보이셨다. 저 멀리 동양에서 온 청년의 무례할 수 있었던 행동이었지만 할아버지는 여행자인 나에게 따뜻한 미소로 화답을 해주셨다.


그렇게 버스정류에서 나와 나는 세고비아 중심지로 향했다. 이곳은 수도교가 유명한 동네로 알려져 있다. 나는 여행을 다닐 때 많은 정보를 갖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 와서 수도교가 유명하다는 걸 알았다. 다만 동네를 천천히 돌아보면서 느낀 점 하나는 이곳은 절대 젊지 않은 동네임은 분명했다. 일례로 수도교를 가는 큰 대로에서 작은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다들 연세가 지긋해 보이시는 분들께서 작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모습이 마치 이 도시의 수호자들 같았다. 도시와 그들은 신체적 나이가 들었을지는 몰라도 마음과 생각은 누구보다 젊고 멋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드리드와는 확연히 다른 마을 곳곳이 여유가 있고 천천히 잔잔하게 흘러가는 강물 같았다. 여행에서 나도 모르게 쌓여있던 피로들이 천천히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쩜 쉼 없이 달려온 여행 중한템포 쉬었다 가라고 말하는 듯한 동네였다.



엽서에 담아….


 현수교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 후 돌아가는 버스 시간 전까지 동네를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내가 간 날에 관광객이 별로 없던 건지 아니면 내가 사람이 없는 곳으로 다녔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동네를 천천히 둘러보기에 너무나 좋은 날씨와 여유로움이었다. 너무 좁지 않은 동네 동네는 오후의 햇살이 내려앉아서 그런지 골목골목마다 따뜻한 빛으로 채워졌다.


세고비아에는 유명한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현수교와 세고비아 대성당 그리고 알카사르 등이다. 이중 알카사르는 백설 공주 성의 모티브가 되었던 성이다. 이곳 등을 둘러 보면서 도시 자체가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했고 골목들이 어찌나 이쁘던지 하나씩 엽서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음악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는데 멋있는 웃음을 한 분께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것이 아닌가?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으며, 연습하는지 모르겠지만 밝고 즐거운 모습으로 연주를 하고 계셨다. 음악을 잘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이끌려 한동안 앉아서 곡 연주를 들었던 거 같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차려보니 버스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버스정류장이 있는 방향으로 다시 걸었다.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지나친 모습들이 눈에 선하게 지나간다. 멋들어진 중절모에 선글라스를 쓰고 우아하게 길을 걷던 할아버지와 테라스에 가지런히 있던 어여쁜 화분들, 마치 옛날 우리 집 마당에 보던 빨래처럼 정겨운 모습까지 걷는 내내 나에게 편안함과 미를 선물해 주었던 동네였다.


나를 재촉하지도 그렇다고 부산스럽지도 않게 천천히 둘러 보게 해주었던 마을이었다. 만약 다음에 스페인에 다시 오게 된다면 나는 세고비아에 며칠을 묵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쉬운 세고비아와 작별을 했다.



중간 정리


 어느덧 스페인 여행의 중반에 다다랐다.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많은 이미지들이 나를 스쳐지나갔다. 나는 여행자이기 때문에 좋은 모습만을 바라보고 글로써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내가 느낀 감정들을 정리하며 써 내려 가고 있다. 마드리드 시내에는 많은 여행자와 현지인들이 뒤섞여 있다. 그리고 그 무리안에 나도 존재 하고 있다. 내게 남은 여행의 시간은 많지 않지만 그들과 함께 지냈던 날들과 내가 바라보는 모습과 풍경들을 담담하고 아름답게 써내려가려 한다.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려 애쓰지 않고, 담백하게 느낀 감정과 이미지들을 나만의 색으로 채우려 한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늘 따뜻하게 읽어주는 분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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