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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Aug 24. 2018

밤과 아스투리아스 그리고
그라나다(알함브라 궁전)

다녀올게요 여행 : 포토에세이


계획적이지 않은


  오늘의 목적지를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부산스럽게 준비를 마쳤다. 오늘은 그 라다에서 하룻밤을 묵고 그라나다로 넘어가려 한다. 어젯밤에 미리 짐을 싸놓긴 했지만, 혹시 모를 상황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 짐 점검 후 출발하기로 한다. 새벽 아침의 지하철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 여유롭게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는데 뭔가 느낌이 오묘하더니 이내 지하철의 이동노선을 보고 나는 지금 목적지의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지하철의 노선은 우리의 2호선 순환 열차랑 같은 방식이었는데 원래 방향으로 탔으면 다섯 정거장만 가면 될 걸 한참 타고 보니 반대로 돌고 있던 것이었다. 무려 열 정거장이 넘게 남았고 이내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미 그라나다행 버스표를 끊어놨기에 또 알함브라궁전의 티켓도 시간이 맞춰서 예매했기에 미리 예매한 버스를 놓칠 경우 하루의 일정은 다 틀어질 게 분명했다. 우선 급한 대로 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기로 했다. 간신히 그라나다행 버스를 타는 정류장에 도착했고 게이트를 확인하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는데 혹시 몰라 같은 게이트에 있던 아저씨에게 그라나다 가는 버스가 맞는지 확인했고 아저씨는 자기도 그라나다 가니깐 걱정 말라는 몸짓을 해줬다. 안심하고 버스를 기다리고 한다. 하지만 버스 시간보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버스가 나타나지 않았고 이내 불안해 터미널안에 있던 직원에서 티켓을 보여주며 다시 확인했는데 우리가 있던 게이트가 아닌 다른 게이트를 알려줬고 혹시나 해서 게이트로 향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다.

역시 여행은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휴식 시간을 주는 거 같다. 오늘의 일정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순간 머릿속에서 무수히 많은 생각이 찰나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리고 같은 회사 매표소로 향했다. 다행히 직원이 나와 있었고 사정을 설명하는데….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된다 스페인어를 쓰셨는데 나의 짧은 영어와 손짓·발짓으로 서로 말을 알아들었고 다음 시간대 티켓을 발권해 주셨다. 어쩔 수 없이 터미널에서 대기 한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일정대로 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기에 계획적이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화를 내기보다는 그 상황을 이해하고 최대한 즐기려고 노력한다. 어차피 다시 돌릴 수 없기에 그냥 흘러버린 시간에 대해서는 기분 좋게 잊어버리고 한다..



궁전보단 냥이들


 그라나다에 우여곡절 끝에 도착했다. 그리고 알함브라 궁전 입장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알함브라 궁전 내 나스르궁전도 예매했기에 마음이 급했다. 나스르궁전은 시간대별로 매표를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궁전에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인 거 같았다. 시간이 없다. 버스를 타고 알함브라 궁전으로 향한다. 내리자마자 바로 나스르 궁전으로 입장할 수 있는 곳으로 향했는데 이미 긴 줄이 서 있었다. 나도 자연스레 사람들과 같이 줄을 서 있었는데 입장 시간이 다 되었지만,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혹시 몰라 입구 앞에서 매표를 하던 직원에게 물어보니 지금 입장 시간이니 바로 입장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궁전을 둘러본 거 같다. 그리고 사람들도 생각보다 너무 많아서 요리조리 피해 다닌 거 같았다. 좀 천천히 둘러 보고 싶었지만,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했던 거 같다 그래서 내부 사진은 많이 찍지 못했다. 그리고 궁전 내부의 몇몇 곳은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역시나 궁전이라고 생각이 든게 짧게 돌아봤지만 가보지 못한 곳도 있었으며 관광객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보아 내부는 더 넓으리라 생각된다. 워낙 늦은 시간대에 예매해서 그런지 폐장시간이 다 되었고 이내 사람들과 함께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한 채 궁전 밖으로 나왔다.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 알함브라궁전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기로 하는데 참, 여기도 길냥이가 많다. 평소에도 동물을 좋아하긴 하는데 요즘은 고양이에게 많이 꽂혀서 그런지 알함브라 모습보다는 다정하기 앉아있던 고양이들이 더 눈에 들어왔던 거 같다. 그래서 사심이 좀 많이 들어간 고양이들의 사진이 많은 거 같다. 마치 주객전도가 된 느낌이다. 어쩔 수 없다…. 그냥 냥이가 너무 귀여웠기 때문에…. 


궁전구경을 다하고 숙소를 향하는 길은 버스보다는 그냥 천천히 걷기로 했다. 내려오는 길이 구불구불했는데 마치 숲을 산책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길 끝에 다다랐을 때에는 양쪽에 멋들어진 조명이 켜져 있었고 끝에는 돌로 된 거대한 문이 있었다. 해가 지는 녘에 붉게 물든 가로등의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리고 그 문을 나서는 순간 더 멋있는 장면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오늘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마치 이장면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랬을까?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났다. 골목의 모습은 마치 누군가 그림을 그려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장면들을 놓치기 아쉬워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밤의 알함브라궁전


 나는 개인적으로 알함브라궁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이삭 알베니스의 아스투리아스(https://www.youtube.com/watch?v=oEfFbuT3I6A)이다. 황홀할 만치의 아름다운 기타연주 소리가 커다란 공간을 꽉 채웠던 영상인데 그 공간이 바로 알함브라궁전 안이었다. 아직도 내 기억 속에서는 그 영상과 음악을 들었던 첫날이 잊히지 않고 있다. 아스투리아스를 알게 된 계기는 전에 몸담았던 두들쟁이타래라는 곳에서 음반 작업을 진행했는데 그때 가야금으로 연주되었던 음악 중 하나인 곡이었다. 기타 소리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연주된 곡인데 한 번쯤 들어보시는 걸 추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erzgyVKG-z8&list=OLAK5uy_mYl-VSU1ORCOrMWN5TbfvQBsRLvpYUyTI&index=5) 두들쟁이타래의 음반은 4집까지 나와 있는데 예능프로의 배경음악으로 많이 삽입되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오면 알함브라궁전을 관람하는 방법의 하나는 바로 야경으로 보는 것이다. 궁전이 제일 잘 보이는 곳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궁전의 전경은 이미 많은 사람의 관광코스로 알려져 있다. 또다시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늦은 밤이었지만 거리는 사람들로 붐벼 있었으며 야경을 관람하러 올라가는 동네 골목은 관광용품을 파는 상점들로 마치 야시장을 보는 듯한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천천히 주변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내 눈앞에는 사진에서 보던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이 근사한 풍경을 보기 위해 조그만 광장에 모여있었다. 그리고 광장 끝에서 조용히 관람하고 있는데 어디 낯익은 기타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바로 아스투리아스였다. 눈앞에는 알함브라궁전이 그리고 귓가에는 아스투리아스의 연주곡이…. 마치 뮤직비디오 안에 들어와 있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이 순간이 놓치기 싫었는지 나는 한참이나 멍하니 궁전을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 있었다.


오늘 여행의 시작은 예상치 못한 변수들 때문에 약간 지쳐있었는데 마치 보상이라도 해주는 듯 첫날이자 마지막 날의 밤에 그라나다는 나에게 여기에 다시 와야 한다는 말을 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 번쯤은 일정에서 벗어나 전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느껴보라는 것처럼…. 오늘의 하루를 선물해 준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밤의 알함브라궁전과 아스투리아스의 연주곡에 빠져 한참이나 앉아 있다.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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