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에서는 도라지, 한방에서는 길경
감기에 걸렸다. 단전에서 팡팡 치고 올라오는 큰 기침 때문에 횡경막이 다 아픈 것 같았다. 기침에도 기압이 있다면 그 헥토파스칼에 기도가 파열되는 것 같았다. 폐가 화산이라면 기침할 때마다 폭발해서 목젖 뒤 기도는 그 폭발 에너지에 산탄 당하는 것 같았다.
약을 먹고 죽은듯 잠들었다. 점차 잠이 얕아지면서 어렴풋한 소음과 함께 목구멍과 비강 쪽이 쓰려서 깼다. 코가 막혀 입호흡을 하다가 코를 오지게 골아버린 것이다. 내가 곤 코에 내가 깬 꼴. 눈 떠보니 세 시간이 흐른 뒤였다.
w. 마케터 Jane
신뢰 관계가 얄팍한 기상청을 대신해 요즘 날씨를 정확히 진단해 주는 존재는 바로 피부와 목소리다. 리프팅도 하지 않았는데 무언가 피부를 잡아당기는 것 같고, 몇 마디 내뱉지도 않았는데 목소리가 갈라지는 걸 보니 슬슬 가습기를 꺼낼 때라는 거겠지?
피부 건조는 가습기와 포포 크림(PAWPAW CREAM)으로 잠재울 수 있지만 목젖 깊은 곳부터 차오르는 내면의 건조함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나보다. 출근할 때 약국에서 쌍화탕 한 박스를 샀다. 온수에 중탕해서 마실 때마다 목이 편안해지고 잠시간 목소리가 돌아왔다. 가끔 흔들어 먹지 않으면 바닥에 검은색 침전물이 보였다. 자연스럽게 병에 붙은 스티커로 시선이 향한다. 유효성분. 작약. 숙지황. 황기. 천궁. 박하. 갈근. 길경….
길경.
길경이 뭔데?
-가래를 삭히고 기침을 멈추게 함
-호흡을 편하게 돕고 기관지염에 효과가 있음
-폐질환으로 인한 농 배출을 도움
-인후통, 쉰 목에 효과적이다
길경은 도라지의 약명이다. 도라지는 봄철 시장이나 반찬, 명절 제사상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동의보감에도 길경이 들어가는 처방은 300가지에 다다른다. 지금 세대에게는 초면처럼 낯설지만 호랑이연고 만큼이나 유명한 용각산 역시 길경을 주재료로 한다. 용각산은 가래, 기침, 천식에 효과있는 하얀 분말 생약인데, 기침을 자주 하셨던 우리 할머니가 고운 가루를 물없이 입에 털어넣으시는 모습이 여전히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화-한 냄새도.
이처럼 도라지는 옛날 옛적부터 기관지를 책임지고 있는 대표 약재다. 폐의 열을 내려줌과 동시에 진액을 공급해 폐가 촉촉해지게 한다. 도라지에 함유되어 있는 사포닌 성분 때문인데 구강 점막을 자극해서 점액 분비를 유발시켜 기침과 가래를 없애준다. 구강 점막을 자극해서 작용하기 때문에 점막에 넓게 닿을수록 유효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목에 오래 머금고 있거나 기관지 점막에 닿는 범위가 넓은 방법으로 취식하면 더욱 좋지 않을까.
3년 이하 도라지는 나물이나 생으로 먹기 좋고, 3년생 이상은 약성이 높을 때라 차나 약재로 쓰인다. 묵을수록 쓴맛이 짙다. 그래서 목 건강을 위해 도라지즙을 찾는다면 3년 이상의 햇도라지를 사용했는지를 보는 게 좋다. 봄철에 특히 향이 좋고 햇도라지는 쓴맛이 적당하기 때문이다.
이른 봄 씨알 굵은 큰 도라지를 쌀뜨물에 담가 다듬고 삶아서 쓴맛을 제거한 뒤 꿀을 섞어 불에 졸여 만든 도라지정과는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오이와 함께 무친 새콤달콤한 도라지 오이 초무침, 명절과 보름이면 먹는 도라지 나물은 너무나 익숙하다. 도라지꽃은 습기 없는 곳에서 잘 뒤집어 말려준 뒤 뜨거운 물에 우리면 예쁜 청자색 꽃차로도 즐길 수 있다. 꽃 자체가 식용이기에 꽃비빔밥으로도 먹을 수 있다.
도라지는 음식 뿐만아니라 문학, 민요, 미술, 단체명 등 민족 역사 전반적으로 소재로 다루고 대표 아이콘으로 표상될 만큼 한국적인 식물이다. 단소를 들면 자연스레 생각나는 그것으로 마무리해본다.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 철철 넘치는,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