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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루습 Jan 04. 2023

새해부터 시작한다면서요..

1월_침향(Oud) / 벅차지 않게 사소하게 시작하는 달


2023 생루습 캘린더로 혜윰의 생각을 더 전해요. 달력을 캡쳐하거나 저장해서 쓰셔도 됩니다.


▶ 벅차지 않게 시작하기

침향은 침향나무가 개미에게 파먹히거나 스크래치 등으로 상처를 입으면서 시작됩니다. 스스로 아물기 위해 그 자리에 기름(천연수지)을 채우고 그 기름이 수백년 동안 쌓이며 침향이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수백년에 걸쳐 느리게 만들어지는 침향(나무)은 구멍이 뻥뻥 뚫려있지만 물에 뜨지 않고 무겁게 가라앉습니다. 수지 성분이 물보다 밀도가 높기 때문이에요. 그렇기에 물에 넣었을 때 바닥까지 가라앉을수록 좋은 침향으로 친답니다. 침향은 고급 향수의 원료가 되기도 하고 귀한 약재로도 쓰이기도 해요. 향으로 치면 사우나 냄새, 맛으로 치면 화-한 시원한 맛이 납니다. 




이렇듯 쓰임이 다양하지만 우리가 만나보기까지 수십, 수백년이 걸리는 침향.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쓰임이 많고 희소성 높은 침향을 어떻게 현대에도 만날 수 있었을까요? 

시인 서정주의 작품 '침향'에선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침향(沈香)을 만들려는 이들은, 산골 물이 바다를 만나러 흘러내려 가다가 바로 따악 그 바닷물과 만나는 언저리에 굵직굵직한 참나무 토막들을 잠거 넣어 둡니다. 침향은, 물론 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이 잠근 참나무 토막들을 다시 건져 말려서 빠개어 쓰는 겁니다만, 아무리 짧아도 2 ~ 3백 년은 수저(水底)에 가라앉아 있은 거라야 향내가 제대로 나기 비롯한다 합니다. 천 년쯤씩 잠긴 것은 냄새가 더 좋굽시요.
그러니, 질마재 사람들이 침향을 만들려고 참나무 토막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내다가 육수(陸水)와 조류(潮流)가 합수(合水)치는 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은 자기들이나 자기들 아들딸이나 손자 손녀들이 건져서 쓰려는 게 아니고, 훨씬 더 먼 미래의 누군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후대들을 위해섭니다.


침향이 우리에게 닿기까지, 미래를 위한 건강한 생각이 먼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을까요? 가늠할 수 없는 미래지만 언젠가는 이뤄질 가능성을 가진 건강한 생각이요.


우리는 뭔가를 계획할 때, 성취했을 미래를 생각하면서 희망에 부풀곤 해요. 희망에 부풀어서 짜여진 세분화된 계획은 사람에 따라 차근차근 나아가는 단계가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금방 포기하는 청사진이 되기도 합니다. 노력이 꽤나 드는 계획은 의지와 끈기가 약한 사람에겐 오래 지속되지 않죠. 그래서 우리는 모두 거대하고 웅장하게 시작은 하지만, 끝은 흐지부지 용두사미로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니 벅차지 않게 시작해보세요. 가볍고 단순하고 최소한으로. 물 속에 참나무를 던져넣는 것과 같이 단순하고 쉬운 것부터요. 그 행위에 담긴 생각과 의도, 미래는 절대 가볍지 않을 거예요. 과거의 사소한 무언가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든 것처럼요.  



▶ 그래서 나는 올해도 용두사미일까?

새로 마음 먹고 시작하기 딱 좋은 1월1일! 탈피하듯 새 시작을 하고자 해돋이를 보러가고 새로운 일기장을 사기도 하며, 대청소를 하거나 버킷리스트를 쓰곤 합니다. 


혹시 지난 2022년을 시작하면서 구비했던 것들을 기억하시나요?

그때의 버킷리스트, 다 지켜지셨나요?

그때의 일기장, 몇월까지 쓰여졌나요?

그때 마음 먹었던 습관들은요? 


거창했던 시작에 비해 연말은 감가가 상당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새해가 뜨던 1월1일에 또 새로운 계획으로 새롭게 시작을 했어요. 아, 혹시 1월1일을 지나치는 바람에 김이 파악 새 버리셨나요?


그럼 이런 스타트는 어떠세요?

1월엔 24절기 중 가장 마지막 절기인 '대한(大寒)' 이 있어요. 음력으론 아직 12월이죠. 양력 1월1일만이 시작은 아니니까 2022년 마지막 절기를 지나면서 특별한 시작을 계획해보세요. 시작은 언제나 늦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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