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_칡(Pueraria montana) / 한 줌의 느슨함을 찾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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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바로 부정적인 인식이 먼저 찾아오고 피로해지는 단어가 아닐 수 없어요. 하지만 최근 조사결과에 따르면 연령층이 낮아질수록 갈등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혹은 중립)이라고 해요. 갈등을 마냥 부정적인 문제로서만 바라보지 않는 추세라는 건데요. 갈등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우리는 매일 갈등을 품고 살아갑니다. 여행지 선택, 점심 메뉴 고르기, 동료와의 마찰과 같은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사회관념, 정치적 이념, 국가간 분쟁 등 다양한 갈등 속에서 이미 살아가고 있어요.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들은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도 있지만, 개인이나 소수가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은 다른 의견을 가진 쪽과 늘 부딪치곤 합니다.
아침 9시,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 등산 후 술에 취한 고령의 할아버지가 지하철에 들어섭니다. 어찌저찌 타기는 했지만 출근시간대의 지하철은 서있는 사람들로 이미 빽빽합니다. 그때 할아버지는 지하철 한켠에 서서 말합니다. '힘이 들어 쉬어야 하는데 젊은 것들이 자리도 안 비키고 말이야. 늙으면 나오지도 말아야지, 원.' 모두가 들었지만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점심시간, 첫 출근한 신입에게 상사가 말합니다. '뭐 먹고 싶어? 신입이 먹고 싶은 걸로 먹자.' 출근한 지 3시간 된 신입은 우물쭈물합니다. 그때 상사가 덧붙입니다. '신입이 센스를 볼게.' 그 말에 신입은 점심시간 혼자 밥을 먹고 그대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남은 건 카톡 하나. '저 퇴사하겠습니다. 3시간 일한 건 입금해주세요.'
다양한 이해관계와 살아온 환경들이 작용하기에 누가 완벽히 옳다, 그르다 하기는 어렵습니다. 갈등은 '해결'보다는 '다루기'로 봐야할지도 몰라요. 어느 한쪽을 묵살하거나 제거하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컨트롤(관리) 하는 게 해결에 가까워지는 걸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갈등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은 공생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딛고 올라갈 수 있는 요철로 바라본다면 이해됩니다. 갈등을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이 갈등을 잘 다뤄서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정표로 삼는 거예요.
다양한 가치와 나와 다른 것들을 인정하는 게 선행되어야 해요. 내 의견으로 이기고자 하다보니 내 것이 맞고 남은 틀리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쉬워요. 하지만 내 의견이 틀렸을 수도 있고 상대방이 맞을 수도 있어요. 당사자를 넘어 거시적으로 본다면 어쩌면 둘 다 맞고 둘 다 틀렸을 수도 있고요. 또 지금은 틀리지만 나중에 맞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당장은 서로의 다른 관점과 입장, 견해를 인정하는 게 첫걸음일 거예요. 그래야 서로 타협할 수 있는 중간점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2월엔 우수(雨水)가 있습니다. 나무에 눈이 올라오고 얼었던 것들이 녹는 따뜻한 시기가 온다는 절기예요. 얼어붙었던 관계에도 봄이 올 수 있도록 한 줌, 한 발자국, 조금은 느슨해져봐요.